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구들아
내가 미쳤나봐



실은
어제 이상한 걸 봤어



서식지 부엌 싱크대에
까만게 덕지 덕지 묻어 있는거야



뭐 먹고 묻었나보다 싶었어



너무 더워 목이 말라
싱크대를 지나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는거야
반찬이나
간식이나
마실것도
물 조차도 없었어




냉장고를 처음 샀을 때
그 모습 그대로 깨끗했어
뒷통수가 싸해졌어
그저께 장 봐놓고 넣어둔게 나였거든
ㅁㅏ트 마감세일한다고
지름신 강림해서 냉장고를 꽉꽉 채웠어



창조주나 혈육이 드시더라도
하루만에 다 먹기엔 많은 양이야



별거 아니겠지 생각하려해도
어제 상황이 너무 괴이했어




일요일 저녁인데
혈육, 창조주는 없고
늦잠 자고 일어났는데 깜깜한 밤이고
전등을 킬려고 해도
스위치가 먹통인지
불빛도 안 들어왔어


더운 날씨였지만
한기가 치솟았어
아무도 없는 서식지에
끼익 끼끼익 소리가 들렸어
분명 나 밖에 없었거든




싱크대에서
물소리만 나야할 그 곳에서
싱크대답지않은 끼긱 소리가 나는거야
아주 작게



배수구가 막혔나?
쥐가 있나?
라는 생각은 오산이었어



얼룩이라 믿었던
검은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한거야
처음엔 진동벨처럼 제자리에서 흔들렸는데
내 시선을 알아채고 즐기는것마냥
격정적으로 움직이더니
싱크대에서 튀어올라 내 쪽으로 오는거야



심한 욕설을 나도 모르게 뱉으며
내 방으로 튀어갔어
그 검은 물체는 내 힘으로 물리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전중인 핸펀을 들고
119에 전화할지 112에 전화할지
생각할 무렵


창조주께서 톡을 보냈어
미리보기로 나온 첫 문구는
\'미안하다\'였어...



온갖 감정이 머리를 들쑤셨어
떨리는 손으로 창조주께 전화를 걸었지


한참 후에 연결된
창조주께서는
힘이 빠지고
지치신다는 톤으로


"왜 사왔냐?"



원망섞인 목소리였지만
창조주께서 무사하단 생각과
서식지 꼬라지가
유명 공포영화 \'봤다\'꼴이라 엉엉 울면서
괜찮냐고 이게 다 뭐냐고 물었더니









진짜 한심하단 투로
어제 산 물건들이 상했다는거야
음식 먹을려고 뚜껑을 열었더니
벌레가 땋
마침 정전이 땋
배가 고프니 잠든 사람 빼고 외식을 땋



톡으로 미안하다 니 빼고 외식해서 라고 보냈는데
미안하다만 보고 오해해서 엉엉 울고 전화했던거였지


이래서 유통기한이 중요한거구나라고 느꼈어

다행히도 우리의 콩은
저금통에 들어가면 절대 썩을 일이 없다.


그게 참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