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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여름추억이라기에 떠오른 기억

뫼르달(61.78) 2017.07.22 20:53:32
조회 255 추천 4 댓글 1

 '여름에 했던 사랑이기에 좀처럼 식지를 않는 것인가' 이런 우스운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차마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러워 덮어놓은 문장이다. 그날 이후로 달력은 몇번이나 버려졌고 세상은 더욱 더워졌다.

그나마 인간미있던 과거의 여름과 달리 살인적인 폭염이 활개치는 오늘의 여름-기온이 사람의 체온과 엇비슷하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적인 것일까? 모르겠다-.

아이스크림 판매량은 무척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같은 날씨에 그런걸 들고 돌아다니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먹는 속도보다 녹는 속도가 빠르겠지.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라선다. 아이스크림과 삼계탕이다. 이열치열이란 말마따나 더운 날에 더운 국물은 들이켜는 것은 나름 효과가 좋은 듯싶다.


 이런 계절에는 낮보다는 밤을 사랑하게 된다. 시원하게 매끈한 다리를 드러낸 걸그룹의 노랫말처럼, 낮보다는 밤. 텁텁한 공기를 삼키며 맥주를 마시는 것은 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하다. 그리고 불쾌지수가 아무리 높아가도 뜨거운 살같을 부비고 싶어하는 젊음을 막을 길은 없다. 도시의 유흥가에는 음악이 있고 알콜과 폭력이 있고 섹스가 있다. 모두가 젊음이 사랑하는 것들이다. 

 지난 주에는 친구들과 새로 개업한 술집에 갔다. 소위 헌팅술집이라 부르는-젊은 남녀가 합석하도록 부추기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그런 곳이었다. 테이블마다 태블릿을 부착해 다른 자리와 대화하거나 게임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그것이 그 집의 무기였다. 한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손목에 도장을 찍고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를 태웠다. 여자들과 합석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나는 문득 돌아보았다.


 스무살 봄에 몇 년간 짝사랑한 아이에게 거절당했고 같은 해 여름 그 아이에게서 먼저 온 연락에 늦은 지하철에서 실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매일같이 웃었다. 아파트 놀이터, 집 앞 정자, 학교 정거장과 낡아빠진 술집들. 가는 곳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그건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넋을 놓고 순간순간을 바라볼 밖에. 다른 수는 없었다. 물론 그것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가을 겨울을 거치며 우리의 관계는 무너졌다-그러나는 빼자, 그것은 필연이었으니까-. 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오늘 대체 왜 그런 거야? 친구가 물었다. 답지않게 술을 왕창 퍼마시고, 여자애들에게 대답도 않아 분위기를 깨버려 친구들은 화를 냈다. 결국 새벽 세시, 질려버린 여자들은 먼저 떠나버렸다. 더위먹었나봐, 라고 답했다. 친구는 담배를 피웠다. 할증이 풀리기까진 삽십 분이나 남았고 거리에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모기가 앵앵거렸고 토사물 냄새가 났다. 어쩌면 나만 잘했어도 지금쯤 우린 누군가와 몸을 섞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러니까,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난 아무렇지 않았다. 해장을 하고싶어 소프트콘을 샀다. 친구들 몫도 내가 계산했다. 어차피 하나에 오백원이니까.


 나는 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은 모두 그 애의 이름을 알고있다. 비록 몇년의 노력이 허탕이었고 다신 그애의 손을 잡지 못하겠지만, 젊음의 귀중한 시간을 다 쏟아붓고도 얻은 거라곤 구질구질한 기억들 뿐이지만 사실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했다. 절대로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고. 친구들은 울지 마라고 말했다.


 그 해 여름 우린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었다. 햄버거집에서 파는 오백원짜리 소프트콘을 나눠 먹었다.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입가에 묻고 손에 흐르는 게 더 많았다. 손이 찝찝해졌다고 내가 투정하면 그애는 내 손을 잡으며 이젠 쌤쌤이라고 말했다. 가로등 아래를 걸을 때면 하얀 아이스크림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구름이 노을에 젖어가듯. 그게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으면 이제 그애를 집에 데려다줘야했다. 통금이 엄했으니까.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먹었다.


 정신을 차리니 택시였다. 옆에서는 친구가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일어났냐? 응 일어났어. 아이스크림이 어디로 갔느냐고 내가 물었다. 친구는 모르겠다고 했다. 네가 다 먹었겠지 뭐. 아닌데, 난 한 입도 안했다구. 그랬다구.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한숨이 나왔다. 손이 찜찜했다. 달달한 냄새가 났다. 여기에 남았구나. 뜨거운 여름밤이 다 가고 동이 트고 있었다. 남은 것이라곤 찜찜한 손바닥 뿐이었다. 어차피 다 녹아 없어질 거, 허겁지겁 먹어치우는게 좋았으려나?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잠이 들기 전에 오래전 떠올린 그 문장을 생각한다. 

 '여름에 했던 사랑이기에 좀처럼 식지를 않는 것인가' 이제 다 식었다고 믿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정말 그뿐이다. 그뿐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 손을 씻고 또 씻었다. 그러나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끈끈한 무언가 있다. 이대로 좋을까, 이대로 괜찮을까,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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