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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담배.

이체(125.140) 2008.01.28 22:12:48
조회 115 추천 0 댓글 6



"수고 하셨습니다."

고참들에게 인사한 후,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통근버스에 올라탄다.
창문을 열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가볍게 한모금 뱉어낸다.
회색연기가 차안을 가득 메운 뒤에 창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지겨운 밥벌이를 마치고 피는 담배 한모금.
그 소중한 순간 때문에 나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 같다.

통근버스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아보이는 8인승 차에 시동이 걸리고, 공장을 빠져나간다.
초록빛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살랑살랑 춤을 추고,
석양빛을 머금은 풀들은 그 밑에서 재잘거린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이 빌어먹을 짓도 조금만 더 참으면 끝나는구나라며 중얼중얼 거린다.

"야 철수야. 내일은 육교앞에서 기다리지 말고 집 앞에서 기다려."
"예?"
"육교에서 기다리는 형들이 내일 안나온다고 하더라."
"그래요?"
"응."
"내일 무슨 일이라도 있는갑네."
"월급도 올라서 토요일에는 안나오는 건가벼."

기사 아저씨가 운전대를 잡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알았다고 말을 하고 필터까지 불 붙어 있는 담배를 창밖으로 던진다.
잎부분을 폈어도 채워지지 않는 이 공허감.
무의미하게 필터까지 불이 붙어야만 다 핀 듯한 느낌이든다. 나는 다시 담배를 꺼내들어 입에 문다.

"또 피는겨?"

부드러운 충청도 사투리가 내귀에 파고든다.
나는 픽하며 웃은 채,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풍부한 연기가 입과 코에서 나오고 그 연기를 맡은 기사 아저씨는 괜히 입맛을 다신다.
며칠 전에 태어날 둘 째 때문에 담배를 끊는다고 했던가.
대단한 결심을 한 것 같지만 남이 피는 담배연기에 킁킁 거리며 유혹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보기 안쓰러워 담배를 건넨다.

"한대 펴요."
"에이. 안필랴~"
"누가 본다고. 어차피 저 혼자만 탔는데요 뭘. 그러지 말고 한대펴요."
"딱 한대만 필까?"

나는 앞자리에서 유혹에 시달리며 운전하는 아저씨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짓고서는 더 앞으로 담배를 들이댄다.

"에이. 안댜~"
"그러지 말고 한대만 펴요."
"그만햐. 안 필랴~"

나는 완강히 거부하는 아저씨를 보며 다시 한번 씩 웃고서는 담배를 다시 주머니속에 넣는다.

이번에도 필터까지 태우고 창밖에 날려준 다음에 푹신한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비릿한 여름의 내음을 맡으며 끈적끈적한 땀을 식힌다.
피곤해서 잠이 솔솔 올줄 알았지만, 이상하게 눈만 감기고 잠은 찾아오질 않는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가방에서 엠피쓰리를 꺼내어 이어폰에 귀를 꽂고 듣는다.

"야. 너는 그만 펴. 너 젊은 놈이 뭐이리 담배를 펴댜?"
"사는게 고단해서요."
"몇 년 살았다고."
"여동생은 잘 있는겨?"
"네."
"여동생 생각해서라도 담배 끊어."
"그게 어디 쉽나요."
"날 봐. 바로 끊잖아."

끊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쉬었지만, 누워있기 시작한 여동생 앞에서 다시는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집밖에 나갈 소소한 구실을 만들어, 나온 후에 놀이터에서 뻑뻑 피워대는 나를 보며 나는 영원토록 담배를 끊지 않을 듯 싶었다.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
후우 하며 날리는 연기들속에 모든 스트레스와 근심, 그리고 걱정들이 녹아있는데.

"다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저씨의 다 왔다는 소리에 나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나간다.
문을 닫기 전에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란 말을 한 후에 문을 닫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저기 헤진 스니커즈를 질질 끌며 아파트 입구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불을 붙여 풍부한 연기를 뱉으면서 오늘의 밥벌이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린다.

"지겨워 죽겠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 연기를 들이 마시고, 내뱉고를 반복한 다음에 신경질적으로 담뱃불을 비벼끈다.
그리고 향수를 꺼내 이곳저곳에 뿌린다음에 목캔디로 담배냄새를 잡는다.
하나로는 부족해서 2, 3개씩을 입에 오물오물 거리면서 계단을 올라간다.

"오빠 왔다."

305호.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여동생이 에어컨을 틀어놨는지 제법 시원하다.
나는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입안에 있던 목캔디를 치아로 아작아작 박살내고 혀로 이리저리 침과 섞이게 한다음 꿀꺽 삼킨다.
그 다음에 여동생이 있는 방에 노크를 하고 조심스레 들어간다.
서서히 눈을 뜨며 잠옷차림으로 맞이한다.

"오빠 왔어."
"응. 별 일 없었지?"
"응."
"오빠가 밥 차려줄게. 조금만 기다려."
"쉬엄쉬엄 해."

나는 미소를 날려주고 바로 내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맛있어?"
"응. 맛있어."

젖살도 빠지지 않는 저 이쁜 얼굴에서 미소가 보일 때마다 행복했다.
다만 아쉬운 건 너무나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종일 침대에 누워서 약을 먹고 잠을 자고 아파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그런 여동생을 보며 씁쓸한 마음에 나는 간혹 밖에 슈퍼에 갔다오겠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목캔디를 씹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업어서 방에 데려다줄까?"
"아니. 괜찮아."

잘 먹었습니다란 말에 나는 밥그릇을 살펴봤다.
몇 수저 뜨지도 않았다.
하지만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잘먹었고 고맙다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가슴이 미어져 밖으로 나갈 구실을 찾고 있었다.
상을 치우는 도중 내 등을 톡톡 치며 여동생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포장지로 이쁘게 싸여진 것을 꺼낸다.

"오빠. 선물이야."
"오 이게 뭐야. 왠 선물이야."
"열어봐."

나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열어본다.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은 그 속에는 금연초 2갑이 있었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걸린 도둑마냥 말이다. 여동생이 생글생글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담배 피지마. 응?"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 내가 줄게 이것밖에 없네."
"아니야. 너무 고마워. 그리고 다시는 담배 피지 않을게. 그동안 속여서 미안해."
"그 금연초 비싼거야. 잘 피워."

나는 잠시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둘러댄 뒤에 문을 걸어 잠그고, 내가 가진 모든 담배를 반으로 갈라서 화장실 변기통에 쳐박았다.
그리고 쑥으로 이루어진 금연초를 피우며 웃음소리 대신에 귀에 걸릴 정도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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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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