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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시대를 앞서간 죄’

운영자 2009.04.03 10:40:43
조회 14744 추천 55 댓글 68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에이즈 확산 뒤에 ‘성 이중잣대’가...” 이건 언젠가 보도됐던 한 언론사의 머릿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엔 “아시아 증가세 세계 최고.. 2천년 뒤엔 2천만명 넘을 듯”. “실생활 ‘개방’ 불구 전통적 ‘금기시’ 콘돔 장려도 어려움” 등의 부제가 달려 있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마광수를 떠올렸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는 머지 않아 ‘시대를 앞서 간 지식인’으로 평가받을 게 분명하다는 걸 인정하는 데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그에 대한 ‘마녀 사냥’이 한창 진행되던 때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가 했던 주장은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앞서 가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죽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청난 ‘가학의 문화’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앞서 가는 사람’의 전체 모습은 절대 보지 않는다. 아주 작은 꼬투리 하나면 족하다. 그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되니까.


 그리하여 마광수는 죽었는가? 불행중 다행히도 마광수는 ‘사회적 테러’를 당해 비틀대고 있긴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가해진 테러가 자신의 운명이 아님을 항변하고 있다. 나는 마광수의 최근 저작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를 읽으면서 마광수의 ‘건재’를 확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기득권층에겐 ‘천부의 권력’이나 ‘의지의 승리’요 민중들에겐 오직 ‘운명’이나 ‘팔자’일 뿐이었던, 도덕과 권력의 음험한 야합의 결과물인 ‘피지배층 길들이기 수법’으로서의 운명론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그는 박학다식하다.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등 여러 종교의 운명관에 들이댄 그의 날카로운 칼질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하다. 그는 운명을 극복하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의 주장엔 거창한 구호나 위선적 꾸밈이 없어서 좋다.


 좋긴 한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광수에겐 너무 위선이 없다는 게 문제다. 나는 그에게 온갖 수모를 선사했던 ‘즐거운 사라’가 검사도 이해할 수 없고, 문학평론가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말 몇줄만 담고 있었더라면 마광수의 운명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 있다. 마광수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그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성애론이 궁극적으로 페미니즘의 대의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자꾸 반복해대기만 했더라면 그의 우군은 좀더 많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실제로 그의 성애론은 페미니즘의 대의에 배치되는 게 아니건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페미니즘의 적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마광수가 전술의 필요성을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면 그는 진보적 운동권마저도 그의 품안에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 해방’이라고 하는 똑같은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아주 사소한 과정상의 문제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따로 놀았다.


 마광수의 운명은 무엇인가? 그건 그에게 이 시대의 기본적인 게임의 룰을 따를 뜻이 전혀 없다고 하는 점이다. 물론 그 게임의 룰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게 공정하지 않은 게임의 룰이 곧 공정한 것이다!


 마광수는 영원히 외로울는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 시대의 그 어떤 지식인보다 더 주체적 애국심에 흘러 넘치면서도 그 흔해빠진 ‘국가’와 ‘민족’이라는 단어 하나 읊어대지 않는다.


 그건 무모한 만용이다. 그는 독자의 능력을, 아니 우리 시대의 상식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죽이는 일에 앞장서면서도 자신은 황야를 거닐며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 이 세상엔 위선과 자기기만의 천재들이 득실대며 그들이 권세는 물론 사회적 존경까지 누리고 있다. 만약 우리 시대의 지성계가 병들어 있지 않다면, 단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저자를 감옥에 가두고 유죄 판결을 내리고 학교에서 내쫓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게 돼 있다. 세계화? 사라가 배꼽이 빠져라 하고 웃을 일이다.


 사회적 인물로서의 마광수의 운명은 무엇일까? 그는 죽는 날까지 우리 시대 지성계의 오염도를 재는 척도가 될른지도 모른다. 개인의 창의성을 압살하고 학맥과 인맥에 따라 줄서기를 강요하는 한국 지성계의 반지성적인 풍토에서 마광수와 같은 풍운아는 매도되어야 할 이단자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마광수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교자’의 모습은 마광수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마광수가 기존의 전술을 재고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에 변화를 가져오기 바란다. 그가 주장하는 ‘수구적 봉건윤리와의 싸움’은 외곽을 때리는 방법으로 접근할 때에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섹스는 인권의 문제다. 그렇다면 ‘섹스’라고 말하지 말고 ‘인권’이라고 말하는 게 좋다. 섹스와 자유민주주의는 무관한 게 아니다.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있는가? 없다. 없어도 반민주적 수구 기득권 세력까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 지경인데도 자유민주주의의 투사라 할 마광수가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마녀 사냥’을 당한다?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


 위선의 신이여! 마광수가 당신을 버리더라도 당신이 마광수를 버려서는 아니됩니다. 국가와 민족을 떠들어대는 그 어떤 지식인보다 더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면서도 위선에 대한 결벽증 때문에 오로지 섹스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광수의 착한 마음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위선의 기(氣)를 불어넣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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