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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기념 비덕 상플)

광원(218.149) 2017-12-23 22:51:33
조회 2204 추천 64 댓글 18
							


퍄 선갤 예전 자료도 다시 올라오고 금소니들도 있고 좋다

매번 잘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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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눈송이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부지런한 시녀들이 석등마다 불빛을 채워두었으므로 궁궐의 밤은 어둡지 않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눈발을 볼 수 있었다. 어렵게 찾아온 평화를 반기겠다는 듯이, 펑펑 내리는 눈을.


 “하아……….”


 비담이 내뱉은 숨이 눈송이만큼 하얗게 변해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는 마치 석등의 그림자라도 된 것처럼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는 중이었다. 화랑복이나 갑옷이 아니라 그저 아주 검은색의 평상복 차림이라서 정말로 그림자처럼 보였다. 별로 감상적인 사람이 아닌데도 비담은 떨어지는 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눈송이 몇 개가 닿고는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비담의 손에 눈이 녹은 물방울이 고였다. 그래, 이런 법이지. 잃어지지 않고 남는 것은 없는 법이지.


 세상의 모든 것은 웬만해서는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비담이 겪어온 상실은 제법 억울했다. 파편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언젠가 제 차지였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얼마 전, 어떤 죽음이 눈앞에서 펼쳐졌고 비담은 꽤 오랫동안 반신반의해 온 의혹을 끝내 인정해야 했다. 권력의 꽃송이에 앉아있던 그 여자는 꼭 그녀다운 방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여자가 숨을 내려놓은 순간 그는 자신의 몸에서도 무언가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애초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을 텐데 왜 그랬던 건지 이유를 몰랐다. 그 여자는 비담에게 여러모로 지독한 상실감을 실감하게 했다. 그녀에 따르자면 비담이 한때 소유했던 것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왕도 뒤바꿀 위세를 가졌던 어미, 몸을 도는 왕가의 피, 어쩌면 자신의 차지가 되었을 왕좌.


 나는 그걸 몰랐어. 영영 모를 수도 있었어.


 비담은 서럽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송이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리고 이번에는 정면을 응시했다. 불이 꺼진 왕의 집무실. 아직은 공주인 덕만이 왕위보다 먼저 계승받은 것이었다. 여왕이 되기 직전의 덕만이 매일 밤과 새벽, 때로는 아침까지 분주하게 일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오늘의 덕만은 그곳에 없었다.


 쏟아져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도 비담이 한참이나 서 있는 이유였다. 되짚어본 스스로의 운명이 상당히 불운했기 때문에 비담은 마침내 택한 결정을 혼자 정당화 할 수 있었다.


 그는 조금도 비틀거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쌓여가는 눈 위로 발자국을 새기면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공주궁이 있는 방향으로. 덕만의 전각으로.





*


 “공주님, 비담랑이 오셨습니다.”


 시녀의 목소리에 덕만이 고개를 들었다.


 “비담이?”


 난이 종식된 후로는 체념을 사람으로 빚어낸 것 마냥 무감각하게 돌아다니던 비담이었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덕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담이 걷는 길은 과거의 자신이 걸어온 길과 거의 같았다. 조금 다르다고 한다면 알게 된 자신의 신분이 왕의 딸이냐 반역자의 아들이냐 하는 정도의 차이였다. 눈앞에서 언니가 독화살을 맞았느냐 어미가 직접 목숨을 끊었느냐의 문제였다. 어떻게 보나 비담의 경우가 더 최악이었다.


 시간이 필요할 거야.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어도 그녀는 참을성 있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보다 길지도 몰랐다. 덕만은 자신의 상처조차도 낫게 할 수 없었다. 천명이 나오는 꿈은 언제나 생생했고, 공주란 불행한 자리였다. 특히 요즈음 더 그랬다. 그녀가 더 나은 마음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래도 비담의 우울을 달래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즉위를 눈앞에 둔 덕만은 몸도 마음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도 없었다.


 언제나 작은 죄책감이 마음 한 구석에 고여 있었고, 덕만은 죄책에서 기인한 애틋함으로 반갑게 비담을 들였다.


 “…들어오라고 해라.”


 방으로 드는 비담은 약간 젖어있었다. 덕만의 시선을 느낀 그가 어깨에 남아있는 눈송이 몇 개를 털어냈다.


 “별 거 아닙니다. 눈이 오기에 잠깐 서 있었는데…….”


 덕만이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창가를 내다보았다. 한겨울인데도 창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덕만이 눈 구경을 하겠다며 시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어둔 것이다.


 “그래, 눈이 제법 오더구나. 밤이 이렇게 평화롭다니 이상하다.”


 덕만의 맞은편에 앉으려던 비담은 덕만의 탁자 위에 놓인 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 존재를 잠깐 잊고 있었던 덕만도 뜨끔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다. 자음자작을 들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비담이 이미 물어오고 있었다.


 “왜 혼자 드십니까. 저라도 부르시지.”


 “금방 끝내려고 했지. 내일의 정무가 있을 테니 취해서도 안 되고.”


 덕만이 침울한 얼굴로 술잔을 두드렸다. 술병의 한 부분을 가리키고, 그 선을 따라 손가락을 그었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주량이라고 친절하게도 일러주었다.


 “나머지는 제가 마시겠습니다. 술잔 하나 주시지요.”


 비담의 말에 덕만은 픽 웃었다. 시녀에게 잔을 하나 더 가져오라고 이르는 목소리가 전보다 경쾌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술동무가 생긴 것이 꽤 기뻤다. 창밖으로 눈이 소복하게 내리고 있었고, 감상에 빠지기에 좋은 밤이었다. 비담이 왔으니 울적하게 마음의 밑바닥까지 파고들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날씨를 안주 삼은 짧은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비담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기를 걱정했지만 덕만이 고개를 저었다. 시녀가 가져다준 겉옷을 걸치고 있었고 별로 춥지 않았다. 우울함에 잠긴 두 사람이 가지는 술자리 치고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이었다.



 그 밤, 덕만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잔에 남은 마지막 술을 비우고 나서였다.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고 생각하고는 술기운을 식히기 위해 창가 쪽으로 가서 섰다. 쉬지 않고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덕만은 밖을 잠시 응시하다가 집무실 앞에서의 비담처럼 손을 내밀어 눈을 건드려 보았다. 손 위에서 녹아내리는 눈을 바라볼 때 그녀는 작게 속상해했다. 비담은 그게 어떤 심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술잔을 비운 비담도 일어나 덕만 곁으로 다가갔다. 덕만이 떨어뜨린 겉옷을 들어 어깨에 다시 덮어주었다.


 “공주님, 날이 춥습니다.”


 “그래,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창가에 기대고 서서 찬 공기를 맞는 덕만은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여서 비담은 만류하지 못했다. 감은 눈 위의 기다란 속눈썹, 사랑스러운 콧날과 붉은 입술. 몹시 마음 아픈 장면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만일 왕이 되면 행복해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무척 좋을 거라고. 그렇게만 된다면 언니를 죽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이 나라를 더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예.”


 “그런데 잘 모르겠다. 이제 이 신국의 왕이 될 텐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아서.”


 덕만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위로해 줄 만한 말을 찾기 위해 비담은 애써야 했다. 덕만이 그런 얼굴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 황후님이 내게 물어보셨어. 인명이라고, 한 번만 불러 봐도 되겠느냐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내 이름 같지가 않더구나. 다른 사람 이름을 들은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다.”


 “공주님이 살아오신 이름이 아니니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상심하지 마세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어쩌면 언니 이름 대신 부르신 게 아닐까…….”


 인명. 불리지 못한 이름. 버려진 둘째 공주의 이름. 곁에 없는 쌍둥이 천명과 한 글자를 공유하는 이름.


 “……….”


 “폐하를 보내셨으니 황후님도 많이 약해지셨겠지.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서운했어. 사막에 살 때는 항상 엄마가 내 이름을 불러줬었는데, 낭도일 때도 모두 불러줬었는데. 지금은 그래줄 사람이 없구나.”


 덕만의 슬픔은 깊고 견고했다. 오래 품어둔 감정은 녹지 않고 단단해지기만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비담은 몹시 속상했다. 무엇이 당신의 아픔을 잊게 할 수 있을까. 당신이 무엇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을까.


 “왕이 되면 모두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전부 잃어버린 것만 같다. 나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아.”


 비담은 옆에 선 덕만의 어깨에, 자신이 덮어준 겉옷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몇 번인가 그런 일이 있었다. 덕만의 심장이 이렇게 강인해지기 전에. 당찬 공주가 꾹꾹 참아보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리던 시절에.


 이제 덕만은 울지 않았지만, 가까이 서 있는 비담을 시험하듯이 올려다보며 물었다.


 “비담, 네가 한 번 불러 주렴. 내 이름.”


 그에게 초점을 맞춘 덕만의 시선이 또렷했다. 단지 저의 신하를 바라보는 것치고는 간절했다. 세상은 눈송이조차 소리 없이 내려 고요하고, 비담은 적막 속에서 사랑하는 주군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


 비담이 입을 열고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자, 덕만이 서둘러 기다림을 끝냈다.


 “됐다, 술이 과했는지 무리한 부탁을 했구나. 하긴, 며칠 있으면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반역이 될 테니.”


 덕만이 황급히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눈 구경은 이만 끝낼까, 변명하고는 창문을 닫았다. 그만 물러서려는 그녀를 멈추게 한 것은 약간 늦은 비담의 목소리였다.


 “……덕만아.”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가.


 “덕만아, 덕만.”


 아픈 마음을 녹이는 단어였다. 명치끝이 울렁일 만큼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덕만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숨길 수 없는 마음으로 찰랑거렸다. 형체가 만져질 것처럼 진한 걱정과 애정이 비담에게서 전해졌다. 그래, 비담, 너는 나를 사랑하잖아.


 “예전에 너는 나를 이렇게 부르지 않았는데.”


 덕만은 비담에게 답을 재촉하듯이 더 가까이 다가섰다. 한 손을 뻗어 비담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에게서 일말의 갈등이 가신 것은 바로 그 찰나였다.


 비담은 서서히 고개를 숙여 덕만에게 입을 맞추었다. 덕만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 입술이 촉, 촉, 포개어졌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입술이 멀어지는 시간은 점차 짧아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비담이 공주궁을 찾아왔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걸 둘 모두 눈치 채고 있었으므로 입술은 지체 없이 벌어졌다. 서로의 혀가 부드럽게 얽히기 시작했다. 호흡이 뒤섞였다. 숨결에서 서늘한 술 향기가 났다. 비담은 덕만을 품에 안은 것처럼 받치고 있었고, 덕만은 비담의 목에 팔을 감았다. 지금의 그녀에게 누군가 자신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준다는 사실은 꿈처럼 감미로웠다. 그 사실을 절실하게 원했다.


 입맞춤은 끝나지 않고 깊어졌다. 갈증은 가시지 않았고 비담은 멈추지 않기로 했다. 언제나 이 순간을 바라왔다. 그는 오랫동안 탐낸 보물에 손을 대듯이 열렬하게 덕만을 차지했다. 비담의 열기에 덕만이 나른하게 신음했다.


 “……으음.”


 역치(閾値)를 단번에 넘어서는 자극이었다. 비담의 신경이 번뜩였다. 그의 입술은 덕만의 입술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타고 내려가 옷깃 사이로 드러난 쇄골에 닿았다. 덕만의 어깨가 들썩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담이 가슴 사이에 입을 맞췄을 때 그녀는 그에게 몸을 기울여왔다. 무언의 허락이었다. 때로는 주어진 밤이 짧을 때도 있다는 걸, 예감한 비담은 망설이지 않고 덕만을 안아들어 침상으로 데려갔다.





*


 밤이 지나고 찾아온 아침은 여전히 고요했다. 밤새 눈이 온 모양이었다. 궁의 하루가 시작되기에는 일렀지만, 일찍 일어난 시녀들이 쌓인 눈을 쓸어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비담은 안온한 평화에 잠겨있었다. 바로 앞에는 덕만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다정한 손길로 흐트러진 덕만의 머리칼들을 넘겨주었다. 아직 시간이 좀 있었지만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내지 않고 떠날 방법을 몰랐다.


 얼마나 사랑을 속삭였는지, 서로 입을 맞추고, 몸을 쓰다듬었는지. 관능으로 흐느끼던 덕만의 숨소리와 가슴 뛰던 몸짓들. 자신이 덕만의 침상에 누워있지 않았다면 모두 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여길 나가면 전부 환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비담은 쉽게 마음먹을 수 없었다.


 그가 결심과 망설임 사이에서 반복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덕만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비담은 고뇌하던 마음을 숨기느라 당황해야 했다.


 “비담.”


 “…예, 공주님.”


 느슨하게 걸쳐 입은 비담의 옷깃을 덕만이 끌어당겼다. 비담은 덕만에게 가까이 다가가 품을 내어주었다.


 “가지 말아.”


 비담의 품에 안긴 덕만이 울적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지난 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주었는지 알고 있었다. 꼭 다음이 없는 사람처럼, 더는 만나지 못할 사람처럼. 사실 자신을 찾아온 때부터 눈치 챘다. 놀란 것은 오히려 비담 쪽이었다. 짐짓 평온을 가장하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헤매었다.


 “………예?”


 “떠나지 말고 여기 있어. 자책하지 말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


 알고 보니 그가 무엇이었다고 해도,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비담은 어제의 그녀에게 불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불행이 꼭 공주의 미덕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덕만도 얘기해야 했다.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야 했다.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했다.


 “나는 네가 필요해.”


 곧 한층 더 외로워질 자신을 두고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이 운명 속에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


 비담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덕만을 안고 있었다. 필요한 존재가 되어본 기억이 없었다. 일생에 그런 경험이 없었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차오르는 뜨거움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비담, 응? 떠나지 말아.”


 “……예.”


 그가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자 덕만은 아이처럼 웃었다. 그녀는 답을 받아내고서야 다시 몰려드는 졸음에 순응했다. 완전히 안심하지 못해 비담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였다.


 덕만이 새근거리는 숨소리로 곤하게 잠에 빠진 뒤, 비담은 그녀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곁에서 더 머물러도 된다는 것.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는 아주 기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겪어보는 생경한 통증이었다.


 실감을 할 수 없어서 잠든 덕만을 오랫동안 안고 있었다.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터였다. 곧 하늘이 더 밝아오면 분주한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른 아침의 궁은 휴일처럼 한적했다. 아직은 품에 덕만이 있었다.


 어쩌면 떠나지 않고 싶었어. 당신을 더 오래 보고 싶었어. 저 눈길을 걷는 것도, 같이 눈을 맞는 것도 더 해보고 싶었어. 돌아오는 다른 계절을 함께 보내고, 다른 밤에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어젯밤 눈을 향해 손을 뻗던 덕만을 기억했다. 모두 잃어버렸다고 했었다.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비담은 하나를 가졌다. 가장 소중하고 귀한 하나였다. 그는 덕만에게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곁에 있어도 괜찮다면 그럴 수 있었다. 무엇이라도 더 가져서 덕만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누구에게 무엇을 빼앗아서라도. 줄 수 없다면 최소한 덕만이 부러워하지는 않도록.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죽기 전에 그렇게 일러두지 않았던가. 아낌없이 빼앗아야 한다고.


 비담은 잠든 덕만의 이마에 가만히 입 맞추었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가지게 해줄게. 아무 것도 잃지 않게 해줄게. 내가 그렇게 할게. 나의 공주, 나의 여왕.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여기 있는 거야.



 덕만, 덕만아.
 닿아도 녹지 않을 단 하나의 눈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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