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마사는 방을 둘러보았다. 쓸 만한 것들이 몇 개 보였다.



갑자기 천장이 무너졌다. 타카토 요기리를 비롯한 세 사람은 천장에 깔려 죽었다.



그렇게 써넣었다. 이런 소설을 읽었다간 불평이 저절로 나올법한 어이없는 전개지만,

굳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 필요는 없다.



갑자기 천장이 무너----



그런데 이 문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건지, 분명히 써넣었던 글자가 도중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면 천장을 무너뜨려 그들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중략)



다른 전개를 써넣으려고 하는데 소설의 다음 전개가 떠올랐다.



나는 죽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죽음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키마사는 손으로 글자를 덧그려 지웠다. 어쨌든 자신이 죽지않는 전개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내용을 써넣기도 전에 다시 글자가 나타났다.



나는 죽었다.



지운다.



나는 사라졌다. 나는 소실되었다. 나는 없어졌다. 내 생명 기능을 정지했다. 나는 끝났다.



문고본은 더 이상 유키마사의 죽음 이외의 전개를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지워도,

다시 쓰려고 해도 나타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글자뿐이다.



'제기랄!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그것은 더 이상 문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같은 말만 계속 반복되고 있다. 유키마사가

아무리 글자를 지우려 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 이 페이지를 찢어버리는 거야!'



페이지를 뜯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잘게 찢었다. 그렇게 산산조각내면 소설로서의 의미를 잃게 된다.

모든 페이지를 뜯어내서 문고본의 형태가 사라진 종잇조각을 흩뿌렸다.



(중략)



글자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죽음을 의미하는 내용이, 찢어버린 문고본에서 기어 나와 돌바닥 위에 달라붙는다.



'히익....'



글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을 가득 채우고 벽을 기어올라 천장까지 이르렀다.



넌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편집적이기까지 한 글자의 나열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탁. 그런 소리와 함께 금속문 너머에 무언가 도착했고, 문의 핸들이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요기리 일행이

나타났다. 천장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회반죽이 떨어져 후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유키마사와 요기리의 눈이 마주쳤다.



'죽어.'



무자비한 그 한 마디가, 유키마사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