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낙엽 하나 둘 떨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주십시오.

눈을 감아도 아쉬웠던 여름날 하나 떠올리지 못하도록 

빠른 죽음을 제게 주십시오. 

유서는 남기지 않겠습니다. 

낙엽을 보고 우는 자를 시인이라고 부르니 

제 죽음을 보고 웃는 이를 --라고 부르겠습니다.

죽음은 천명이라 합니다 

제가 오늘 죽는다면 그것은 인재가 아니라 하늘이 저를 버린 것이니 

그러니 죽는 그 날까지 제 탓으로 돌리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우산을 잊어버린 것도 

친구와 싸우다 진흙 범벅으로 집에 돌아왔던 것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 했던 것도 

스스로를 죽이는것도

다 제 탓입니다. 

당신이 저를 때렸던 기억은 유감스럽지만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윤혜야 네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구긴 것만 기억이 나는구나. 

나는 이렇게 예수처럼 죽습니다. 

그러나 길게는 있을 수 없으니 

누구보다 빠르고 의연하게 저를 죽일 것이니.

눈을 감아도 죽을 것처럼 매달렸던 목련 한 송이 떠올리지 못하도록 

빠른 죽음을 제게 주십시오.

일이 끝나면 저와 술 한 잔 하며

끝끝내 당신을 --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