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제 혜정이의 서운함을 캐치하지 못함.
누군가의 말처럼 나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바라본 게 아니라,
너무 판타지적으로 바라본 경향이 있었던 것 같음.
이 부분 인정하고.
내가 홍쌤과 혜정이 사랑에 대한 서사에만 집중해서 리뷰를 써 왔던 건,
작가님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홍지홍, 유혜정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두 사람의 서사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이야.
오늘 리뷰는 이 부분에 대해서 풀어 볼까 해)
난 처음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할 때,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놓은,
두 사람의 관계성,
그리고 두 사람의 상호보완성에 대해 주목했어.
그리고 홍지홍, 유혜정이라는 각각의 캐릭터.
작가님이 이 두 캐릭터,
그리고 두 캐릭터의 서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그게 내가 두 사람의 서사를 구구절절 텍스트로 풀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걸)
이야기 해볼까 해.
1. 선생님과 제자로 만난 홍쌤과 혜정이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은 리스크를 아주 크게 안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첫 관계 설정을 '선생님과 제자'로 했지.
혜정이는 말 그대로 '막 나가는' 한 소녀였어.
가정의 핍박에서 견뎌내기 위해,
강해져야 했던,
그 소녀는 누구보다 '좋은 선생님'이 필요했어.
자라나는 '새싹'을 짓밟아 버리는 선생님이 아니라,
가능성을 믿어줄 수 있는 '선생님'.
그런데 혜정이 성격상,
'넌 변할 수 있단다'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뜯어고칠 기세로 달려든 선생님이었다면,
혜정이는 나가 떨어졌을 거야.
혜정이에게는 딱 홍쌤 같은 선생님이 필요했어.
적당한 자극으로 동기 부여 해주고,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
혜정이는 성장해야 할 소녀였고,
그 성장을 지켜봐 줄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는 건 너무도 필연적이었어.
그런데,
친구나 선배가,
홍쌤의 역할을 해낼 수는 없어.
13년 전 혜정이에게는,
자기가 본 받고 싶은,
존경할 만한,
'진짜 어른'이 필요했던 거니까.
그렇다면 홍쌤에게 혜정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무엇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한 소녀가,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어.
다르게 살기 위해,
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그런 혜정이를 통해 홍쌤은 지난 날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같은 직업인 '의사'가 되기 위해 달려갔던 시간들.
그 시간을 포기한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해줬을 거야.
누구를 죽일까봐 두려워 놓았던 의사라는 직업.
하지만, 혜정이와 함께 임산부를 살리던 날.
의사라는 직업이 보다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가슴 깊이 느꼈을 거야.
(물론, 혜정이 때문에 교사 때려 치고 의사가 다시 되기로 결정했다는 비약은 아님.)
다만, 자신이 진짜 하고자 하는 일이,
교사인지, 의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
자극이 되어 주었을 거야.
2. 13년 공백의 서사
두 사람의 서사에 13년이라는 공백을 주었어.
혜정이에게는,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감당해 내야 했던,
그래서 더 강해져야 했던 시간.
그 기간 동안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을 수도 없어.
강해지기 위해,
더 이 악물고 버티는 게 전부였던 삶.
물론, 남녀 간의 사랑을 신뢰하지 않아,
남자를 '이성'적으로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홍쌤에게 13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홍쌤은 혜정이를 잃고 나서야,
혜정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가슴에 각인돼.
혜정이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아,
늘 그리워 해야 했던 시간.
'한국에 나올 때마다 찾았던 너를,
이렇게 드디어 만나는 구나'
홍쌤에게 혜정이는,
'간절함이 선물해준 기적'인 거야.
3. '가족의 결핍'이라는 아픔을 지닌 사이에서 오는 동질감
내가 '저 아버지 돌아가셨어요'라는 말을,
어떤 누군가에게 건네면,
그 상대방은 굉장히 곤혹스러워해.
자신의 말이,
혹시나 '상처'를 건드릴까봐 매우 조심스럽거든.
하지만,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을 만나면,
아무 말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위로가 돼.
'나의 아픔을 굳이 너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넌 내 아픔을 알겠구나' 하는 공감대.
혜정이는 어린 시절,
'엄마'를 눈 앞에서 잃었어.
자신이 꿇리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를 상실한 것'은 너무도 큰 상처지.
그런데 아픔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홍쌤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대.
'이지홍'과 '홍지홍'이라는 명찰.
가족 없이 '고아'로 지내왔던 시간.
말하지 않아도,
그 시간의 '슬픔'이 그대로 느껴져.
두 사람은 '가족의 결핍'을 통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껴.
4. '상처'를 지닌 너와 나
혜정이에게 '엄마'가 없는 집은,
그저 상처일 뿐이었어.
새엄마에게 모질게 당한 학대.
그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지 않는 아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더욱더 강해져야만 했던 시간들이 존재했던 거야.
'홍쌤'에게도 가족 없이 '혼자'였던 시간은,
'상처'였던 거야.
단지, 가족을 잃었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폭력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삶.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삶.
그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야 했지.
혜정이와 홍쌤은,
'상처' 받아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했어.
5. 할머니와 아버지
하지만, 혜정과 홍쌤은,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모든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
무조건적으로 내 편인 사람.
혜정이에게는 할머니가,
홍쌤에게는 아버지가 그런 존재야.
자신들을 더 빛나게 해주는 어른들 품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어.
6. 결국엔 홀로 강해져야 했던 시간.
하지만, 혜정이는 '인생의 빛 한 줄기'였던 할머니를 너무 빨리 잃어야 했지.
혜정이는 할머니 때문에 보다 더 강해져야 했어.
잠자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없었을 만큼.
홍쌤의 곁에는 아버지가 오랜 시간 머물러 주고 있지만,
모든 것을 아버지께 다 기댈 수는 없어.
'힘겨움'이 생기면,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어.
병원을 나와 선생님이 되기로 했을 때도
결국은 홀로 내린 결정이었지.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혼자서 '아픔'과 '슬픔'을 감당하려고 했던 삶.
그렇게 홍쌤 역시 홀로 강해지는 방법을 택해.
7. 존경과 존중. 그를 통한 위로의 시간.
그런 혜정과 홍쌤은,
13년만에 만나.
13년 전에 혜정이에게 홍쌤은 '존경'의 대상이었어.
마음 우러러 멋지다고 '엄지' 척 들어줄 수 있는 사람.
혜정이가 아는 한,
'홍쌤'은 가장 멋진 어른이었을 거야.
홍쌤에게 혜정이는,
내가 지켜줘야 하는,
보호해 주고 싶은 여자야.
'나'보다는 '너'의 마음이,
더욱 중요해.
홍쌤은 혜정이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혜정이 자체를 '존중'해.
두 사람 사이에는,
존경과 존중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돼.
8. 관계의 틀을 깨고, 여자 대 남자로.
하지만, 너무도 이상적이게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두 사람을 13년 전의 관계의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도록 해.
홍쌤은,
13년만에 만난 혜정이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지만,
남녀관계라는 건,
결코 일방적일 수 없는 거야.
홍쌤은,
자신이 혜정이를 지켜주는 것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해.
혜정이가 자신을 지켜줄 수도 있고,
자신이 혜정이에게 기대어 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 해.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주고 받아야,
더 깊어지지.
홍쌤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으로 역할을 한정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13년 전에서 멈춰 있을 수밖에 없어.
자신한테 남자 대 여자로 다가온다는 홍쌤에게,
혜정 역시 '여자'로 다가가고 싶지만,
그 역할을 자꾸만 홍쌤에게 박탈 당하는 거야.
'받기만 하는 사랑은 의미가 없다'
혜정이의 용기 덕분에,
두 사람은 13년간 지속된 관계의 틀을 깨고,
진짜 '남자와 여자'로 마주할 수 있게 돼.
9.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
'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꼭 사랑을 해야 한다면 그건 홍지홍 선생님일 거예요'
혜정이는,
사랑을 생각하면,
'엄마의 죽음'이 먼저 떠올랐어.
사랑이란,
누군가 다쳐야 하는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쌤'과 함께라면,
그 어려운 '사랑'을 시작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 거야.
홍쌤을,
믿으니까.
홍쌤과 사랑을 시작한다면,
그 끝에 '절망'과 '슬픔'이 아닌,
'감사'와 '행복'이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두 사람 사이는,
서로를 향한 '신뢰'를 기반으로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견고해지겠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지금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에 성공할 수밖에 없으니까.
난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더욱 '성장'할 두 사람의 서사를 진심으로 응원해.
++++++++++
쓰다보니 진짜 길어졌네 ㅠㅠ
논문 한 편 쓴 기분이다 ㅋㅋ
이 긴 글을 읽어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 줄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이 닿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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