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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엽편경연] My dear Aisha

타이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1.20 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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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다.원고지 9장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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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류가 이 지구상에 첫 발을 내딛은 지는 300만년 가량이 지났다고 한다. 원숭이와 구분이 안 갔을 원시 인류가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했을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거창하게 울려퍼지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우리 선조는 그 도구를 써서 빙하기라는 첫 위기로부터 살아남아 우리에게 피를 계승시켰다.

지금, 우리는 그 원시 도구의 극한 발달체, 즉 현용병기를 사용해 인류 두 번째, 그리고 사상 최대의 위기에 장절히 맞서고 있다.

케루빔. 3년 전 돌연 오세아니아의 ‘게이트‘에서 나타나 지구를 침공하기 시작한 외계생명체에 대한 호칭이다. 이것은 그들의 비행체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전진익(前進翼)으로 인해 유래한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신체구조도, 침공 경위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미 지구상의 70%가량이 놈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 페이스로 간다면 인류의 흔적은 앞으로 2년 안에 지구상에서 ‘소거‘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군납 담배를 한 모금 태우고 뉴멕시코의 삭막한 풍광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중천에 뜬 태양이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인류의 기지를 비추며 극단으로 대비되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1년 전의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가 마음을 열던 유일한 존재, 아이샤가 놈들에 의해 스러져 간 것은. 나는 당시 막 개발이 완료된 인류 측의 대 케루빔 전투기 ‘스카이피시‘ 편대의 편대장이었고, 아이샤는 우리 편대의 유능한 중위였다. 동료이상 연인이하의 관계에서 조금은 더욱 발전하려 할 무렵,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나는 그때 아이샤에게 기지 측 선회 및 회항을 요구했어야 했다. 그때 그렇게만 했더라면.......

“변함없이 침울 모드시네요, 한스 소령님.”

갑작스런 목소리에 옆을 보자, 항공재킷을 걸친 안네마리가 걱정된다는 듯 서 있었다.

“안네마리 중위.”
“또 아이샤에 대해 생각하셨나요?”
“어떻게 알았지.”
“며칠 안 남았으니까요. 아이샤의 1주기가.”

안네마리가 손을 나에게로 뻗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도움을 받아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령님은 1년 동안 언제나 같은 방식이었어요.”

나는 물었다.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곧 그녀가 답했다.

“소령님께선 마치 아이샤의 그림자에 사로잡히신 듯 자신을 돌보지 않는 전투를 감행하셨죠. 케루빔 상대로 아직도 살아계신 건 기적이에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네마리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샤의 곁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간, 손과 손이 맞닿았다. 안네마리는 나와 다섯 손가락을 서로 겹친 채 얼굴을 상기시켰다.

“소령님이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아이샤는 이미 없지만.......대신.......”

망설이는 걸까. 잠시간의 침묵 후 안네마리가 입을 열었다.

“저라도 괜찮으시겠어요?”
“안네마리?”
“저라도 좋으시다면.......저를 위해 무사히 기지로 돌아와 주세요.”

안네마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애원하는듯한 그녀의 에메랄드빛 큰 눈망울. 그 눈동자는 내게 아이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것을 말하는 듯 했다.
그래, 이제 벗어날 때인지도 모른다. 한 인간의 죽음이 만들어낸 중력에서.

“.......그래, 이제 지켜볼까.”
“네?”
“너와 같이 인류의 내일을.”
“알겠습니다!”

초계중인 스카이피시 편대가 비행운을 수놓는 뉴멕시코의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지켜보기 위한 내일로의 활주로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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