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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힘인 추상과 횡단

수갤최강유동닉ㄷㄷ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5.27 22:46:00
조회 304 추천 2 댓글 9

 <수학의 몽상:이진경의 매혹적인 근대 수학사 강의, 이진경 지음, Humanist>의 에필로그에서 인용합니다. * 

추상抽象과 횡단橫斷

 나는 수학사를 공부하면서 무엇을 배웠던가? 수학자도 아닌 사람이 수학사를 공부해서 배운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건 한마디로 '추상'과 추상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추상이란 서로 다른 것 가운데서 공통된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를 다른 하나로 바꾸는 방법이다. 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대상인 수數나 형태부터 추상능력의 산물이었다. (중략)

 추상이란 모든 곳에서 어떤 동형성을 찾아내는 활동이라기보다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찾고, 그로써 당연하게 여기던 기존의 관계에서 벗어나 새 관계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즉, 그것은 모든 것의 공통된 '기초'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통해 기존의 관계를 바꾸는 활동이다. 기초에 관한 문제가 나타난 것은 어쩌면 그러한 추상이 일으킨 문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중략)

 수학의 역사는 어쩌면 추상화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추상의 힘, 그것은 주어진 공통성이나 관계에 고착하는 힘이 아니라 변환시키는 능력이다. 수학의 힘은 바로 그 추상의 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상은 서로 다른 것을 넘나들면서 비교하고 검토하며, 하나에서 다른 것을 배우는 게 가능하게 해준다. 이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횡단'이라 한다. 위아래로 넘나들고, 옆에 쳐진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것, 그것이 바로 횡단이다. 횡단할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세계에서 새로이 공통된 것을 추상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것을 축으로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하거나 변형시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생성하는 능력이다. 위대한 사상은 어느 것도 이처럼 여러 경계와 영역을 넘나들며 횡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런 능력의 산물이다.

 반대로 넘나들고 횡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난점은 추상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추상화하는 자들은 쉽게 넘나들 수 있다. 이 영역의 것과 저 담 너머에 있는 것 사이에 공통된 어떤 것이 보이고, 그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일정한 연관이 보일 때 비로소 우리는 횡단을 시도할 수 있다. 그것은 꼭 서로 다른 것들 속에서 같은 것 내지 동형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질적인 것이 접속되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고리들이 보이면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학의 역사에서 추상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면, 추상하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었다면 이 여행은 그리 헛되지 않은 게 아닐까?  ​

​# 수학의 외부

1. 어느 날 멀리 떨어져 살던 아들을 찾아 어머니가 상경했다. 오랜만에 만난 모자는 밤새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서로가 나름대로 바쁜 삶이라 이튿날 헤어져야 했다. 주인공은 힘들게 사시는 어머니를 생각해, 월세를 내려고 찾아두었던 20만 원을 몰래 지갑에 넣어드렸다. 배웅을 하고 돌아와서, 지갑에서 뜻하지 않은 돈을 발견하고는 놀라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해했다. 그런데 그는 책상에 펴놓았던 책 사이에 돈 20만 원과 함께 서툰 글씨로 쓴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했다. "요즘 힘들지? 방값 내는 데라도 보태거라." ​

 

 ​독일 작가 ​E. 케스트너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이나 어머니나 모두 20만 원을 주고 20만 원을 받았으니, 두 사람 모두 이득도 손해도 없는 교환이었던 셈이다. 가장 확실한 수학인 산수는 이를 정확하게 계산해준다.

 어머니: 20만 원 - 20만 원 = 0원

 아들: 20만 원 - 20만 원 = 0원

 그러나 케스트너는 이런 '경제방정식'과 다른 '윤리방정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위해 20만 원을 썼고, 20만 원이 새로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있었다. 어머니도 아들을 위해 20만 원을 썼고, 아들이 준 20만 원이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생겼다. 그러니 도합 80만 원의 순이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경제방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 순이득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는 케스트너의 윤리방정식이 표시하는 숫자에 함께 사는 기쁨이라는 막대한 '이득'을 덤으로 준다. 여러분은 이런 계산법, 이런 수학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이미 통상적인 수학의 외부에 있는 것이다.

비록 숫자를 피하지 못했다고 해도 말이다.

<독일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 그의 몇몇 작품들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 조주趙州 스님이 어느 암자를 방문하여 물었다. "안에 누가 계신가?" 암자의 주인은 말없이 머리를 내밀고 말없이 주먹을 들어 보였다. 조주 스님은 "물이 얕아서 배를 댈 수가 없구먼."하고 가버렸다. 그 후 또 다른 암자를 방문하여 물었다. "안에 누가 계신가?" 그 암자의 주인도 그저 주먹을 들 뿐이었다. 그런데 조주 스님은 "들었다 놓으며 죽였다 살림이 자재自在로운 사람일세." 하면서 큰절을 올렸다.  

 <무문관無門關>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써놓고 무문無門은 묻는다. "주먹을 들기는 매일반인데, 어째서

하나는 인정하고 하나는 인정하지 않는가? 어디 말해보라." 여러분도 한번 말해보라.

 여기서 보인 조주의 행동은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말하는 동일률/모순율에 어긋난다. 주먹을 들어 올리는 같은 행동에 대해서 그는 한 번은 "물이 얕아서 배를 댈 수가 없다."라고 '무시'한 반면, 다른 한 번은 '자재로운 사람'이라며 큰절을 올렸다. 같은 행동에 대해 한 번은 나쁘다, 한 번은 좋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수학이나 논리학의 규칙으로 볼 때 조주의 행동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조주는 고불古佛 소리를 듣던 선가禪家의 유명한 고승이다.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 왜 그가 그렇게 말했을까? 이는 아마도 그가 같은 동작에서 다른 것을 보고 크게 다른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느낌, 서로 다른 강렬도, 같은 행동이라고 해도 결코 같은 것이 아닌 것이다. ​

3. "이 세상의 모든 자동차는 소나타이거나 소나타가 아니다."

 이는 맞는 말인가? 물론 맞는 말이다. '배중률'에 따라서, 비슷한 말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옷은 내 친구가 사준 옷이거나 그렇지 않은 옷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범죄자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은 불온한 책이거나 그렇지 않은 책이다." 등등.

 이 모든 문장은 논리적으로 항상 참이다. 항상 진리라고 해서 '항진恒眞 명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들에서 그것만을 본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이 문장 구조가 무조건(항상) 참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바보다. 세상의 모든 자동차를 소나타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은 틀림없이 소나타 자동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거나, 아니면 최근에 그 차를 구입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예전에 소나타에 치여서 사고가 났던 사람이거나 등등일 것이다. 자동차를 나누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유독 그렇게 나눈 것은 무슨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옷을 앞에서처럼 나눈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범죄자나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형사나 검사, 또는 판사나 변호사처럼 그쪽 계통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또는 범죄자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거나. 그런데 이제부터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갖고 사람들을 보기 시작해보라. 인생이 아마 무지무지하게 피곤해질 것이고,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라는 생각에서 평생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저렇게 불온한 책과 그렇지 않은 책으로 나누는 문장도 논리학적으로는 참이다. 그렇지만 그게 논리학적 참이라고 우기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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