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비행기 소녀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주변 상황 완전 난장인 판국에 냉장고 열어서 이것저것 꺼내먹고

셜로기랑 전화하는 동안에도 목소리로는 헬프미 찡찡대면서도

쥬스팩 쪽쪽거리며 빨아먹는거 보고 쎄한 느낌 받은 사람 나뿐이냐?

그래서 그런가 후반부에 정체 밝혀지고도 별로 놀랍지를 않더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존재 자체를 차단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과

그들을 상처주는 스스로에 대해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유러스는 그들의 감정에 정상적으로 공감하지 못해.

죗값이나 구원을 떠나 유러스가 셰링포드에 여전히 갇혀있어야만 하는 이유지.

유러스가 자신의 태생적인 외로움 때문에 천진무구한 감정부자 셜록을 질투한건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결과적으로 유러스는 셜록을 자신이 있던 위치로 끌어내렸어. 그러니 스스로를 뱀파이어라 부르는거야.

음지에서 외롭게 살 수밖에 없는 어둠의 생물이자,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낮의 생물을 하루아침에 타락시킬수 있는 존재.

(물론 셜록이 그렇게 자라게 된 데에는 마이크로프트의 엇나간 대응이 한몫했지.. 유러스가 셜록을 물어 다시는 빛을 못보는 몸으로 만들었다면

마이크로프트는 햇빛에 타면 안된다는 핑계로 손수 관을 짜서 셜록을 밀어넣고 관뚜껑에 못질한거나 마찬가지야)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양쪽 모두를 온전히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셜록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유러스가 느끼는 절박함은 분명 진심이지만, 정말로 마음깊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회개하고 있느냐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임.

애초에 유러스가 스스로 죄를 뉘우침으로써 구원받는게 목적이었다면 그딴식의 잔혹한 게임을 설계하진 못했을거야.

언뜻 셜록을 조여오는 유러스의 행동은 능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사실 지독하게 수동적이야.

자긴 여전히 누굴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어둠의 생물이며 그런 자신을 바꿀 수도, 바뀔 생각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면서 다 괜찮다고, 분명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거야.

어이없을 정도로 이기적인 바람이지.

기억을 되찾은 셜록은 그런 잔혹하고 이기적인 유러스에게 분노하는 동시에, 누구보다도 그녀를 이해해. 왜냐면 자기랑 닮았거든.

셜록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비범함)를 증명하며 살아왔지만 모두에게 괴물이라 불리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고 보듬어주는 존 왓슨이라는 인물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셜록이 유러스를 너무 흔쾌히 용서한게 아니냐는 말이 많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셜록과 유러스라는 인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보이지만, 사실 그 장벽은 존재하지 않아.

유러스가 있지도 않은 유리벽 너머로 셜록의 손을 움켜쥠으로써 그걸 증명하지. 너나 나나 어딘가 심히 망가진 불완전한 반편이에 불과하다는 걸.

하지만 고립된 유러스와 달리 셜록은 비틀렸을지언정 '악의'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어.

그게 사람들이 셜록에게 기대를 품는 이유고, 존을 만나 서로를 완성시키는 계기가 되는거지.

결국 셜록이 한 건 자기가 겪은 구원의 기억을 유러스에게 공유한 것 뿐이야.

정신나간 소시오패스 마약중독자든, 동생을 질투해 나락으로 떨어뜨린 뱀파이어든,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있으면 아무리 비참해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거야.

물론 빅터를 살해하고, 자신을 반쪽짜리로 망가뜨려버린 유러스를 100%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존과 친구들(이제 셜록도 더는 부정하기 힘들겠지.)이 있다면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비틀린 반쪽짜리 일지언정, 힘닿는 데까지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셜록은 믿는거야.

그러니 셜록은 유러스를 용서한게 아니야. 용서란 용서받는 사람이 뉘우칠때나 쓰는 말이지.

셜록이 유러스를 받아들인 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리해낸 결과를 믿기 때문이야.

그리고 아이린이 말했듯 자기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는건 셜록이 제일 잘하는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