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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회 엽편경연]카메라가 고장났어. 카메라가...

화석(221.165) 2008.02.13 00:29:41
조회 98 추천 0 댓글 7

빨간색 모닝.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안전운행 중이다. 미행하기가 쉽지 않다.
주위를 꼼꼼하게 살피는 여자의 운전습관 때문에 내 차는 더 쉽게 눈에 띌 수 있다.
여자의 차가 멈추어 선다. 어렵사리 주차를 마치고 여자가 들어간 곳은 편의점이다.
이것저것 골라 계산대에 선 여자가 초조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일회용 면도기, 남자 속옷, 남성용 스킨의 바코드를 찍은 아르바이트생이 재촉하듯 여자를 부른다.
여자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고 거슴름돈을 받아 나온다.
나는 줌인을 해 여자를 살피던 디지털 카메라를 내려놓고 차에 시동을 건다.
여자가 차 문을 열려다 물건을 떨어뜨린다. 물건을 주으려 바닥에 주저앉더니 일어나지 않는다.
순간 나가서 도와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어버린다.
지금 나는,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저 여자를 미행하고 있다.
죄책감에 여자가 무너지건 말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여자가 이대로 무너져 집으로 돌아간다면 일이 재미없어진다.
여자는 남편도, 아이도 다 잊은 채 모텔에 누워있을 정부를 향해 달려가야한다.
나는 숨어서 모텔방에 들어가는 여자의 모습을 찍어야 한다. 운이 좋으면 건너편 건물에서
그들의 비밀스럽고 격정적인 정사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다.
나는 디지털 카메라를 쓰다듬는다.
이 안에 담길 사진을 사람들은 쓰레기라고 부르겠지만, 어떤 인간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엎을
증거물이 될 것이다. 

여자의 차가 출발한다. 낮이라 한산한 유흥가를 통과한 차가 모텔 주차장 안으로 들어간다.
차양막 아래로 여자의 다리가 보인다.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의 발걸음이 바쁘다.
열락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앞치마를 두르고, 된장찌개를 끓이며 남편과 
아이밖에 모르는 여자로 돌아가려면 바쁘기도 하겠지.
여자의 종종걸음 때문에 셔터 누를 순간을 놓쳤다. 나 역시 차에서 내려 모텔로 들어간다.
디지털 카메라를 버버리코트 안주머니에 넣고 자연스럽게 카운터를 통과하려는데
주인이 불러세운다. 몇호실 손님이냐고 묻는 남자에게 302호라고 답한다.
남자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주인 남자는 이 모텔 호수는 층수와 알파벳을 조합해서 만들었기에
302호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가라고 한다. 
별 수 없이 여자가 타고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본다. 숫자 5에서 멈춘다. 
순순히 밖으로 나와 주변 건물을 살핀다. 모텔 건너편에 상가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그 건물로 재빠르게 뛰어들어간다. 모텔 주인의 시선이 내 뒤를 쫓는 게 느껴진다.
상가 옥상으로 나가는 철문이 열려있다. 나는 옥상에 숨어 여자가 들어갔을 방이 어디일지
가늠해본다. 여기서 보이는 곳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건물을 찾아내거나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하지만 조심성 많은 여자가 언제 또 모텔을 찾을 지 모르는 일이다.
기회는 오늘 뿐이다.

여자는 닫힌 공간에 들어가면 창문을 열어 환기부터 시키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습관대로
행동해주기 바라며 나는 디지털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창이 열린다. 그 사이로 여자의 얼굴이 나타난다. ON버튼을 누르고 줌을 당겼다 풀었다 하며
가장 명확한 장면을 담으려 하는데 남자의 손이 나타나 여자의 몸을 더듬는다. 
순간 손이 떨려 카메라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카메라를 주으려 허리를 숙이던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카메라가 고장났는지 살펴보려고 이것저것 만져본다. 며칠 전 찍은 사진들이 한장 한장 넘어간다.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다. 브이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춘다.
나뭇잎이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여자의 뒷모습.
다음 사진에는 요리하고 있는 여자를 내가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카메라를 잡은 아이의 손가락이 찍혀있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살짝 갖다댄다.
고장난 곳이 없는 카메라를, 촬영모드로 전환해 놓고 일어나려는데 무언가가 바닥에서 나를
잡아 끄는 듯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나는 중얼중얼거린다.
"카메라가 고장났어. 카메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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