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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큰 안목 큰 숙제

운영자 2005.12.27 16:09:30
조회 2814 추천 0 댓글 6

 1. 삶터에 대한 관심과 배움의 길

  큰 안목 큰 숙제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단 한번도 변하지 않은 생각이 있다. 그것은 배움을 다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 도시와 사람과 환경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만드는 데 초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남북 이산가족이 한데 모여 살 수 있고 민족의 화합과 문명을 융성시키는 도시를 비무장 지대 근처에 건설하겠다는 꿈은 내 손으로 꼭 이루고 싶은 것 중의 하나였다. 미국 유학 생활이 마무리되어 가던 즈음, 나는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3개월에 걸쳐 미국과 캐나다 대륙 횡단을 했다. 그리고 그 좋은 체험의 무대를 유럽으로 연장하고 싶었다. 수백 수천 년 전의 고도(古都)를 통해 도시 문화의 변화와 현재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유럽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나는 1967년부터 몇 년에 걸쳐 내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는 유명한 워터게이트(Watergate) 호텔 겸 아파트 공사장 내에 있는 건축 사무소에서 아파트의 부엌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아파트의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확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나는 부엌 싱크대 위의 모든 선반을 벽 안으로 집어 넣도록 설계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아예 벽면과 동일한 평면에 배치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엌일을 하던 중 선반에 머리를 부딪히는 일을 막을 수 있었으며, 시각적으로도 시원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이 부엌 설계가 실제로 건물에 적용시킨 내 최초의 작품인 셈이다.

  플로리다주 데이디 카운티 병원, 보스턴 로간 국제 공항 재정비 계획 등에서는 새삼 개념의 중요성과 디테일의 가치를 배우기도 했다. 1972년 여름, 어렵사리 여행 경비를 마련한 후 배낭 하나 달랑 둘러멘 채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가진 재산은 유레일 패스(Eurail Pass)와 미국에서 알게 된 유럽 친구들의 연락처가 고작이었다. 잠은 대부분 기차에서 자며, 약 한 달 동안 북쪽에서 남쪽까지 유럽 전역을 누비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먼저 관심을 끈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말로만 듣던 샹젤리제 거리에 가니까 개선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개선문이 평지가 아니라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개선문을 보면 작은 경사지만 콩고드 광장 쪽에서 보면 가로수들이 점진적으로 올라가 거리 전체가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단위 건축만 생각하지 않고 전체를 생각하며, 전체의 구성 요소로 지은 건축물들을 보며 물리적 환경, 시각적 환경, 사회적 환경, 역사적 환경, 그리고 자연 환경 등 5차원의 개념에서 도시를 생각해야 한다는 도시 설계 원칙을 확인했다.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특히 부러웠던 점은 과거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한때 몽파르나스 같은 실수를 해서 도시 내의 시각 축을 허무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들은 곧 그 잘못을 깨닫고 더 이상 파리 시내에 고층 건물을 허용하지 않았다.

  빅토르 위고가 글을 썼다는 집, 후대 유명 작가들이 드나들던 셰익스피어 책방 등의 유적지를 다니며 나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한국은 왜 이런 세세한 것들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을 통해 앞선 이들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기리고 교훈으로 삼는 일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일까.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마음과 등이 편해지는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차가 전혀 없기 때문에 주위를 경계하느라 몸 전체에 신경을 쓰는 일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곳이었다. 걸어서 온 도시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은 음식점과 옷 가게, 아기자기한 가정용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상점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레알토 다리와 그 다리 위의 보석 상점들, 열린 사다리꼴 형태의 산 마르코 광장과 교회 등의 건물들을 보며 삶터를 모두 잘 꾸며 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 환경 디자인이란 ‘어떤 의도’로 ‘무엇’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하는 개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곳이 베니스였다. 햇볕도, 바람도, 바다도 흥겹고, 만나는 사람들도 절로 웃음을 띠었다. 거리의 노천 카페에서 포도주를 마시다가 누군가 이탈리아 전통 민요를 선창하면 지나는 사람들까지 어울려 쉽게 노래를 불렀다. 자연과 문명이 농도 짙게 어우러진 4차원, 아니 5차원의 도시의 틀은 영원할 것 같았다.

  스위스인들은 산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두려워하지 않기도 했다. 산 위까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는데, 큰 건물이 없는 만큼 땅을 움직이는 토목 공사를 한 흔적이 없어서 자연히 숲 속의 삶터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애당초 즐겁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든 취리히나 제네바의 거리를 두루 걸었고, 칼 마르크스가 다녀갔다는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는 바로크 건축들을 많이 보고,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로 오페라를 보러 가는 사치도 부려 보았다. 물론 입석이었지만…….유럽의 도시들을 두루 다니며 나는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다는 기쁨보다는 한국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나라의 정서와 미학, 정치와 경제 형편 등을 고려해 볼 때 유럽에서 일궈 놓은 저 아름다운 도시 모습을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는 뮌헨에 머무는 동안 각종 올림픽 시설들과 운영 방식을 눈여겨보았다. 지하철을 경기장까지 연장시킨 새로운 교통 체계, 진행 요원의 복장, 편의 시설의 배치 등 모든 것이 관찰 대상이었다. 2차 대전 후에 생긴 엄청난 쓰레기를 모아 놓고 그 위에 복토를 해서 경기 관람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라블힐(Rubble Hill)이라고 명명한 언덕과 공원을 만든 점, 진행 요원들의 복장이 역할에 따라 코디되어 있는 점 등이 인상적이었다. 1964년에 데비가 보여 준 뉴욕 박람회가 ’93 대전 엑스포 계획으로 이어졌다면, 1972년 뮌헨 올림픽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계획으로 이어졌다.

  유럽은 우선 역사에 대한 나의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느 민족, 어느 나라건 하루아침에 역사를 이룰 수는 없다. 그것은 시·공간을 두고 조금씩 축적되는 것이며, 동시에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역사 전체를 이끌고 그 방향을 잡는 정책 입안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는 바로 역사라는 탑의 한 층 한 층을 이루고 있는 일반 사람들의 존재이며 그들의 손때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오랜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지을 때, 우리는 단지 낡은 건물을 잃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세월의 의미를 잃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존재 가치와 흔적, 그것이 주는 의미까지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에서는 건축과 도시 계획이 이분화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유럽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도시를 떠나서 건축을 생각할 수 없고, 도시 계획은 기존 건축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그곳 현실이었다.

  유럽에서 돌아온 나는 곧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유럽 언어의 근간이 되는 라틴어 공부에도 더욱 열성을 기울였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일보다 그들을 배우고, 또 나를 성장 변화시키고자 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럽에서 돌아와 확실히 나는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어설픈 자기 반성에 그치는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미국에만 있었던 나와는 분명 ‘달라진 나’를 갈망하고 있었다.

  나의 30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고른 며느리


1974년 여름, 한국에 휴가차 나왔다가 부모님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1974년 7월 여름 휴가로 잠시 한국에 들어온 때였다. 아버지는 갑자기 당신의 후배 집에 다녀오자고 하셨다. 이유인즉 아버지 후배에게 딸이 있는데,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중이니 유학 경험이 있는 나더러 자문을 좀 해주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의 결혼을 위해 물색을 하던 아버지와 딸을 둔 아버지 후배 사이에 모종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나에게는 매우 당황스런 일이었다.

  이미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으로의 유학이 결정되어 장학금을 받고 유학 수속을 마친 상태였던 그녀를 만나 보니 서울대학교 수석이라는 말에 가졌던 내 선입견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렇게 아버지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만난 지 불과 두 주일 만인 1974년 7월 27일에 초고속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 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하게 되었고, 그 후 3년 6개월 동안 나는 분주히 파리, 보스턴, 서울을 오가야 했다. 그녀가 석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78년 5월에야 우리는 서울에 뒤늦은 신혼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눈이 정확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녀는 내가 하는 일을 겸손히 이해해 주고 도와주는 최고의 조력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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