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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첫 문장을 “좆대로”로 적어도 되는가? —첫 문장에 대한 짧은 고

썰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16 19:40:09
조회 1042 추천 14 댓글 11
							



37. 첫 문장을 좆대로로 적어도 되는가?

첫 문장에 대한 짧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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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권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2015)의 장편소설 넙치(Der Butt)의 첫 문장은 일제빌은 소금을 더 쳤다(Ilsebill salzte nach)”로 시작한다. 2007년 기준으로 독일어권 역대 소설 중 가장 멋진 첫 문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소설 자체에 대한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우선엔 그림형제의 동화인 어부와 그의 아내를 완전히 거꾸로 읽는 방식의 독해를 환기시키고 있다(이는 본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동시에, 본디 소금이란 물질이 가진 부패를 막아주는 기능과이를 뒤집어서 해석해죽은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모순된 기능을 제시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고, 아울러서 독일이 기독교 문화권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당연지사 예수그리스도가 산상수훈을 가르칠 때 말했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란 구절 역시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니까 일제빌은 소금을 더 쳤다라는 첫 문장은 단순한 평서문이면서도, 동시에 여러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는 데에도 성공한 셈이다. 이에 대한 어느 심사위원의 말은 기꺼이 인용해볼만하다. “첫 문장과 함께 돌은 굴러가기 시작한다. 첫 문장은 약속이요 방향 물질이자, 수수께끼이며 번갯불이다. 한마디로 뒤이어 나오는 전체 수프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 각지게 썰어 놓는 재료이다.


그래서 권터 그라스의 저 문장이 진짜 좋은 첫 문장일까? 물론, 첫 문장에 대한 견해는 문학 사조마다, 평가하는 독자마다 달라진다. 예컨대 엄격한 자연주의를 추구하면다면, 위에서 말한 권터 그라스의 문장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에밀 졸라(Émile François Zola, 1840-1902)테레즈 라캥을 발표하면서 남겼던 유명한 말인 나는 해부학자가 시체에 대하여 행하는 것과 같은 분석적인 작업을 살아 있는 두 육체에 대하여 행한 것뿐이다에 기초한다면, 권터 그라스의 저 문장은 지나치게 감정과 상징이 개입된 문장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잣대로 본다면 카뮈의 이방인에서 많은 독자들을 경악시켰던 첫 문장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역시도 저평가 받게 되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이상(李箱, 1910-1937)의 유명한 문장 역시도 얄짤없이 자의식 과잉이란 비판적 철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다행인 것이 있다면, 니체 이후로 순수한 관찰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관점주의(Perspektivismus)가 일반화된 관계로, 자연주의가 종언을 고했다는 점 정도이리라. 물론, 에밀 졸라를 묻어버린 건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이지만, 요즘 누가 루카치를 읽나?)


좋은 문학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전에 자폭해버렸으니, 마찬가지로 좋은 첫 문장에 대한 논의 역시도 애매모호해졌다. 그래서 남는 것은 취향인가? 물론, 문학이 난잡한 취향들의 놀이터가 된지도 꽤나 오래된 현상이긴 하다참고로 니체는 이 부분을 유독 짜증스러워했다(예컨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2절에서 다음과 같이 묻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우리에게 예술이 있다 하더라도, 예술의 영향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어디서,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어떤 기준을 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파시즘이나 권위주의란 비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새삼스러운 문학의 자유 선언: 문학은 그 무엇에도 구애받으면 안 돼!오롯이 당대의 기준을 파괴하려는 시도만이 훌륭한 기준으로 선언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반항이 손쉬운 것이 되고, 역으로 기준을 세워보려는 것이 되레 어렵고도 좁은 길이 돼버린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난이도에 덮어놓고 높은 가치를 부여하곤 하는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보건대, 조심스레 고전주의의 귀환을 예언해본다. 어쨌거나 김영하가 고대그리스 비극에 푹 빠져있다니까……).


하지만 가치 평가가 불가능해졌다고 해서 첫 문장은 안 적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가치 자체를 불모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현대적 경향에 최소한의 매력이란 게 존재할 수 있다면, 아마도 어떤 식으로 적어도 찬사와 욕설을 피할 길이 없으니,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적어도 된다고 선언해볼 수 있다는 편의성 정도이리라. 가령 첫 문장을 , 세상 좆같다라고 적어 보라. 적어도 두 가지 모순된 평가가 가능하다. 하나는 쓸데없이 외설적이라는 도덕주의적 저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계로부터 실재계의 침입을 적나라케 보여주는 우수한 첫 문장이란 정신분석적좀 더 정확히는 라캉주의적호평이다. 고로 좆대로적도록 하자=그러니까 좆대로적지 말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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