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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58.239) 2018.04.15 00:09:45
조회 307 추천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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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괴로웠다.

괴롭고, 또 괴로웠다.

이나건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시체를 땅에 파묻었으면 삽질이라도 해 무덤을 파헤쳤을 텐데. 나연이를 죽이고 뼈로 갈린 그의 육체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잘근잘근 씹어 먹기라도 했을 텐데.

이나건은 죽이지 말아야 했다. 그 자식은 유족들의 손에 맡겨져야 했다. 그래서 고문을 당하던 차에 치이던, 철도 길에 묶여 내버려지던 했어야 했다. 금방 죽고, 씻은 듯 고통이 날아가는 교수형으론 나연이가 구원받을 수 없었다. 어제도 나연이가 꿈에 나왔다. 오늘도 꿈에 나왔다. 2년 동안이나 계속 꿈에 나와 중얼거렸다. 이나건은 살아있어. 그를 죽여줘. 나연이가 울면서 속삭이는 그 말을 듣고 원석은 그 꿈이 억울해 떠나지 못하는 나연이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그 개자식 때문에 언제까지나 고통 받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영원히.

그래서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왔던 취재요구도 원석은 단번에 승낙했다. 그는 이제까지 모든 인터뷰에 고민하지 않고 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막바지에 들었을 때 꼭 이 말을 덧붙였다. 이나건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어요. 확신합니다. 그를 찾아내서 죽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기자, 아니 만났던 기자들 중 한 명도 빠짐없이 그 말을 무심한 표정으로 넘겼지만, 오늘도 마지막에 그 말을 붙이기로 다짐했다. 나연이가 구원받을 방법은 이나건을 찾아내 죽이는 수밖에 없었으므로.

공원에서 자신을 ABS 언론사의 기자라고 밝힌 남성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게 쓴웃음이라는 걸 원석은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2년간 남의 얼굴을 확인하는 습관이 길들여져 있었다. 혹시나 익숙한 얼굴, 수배지에 실렸던 그 얼굴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여지없이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괴로우실 텐데.”

아닙니다. 오히려 좋아요.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야죠. 아니 기억해야죠. 이나건의 악행을.”

그렇습니까.”

그럼요.”

원석은 남성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다 그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디하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오히려 모든 게 자연스럽지 않아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 인터뷰를...”

남성은 카메라를 총구 가져다대듯 옮기고 수첩을 들었다. 원석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인터뷰를 할 때만큼은 지성인처럼 보이도록 신중을 유지해야 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붙일 말이 절대 정신병 걸린 인간의 한 마디로 남아선 안 되니까.

이나건에... 이나건에 대해서 얘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답니다.”

기자는 왠지 인터뷰라곤 느낄 수 없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질문을 하면서 표정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마치 두려워하는 것처럼. 또는 분노하는 것처럼. 하지만 원석은 그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닌지 의심할 만큼 그 질문이 반가웠다. 이나건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니. 그건 자신이 가장 원하던 질문이었다. 원석은 참지 않고 옆에 앉은 남성에게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이나건에 대해서요?”

원석은 그렇게 물은 뒤 대답을 듣기 전에 다시 되물었다.

이나건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거 맞죠?”

네에... 이나건에 대해서...”

살아있어요. 그 개자식은 살아 있어요.”

순간 남성의 얼굴에 생긴 경직을 원석은 알아챘다. 그가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구태여 알지 못하더라도, 이나건의 죽음에 대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혹여나 자신처럼 이나건이 살아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게, ..,”

뭔가 알고 있습니까 기자님? 뭔가 알고 있으면 전부 말해주세요. 전부요.”

아니... ... 이나건이 살아 있습니까... 죽었는데.”

?”

교수형 당했잖습니까...”

원석은 다른 기자들과 다를 바 없는 남성의 대답에 금방 맥이 빠졌다. 그는 풀이 죽은 얼굴로 기자를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우선은 잊어주세요.”

아니...”

질문이 뭐였죠.”

기자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다가 작게 말했다.

이나건에 대해서요.”

이나건에게 생기는 감정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거였어요?”

. 그런 거... 말입니다.”

죽이고 싶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다면 죽였을 거예요.”

원석은 그때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연이가 참다, 참다 결국은 참을 수 없다는 양 알려준 사실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자신을 스토킹 한다는 것. 그리고 집을 한동안 쳐다보고 가거나 갑작스럽게 나타나 나쁜년, 하고 속삭인 뒤 모른 척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나연이를 안심시키려 결혼까지 결심했다. 이후로 부산으로 가 결혼을 하고 새로운 집에서 살며 이나건은 잊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차가운 시체로 발견된 나연이를 보고 자신이 해왔던 짓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나건은 언제까지나 나연이를 괴롭혔고, 결국은 살인까지 감행했다. 모든 일이 있은 후 원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증오하는 것밖에 없었다.

원석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의 얼굴에서 빛바랜 고통의 신음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양.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 것 마냥.

죄송합니다. 인터뷰는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

기자는 얘기를 듣다 말고 그렇게 말했다. 원석이 한참 얘기는 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아무 맥락 없는 맺음이라 원석은 남성을 한동안 가만 쳐다보았다. 꺼림칙한 경직이 계속해서 그의 얼굴에 일고 있었다.

기자가 취재 말고 할 일이 더 있습니까?”

원석이 그리 묻자 남성은 고개를 숙였다 들면서 말했다.

할 일이 있어서. 개인적인 용무라...”

원석은 고개를 살살 끄덕였다. 개인적인 용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간단한 묵례를 한 후 원석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하늘이 여전히 밝아 있었다, 늦은 오후라 인터뷰가 끝날 쯤이면 석양이 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인터뷰는 고작 십분도 되지 않아서 끝났다. 원석은 공원에 트인 길을 따라 걷다 아쉬운 마음에 뒤로 돌아보았다. 아직 카메라를 챙기던 기자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열 걸음. 아니 아홉 걸음 정도의 거리였다. 그러다 원석은 그의 입에서 혼잣말하듯 나온 목소리를 들었다. 그게 환청인지 모르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스토킹 같은 거 하지 않았어. 스토킹 같은 거 하지 않았어.

원석은 멍하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짊어지고 가는 그는 이제 반대쪽으로 공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왼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도 아니라 왼쪽 다리였다. 한눈에 봐도 그 어색한 걸음걸이가 눈에 띄었다. 원석은 빠르게 그를 쫒아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말했다.

한 가지 빼먹은 게 있어서.”

뭡니까.”

이나건은 살아있어요. 이나건은 살아서 죗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


대체 시부랄 왜 넷상에는 감평할 공간이 하나도 없는 거냐. 읽어준 애들 고맙고 부족한 점 좀 말해줬으면 한다. 맞춤법은 내가 한글 2010을 쓰느라 좀 오류가 있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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