“배고프죠, 아까 자다가 꼬르륵 소리 되게 많이 나던데. 닭볶음탕 좋아하잖아요. 만들어놨는데 먹을래요?”


닭볶음탕?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래, 일단 먹고 생각하자.


“네!!”

닭볶음탕은 내가 좋아해서 만들었다더니, 제일 신난 건 본인이다. 수저를 두 손으로 들고 먹는 사람은 처음이야... 나도 하얀 쌀밥을 보는 순간 정신을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우걱우걱 물 먹는 하마처럼 밥을 먹어댔다.

정신없이 밥을 쑤셔 넣고 있는데,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너무 열심히 먹었나, 지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투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한 것은 때론 가장 검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든다.

“왜..왜요.,?”

“배가 많이 고팠나봐요ㅎㅎ?”

“조..조금..”

또 웃는다. 누구와 싸워도 질 것 같은 얼굴로.


“희린씨는 올해 20살, 저는 29살이에요. 또 희린씨는 내 학생이니까, 앞으로 희린아 하고 부르면 되겠죠? 말도 놓고. 그래도 되지, 희린아?”


“네. 뭐. 근데 여기 뭐 필요한 건 다 있나요? 목욕용품이라든지, 고데기나 화장품 같은 것들.”

“응. 있을 건 다 있어. 없는 건 요청하면 이틀 안에 위에서 내려올 거야. 근데 없는 거 없을 걸? 내가 아까 둘러봤는데, 아, 나도 여기 선생으로는 처음 왔어. 여튼 패디큐어도 있고 온도계, 스팀다리미, 공기청정기, 때수건까지ㅋㅋㅋㅋㅋ 없는 게 없던데?”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저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외모란 말이지.


“나도 급하게 끌려와서 집에 있다가 갑자기 불려왔어. 네가 써야할 방은 아까 거기. 욕실이랑 옷장, 화장대, 뭐 다 있지? 원룸이랑 비슷한 형식. 그리고 부엌과 거실이 있는 여기를 중간으로 반대편이 내 방이야.

나 여기서 돈 되게 많이 받았다? 필요할 때마다 나 부르면 될 거야. 외롭다, 새벽을 함께 보내자, 옷 지퍼 올려 달라, 씻겨 달라, 뭐 이런 요청은 안 된다는 거, 알지?”

가장 바라던 게 그런 건데 그런 걸 안 된다고 하면 대체 뭘 도와준다는 걸까. 그런데.. 조금 전까지 사무적인 말투로 나를 대하던 사람이 동네오빠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마치 두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느낌.


“그럼 루이비통 백 하나 필요한데요?”

“허, 이 아가씨 기 센 아가씨네? 그런 건 안 돼요.”

그가 긴 팔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와, 설렜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대사. 두껍고 묵직한 손이 머리칼을 헝클었다. 그 순간 들었던 느낌. 이 남자의 손은 굉장히 따뜻하다.


“기 센 아가씨?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너는 수업을 들으러 가세요. 오늘부터 들을 수업이 있어. 오늘은 정석 수업은 아니고, 일단 테스트를 할 거야. 미술1 전공 선생님, 나 때도 있었는데 별명이 스튜핏이었어. 하도 스뜌우우우삣, 이 말을 많이 해서.

수업은 모든 학생이 개인적으로 해. 한 학년 당 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고 서로 소통은 거의 없어. 수업을 다 따로 하니까. 하루에 수업은 2개 이상 하지 않아. 특히 예술분야는 더더욱 수업 횟수가 적지.

너는 오늘 하나. 여기는 29층이고 미술1은 2층이야.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방문을 열고 나온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면 바로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형태는 각 층에 방 하나, 엘리베이터 셋, 이렇게 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섰을 때 나는 대략적인 감이 왔다. 이 곳은 굉장히 개인적인 공간이고 개인 간의 소통이 전혀 없다는 것.

엘리베이터는 총 60층으로 돼있었다. 각 층마다 한명의 학생이 머물고 있고, 모두 1대1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거란 것. 마주쳐봤자 엘리베이터 안 정도.

나는 고요가 낮게 깔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장 시끄러운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여긴 대체,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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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는 반응 좋으면 바로 쓰러 갈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유


-물먹는하마 루이비통 스튜핏 고데기 스팀다리미 패디큐어 공기청정기 온도계 때수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