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하물며 천 리는커녕 십 리도 채 안 될 함선에서 그 발 없는 말이라는 게 얼마나 빨리 움직일까. 나는 그걸 실시간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함장님."

"어 그래, 미나..."

미나는 내가 조금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자마자 옆에 있는 크리스틴이랑 카넬과 속닥속닥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함장님이 플로렌스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지 크리스틴?"

"네, 저도 레아스한테 들었어요. 둘이 의무실에서..."

"크흐, 부러운 양반이야."

다 들린다 이 녀석들아. 크흑,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냐.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말로도 부족한 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걸 긍정하면 큰일이 나겠지.

"몇 주 전의 나를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싶다..."

어딜 가도 나와 플로렌스에 관련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자고로 사랑 이야기가 사람들 관심을 끌기에는 제격이긴 하지. 특히 요즘은 제국군의 습격도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으니 소문에 살이 엄청나게 붙어갔다. 특히 모두가 모이는 휴게실에서 더더욱.

"정말 잘못 본 게 아니죠오, 레아스으? 플로렌스와 마스터가 의무실에서 키스를 하려 했다는 게?"

"정말이야 퓨리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마스터의 첫 키스는 내가 가져가고 싶었는데..."

퓨리스에게 자신이 본 게 맞다고 강조한 레아스가 아쉽다는 듯이 말을 줄였다.

"플로렌스가 부럽네. 오빠랑 키스도 하고... 그러고 보니 요즘 둘이 같이 붙어있는 때가 많았지? 안 그래, 카루?"

"에리얼 말이 맞아. 비실이랑 플로렌스가 요즘 자주 붙어있었어. 아 그렇지, 둘이 같이 다닌다고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말이야."

카루는 에리얼의 말에 동의하면서 돌연 폭탄발언을 꺼냈다.

"몇 주 전에 함선을 순찰하면서 본 건데 둘이서 아침 일찍 메이디 방에서 나오더라? 셋이서 같이 자기라도 한 건가?"

""뭐어어?!""

카루의 그 한 마디에 휴게실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있던 픽시들 모두가 크게 뒤집어졌다. 남녀가 같은 장소에서 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픽시들은 두 배로!

"정말인가요 카루 양? 그래서, 그래서 다른 이야기는 혹시 더 없나요?!"

사랑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린이 카루의 말에 특히 반응을 많이 했다.

"으응, 나도 본 건 그게 전부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 아무튼 둘이 같이 메이디 방에서 나온 건 확실했어."

카루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네이즈가 말을 꺼냈다.

"쭈욱 생각해봤는데 카루의 말을 들으니 확신이 생겼어. 며칠 전에 마스터가 레아스의 요리를 메이디 대신 맛봤잖아? 한 냄비 가득 끓인 걸 전부 다."

"맞아 네이즈. 그러고 나서 마스터 씨는 바로 의무실에 실려갔고."

그날 주방에서 같이 당번을 맡은 마요가 네이즈의 말에 동의했다.

"혹시...... 메이디가 홀몸이 아니게 된 건 아닐까?"

""에에?!""

이번에도 네이즈의 추측에 픽시들이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바보 인간이 메이디한테 뭐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아직 정신연령이 꼬마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큐비같은 꼬맹이들만 빼고.

"그, 그런 게 있어 큐비. 아무튼 그럼 플로렌스도 메이디처럼...?"

"네이즈 씨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안 그래도 요즘 마스터가 플로렌스 씨랑 메이디 씨를 더 아끼는 것 같아서 너무 부럽던데 어쩐지...!"

살짝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에레스가 네이즈의 말을 이어받았다.

"저, 저기... 그럼 종합해보자면 플로렌스 씨와 메이디 씨가 그날 밤에 마스터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이 될까요?"

라시스가 조심스럽게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합쳤다. 아주 정확한, 하지만 나는 맹렬히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었다.

"라시스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 그렇지만 아직 확정된 건 없으니 당분간은 저희들끼리만 내세운 추측으로 여기고 있죠."

"오필리아의 말이 맞아. 마스터 씨가 진실을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보자."

아마도 함선에서 제일 나이가 많을 픽시일 오필리아와 안나가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것참 정확하다 못해 내 멘탈을 후벼파는 추측이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