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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12 모란ts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10.70) 2017.04.30 15:43:41
조회 1196 추천 50 댓글 13

														

날이 추워지자 홍력은 바빠졌다. 집을 비우는 일도 잦아졌고, 늦게 돌아오는 날도 많아졌다. 그래도 매번 현관에 서서 배웅하는 일림의 뺨을 감싸고는 무얼 갖고 싶니, 하고 다정하게 물었다. 일림이 도리질을 하고 다녀오세요. 하고 웃으면 품에 꼭 안고 한참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입을 맞추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찬 손으로 뺨을 감싸고 고개를 숙이면 낮게 웃고는 다녀오마, 하고 나갔다. 홍력이 나가고 나서도 일림은 한참을 멍하게 현관에 서서 무어라 입을 달싹거리다가 들어가곤 했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해가 짧아지고 날이 추워 심심해진 일림은 집안을 기웃거리다 자우와 함께 만두를 만들었다. 일림이 새우를 좋아하는걸 아는 자우는 예쁜 수정 만두를 많이 만들어주겠다 해주었다.

-피곤해.

지난밤 늦게 홍력이 돌아왔다. 이미 아침이 밝은지 오래였으나 날이 추워진 후로 침대에서 나오는걸 유독 힘들어했다. 몸이 저렇게 더운데도 추위를 타는구나, 싶었다. 미동도 없이 자다 일어났지만 그걸로는 부족한지 차를 한잔 마시고도 멍하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도로 자리에 누워버렸다. 일림이 옆에서 가만히 이마를 쓸어주자 빙긋 웃고는 옆자리를 툭툭 쳤다.

-날도 추우니까, 오늘은 게으름을 좀 부려볼까. 아가, 옆에 있어주련?
-예.
-착하기도 하지. 그래, 그럼 자우가 서신을 챙겨뒀을테니 그걸 좀 가져다주렴.

윗층 서재로 가자 책상 위에 가지런하게 쌓인 서신 몇통이 보였다. 그걸 들고 오자 홍력이 등 뒤에 베개를 괴어 반쯤 일어나 앉았다. 옆자리에 앉자 한팔로 일림을 껴안아주었다. 몸이 따뜻해졌다. 품에 기대어 눈을 감자 홍력은 천천히 작은 종이칼로 봉투를 열어 서신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뺨 아래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 박동이 좋았다. 새삼스레 제 가슴만이 아니라 남의 가슴에서도 이렇게 박동이 느껴지는게 신기했다. 살며시 팔을 들어 몸에 감자 튼튼한 팔이 등을 감싸안아주었다.

-네 아버님이 서신을 보내셨구나.

졸음이 오던 눈을 뜨자 홍력의 손에 들린 얇은 종이가 보였다. 익숙한 글씨체였다. 안부인사인가? 보통은 어머니가 편지를 보냈다고만 들었는데. 일림은 다시 눈을 감았다.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내용일거다. 다시 심장 박동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양자를 들였다는구나.

스르르 눈을 떴다. 일림이 아직 시집을 오기 전, 몇번인가 이야기가 오간적이 있었다. 가업이 이으려면 후손은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아직 일림이 어리다는 이유로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 물론 체면 상 내세우는 구실이었다. 데릴사위도 데리고 오지 못할 병신을 여식으로 두었음이 창피하였을 것이다. 사위가 아니라 사내아이에게 허씨 성을 물려주고 싶다 변명하려 하여도 몸져 누운 아이가 있는 마당에 양자를 들이는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엔 하루 빨리 죽으라 저주하는거나 다를바가 없으리라. 일림도 잘 알고 있었다. 늘 어둑어둑했던 집안의 가장 큰 걱정거리, 해결 못할 근심거리.

-잘 되었네요.

짧게 한마디를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오라버니일지, 아우일지 궁금하지 않았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그가 건강하고 밝고 똑똑한 사람이길 바라기로 했다.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그에게 부모의 앞날을 내맡기기로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네가 이 집에 오고 아직 한 해가 안되었는데.
-예.
-마음 상하지 않니.

큰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시집을 가기 전부터 준비를 하였다가, 새 아이와 신년을 맞이하고 싶어 부랴부랴 들여왔겠지. 못된 생각이 삐죽이 고개를 들었으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일림은 도리질을 하였다.

-괜찮아요.

가만히 손을 뻗어 종이가 접힌 모양대로 서신을 다시 접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모른척, 눈을 감았다.

-부모님도...연세가 있으시니까, 준비하셔야죠. 가르칠 일도 많을거고... 공방 일은 여자애한테는 알려주는게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그리고...

나는 실패작이니까. 라는 말을 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당신에게 떠넘겨진 실패작. 괴물에게 시집을 온다고 무서워할게 아니었다. 괴물이든 귀신이든, 이런 실패작을 데려가줄 사람에게 감사해야할 입장이었다. 바보. 심지어 남편은 괴물도 귀신도 아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귀여움을 받아본적이 있을까, 과분할 정도로 행복한 생활을 하게 해주었다.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어린 부인을 곁에 두고 예뻐해주었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늘 착하다 칭찬해주었다. 아픈 날이면 곁을 지켜주며 손을 잡아주었다. 멀리 나갔다가도 언제나 곁으로 돌아와주었다. 부모에게도 이런 아이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앞으로도 영영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음도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눈가가 따뜻해졌다. 눈을 꼭 감았다. 어릴적 울어서 발개진 눈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싫어했었다. 청승맞게 울지마라, 복 달아난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 노력했고, 곧잘 눈물을 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파도를 멈출 수 있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잠시 숨을 참고 울음을 멈춰보려 했지만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더운 손이 어깨를 쓸다가 곧 뺨을 감쌌다. 입술을 꼭 깨물었다. 울면 미움받을거야. 그런건 싫었다.

-괜찮아, 울어도 돼.

다정한 목소리가 허락하자 눈물이 쏟아졌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일림은 손을 더듬어 뺨을 감싼 따뜻한 손을 잡았다. 홍력의 손은 너무 크고, 일림의 손은 너무 작아 손을 크게 벌려도 손가락 두어개밖에 잡히지 않았다. 양손으로 바른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요.

홍력이 고개를 갸웃이하고 눈썹을 약간 들어올렸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생각을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손에 쥐인 따뜻한 손을 꼭 잡았다.

-나는 해줄 수 있는게 없어요.

손에 쥐인 따뜻한 손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그 손이 손을 꼭 감싸쥐었다. 남은 손이 뺨을 닦아주었다.

-왜 네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 지금도 이렇게 내 옆에 있어주잖니.
-그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무서워서 단 한번도, 그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저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내,내가...예쁘지도 않고, 애교도 없고...울고, 아파도, 날 멀리 보내지 않을거예요?

자꾸 눈물이 나서 마주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결국 일림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소리를 내어 울었다. 제 손을 쥔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일림.

머리 위로 더운 이마가 닿았다. 천천히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너를 울린 사람 때문에 울 필요 없어.

입술을 꽉 물었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몸이 일으켜졌다.

-네가 내 곁에 있으면, 그걸로 되는거야.

더운 품에 몸이 당겨졌다. 곧 등이 침대에 닿았다. 열이 오른 몸에서 옷이 걷어졌다. 다시 소리를 내어 울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몸에 열이 올라 찬 공기가 차라리 반가웠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가슴이 옥죄었다. 손 끝에서 힘이 빠졌다. 눈 앞이 깜깜해져 헐떡이며 손을 내저었다. 무서워, 물에 빠져버린것 같았다. 입이 막히었다. 이상하게도 차라리 입술이 닿자 숨쉬기가 편해졌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다. 그냥 울었다. 울어도 된다고 했으니, 울었다. 가슴에 오랫동안 고여있던, 이제는 온 몸이 빠져버릴만큼 차버린 바닷물을 전부 빼어버리고 싶었다. 곧 몸 안으로 낯선 통증이 느껴졌다. 무엇이든 버리는 일은 힘들었으나, 익숙하게 해오던 일이었다. 아랫입술을 물고 버티자 살며시 입새로 손가락이 들었다.

-입술, 상하겠다.

본능적으로 이를 세우자 곧 비릿한 냄새가 혀 끝으로 퍼졌다. 기운이 없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현기증이 나는지, 침대가 난파선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어지러워. 멀미를 하듯 헛구역질이 났다. 동시에 뱃속이 간질간질하고, 열이 났다. 식은땀이 흘렀다.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팔에 안긴 체온을 끌어당기며 어린아이처럼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무서워요.

-괜찮아.

큰 손이 다시 머리를 쓸었다. 이마가 닿았다. 겨우 다시 눈을 뜨려는데, 따뜻한 손이 눈을 가렸다.

-내 사랑.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두웠다. 파도가 멈추었다. 더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멀리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다시 차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이상 가슴 속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탈진한 몸을 작게 웅크리고 잠이 든 일림은 한번도 보지 못한 넓은 바닷가를 남편의 손을 잡고 걷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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