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이 금수초치를 발효한 3개 품목 중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가장 큰 피해를 초래하는 건 플루오르화 수소로 판단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플루오르화 수소의 제조 과정은 매우 간단한 편이다. 한국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형석을 채광해서, 절반은 제철소로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진한 황산과 반응시켜서 플루오르화 수소를 제조하는 방식인데, 문제는 고순도의 플루오르화 수소를 제조하는 과정이다.(내가 대학 일반화학 시간에 배운 바로는 진한 황산과 반응해서 생성되는 HF 기체를 농축하고 재증류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순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만약 한국에서 HF 제조공장을 건설하기 힘들다면 대만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다. 참고로 PPP로 환산한 대만의 1인당 GDP는 한국과 일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인데, 명목 환율로 환산했을 때의 일인당 GDP와 두 배 넘게 차이가 나는 국가다. 대만의 PPP는 거의 5만 달러에 달해 서유럽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준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아마도 대만의 국제정치적 상황이 매우 위태롭기 때문에 대만 달러가 실제 구매력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 대기업 입장에서는 대만기업에 하청을 두는 것이 매우 유리하다는 뜻도 된다. 대만인의 생활수준은 서유럽 수준인데도 수출하는 소재나 부품은 굉장히 싸기 때문이다. 즉 대만산 제품은 일본제 정도의 신뢰도를 가지면서도 일제보다 굉장히 싸게 공급이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대만이라는 나라 전체가 하청으로 먹고 사는 국가인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대만의 화학재료 메이커(가오슝에 대규모 화학단지가 조성된 걸로 알고 있다)가 2-3개월의 단기간에 HF 공급량을 2배로 늘리기는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대만 각 회사의 각 공장의 모든 공정별로 HF의 혼합비 등이 엄밀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대만의 화학재료 메이커가 즉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원하는 사양의 HF를 2-3달 만에 공급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볼륨과 요구사양 등의 문제를 고려하면 대만산 HF가 일본산 HF를 당장 대체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1~2년이면 일본제의 HF가 없더라도 대만제 HF로도 각종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이 단계에서 1980년대에 일본이 약 80%의 세계 점유율을 차지했던 DRAM에 대해, 일본의 기술자 전부를 헤드헌팅해 간 사건을 다시 HF분야에서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R&D센터(화학소재 산업의 특성상 꼭 대규모일 필요는 없다)를 조성하고 가오슝에 대규모 하청공장을 건설하는 방식이 아마 유력한 대안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베가 공갈치는 것처럼 당장 2-3달 내로 HF를 끊는 건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2018년에 전 세계적으로 출하된 약 14억대의 스마트폰, 약 3억대의 PC 및 약 1.5억대의 태블릿, 약 1175만대의 서버의 생산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Apple, HP, Dell 등의 분노의 화살이 D램 제조업체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아닌, 금수초지를 실시한 일본 정부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수출통제를 통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감산에 명분을 주면서 재고떨이 방식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도움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일본의 화학소재 메이커들도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LG전자와의 빅 비즈니스를 잃게 될 것이다. 이건 단순히 비즈니스를 잃는것 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소재 메이커는 톱 러너를 따라가는 방식에 의해서 경쟁력을 높여 비즈니스를 확대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메이커 입장에서는 그 귀중한 기회가 일거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일이 터진 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풀어도 이미 기차는 떠난 뒤다. 한번 망가진 신뢰관계는 두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최대 수혜국은 대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