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온 아이템을 혜란이 자신의 필요를 위해 살려야 했는데 상사가 별로라고 엎으려고 드니까 한지원 편을 들며 기어이 혜란이 아이템 밀어붙인 거. 게다가 어차피 자신은 대변인으로 옮길거면 딱히 후배 견제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차기 뉴스 담당자인 후배랑 관계를 풀어놔야 하니까. 피디도 고혜란 못 잡아 먹어 안달인데 차기 앵커까지 자신과 사이가 안 좋으면 자기 대변인 가도 물고 늘어지고 힘들 거 아냐. 피디랑 관계 개선하긴 서로 너무 멀리 왔고 후배랑은 윈윈할 수 있으니까 냅둔 거.

어차피 여후배랑 서로 진정한 동료애나 끈끈한 선후배 뭐 이런 건 불가능하지만 후배도 자기처럼 서로 이해타산 맞으면 충분히 함께 갈 수 있는 타입인 거 그간 둘이만 이야기하며 서로 파악했자나. 한지원은 피디처럼 열등감에 쩔고 감정에 휘둘려 무조건 트집잡아 자신을 공격하고 못 망쳐 안달할 사람 아니고 서로 하나 두고 경쟁할 때는 극심하게 날 세우며 부딪혔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 그간의 모든 다툼은 흘려보내고 쿨하게 손잡아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 주는 협력자 관계가 될 수 있는 애고 자기도 그러니까 그런 계산 모두 끝낸 혜란이 후배한테 손내민거. 일타쌍피 노린거지. 

그리고 자기만 보면 열폭하는 어정쩡한 남자들보다야 차라리 쿨한 한지원이 그 자리에 앉는 게 앞으로의 자기 행보에도 보탬이 되기도 하고. 

이제는 후배에게 볼품없이 밀려나는 게 아니라 자기는 영전해서 가는 거니까 쓸데없이 한지원이랑 기싸움 할 필요 없고 자기를 밀어내는 거 아니면 기왕 자신은 떠나는 길, 자신과 닮은 점이 많고 더 높이 올라가려 할수록 자신처럼 앞으로 성차별이라는 유리천장에 부딪혀 좌절하고 고생할 후배에게 그 길을 미리 걸어온 선배로서 순수하게 도움과 조언을 주고 싶기도 했겠지.

본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도 자신에게 해만 되거나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한 자신도 구현하고 싶은 사회정의구현을 위해서도 두루두루 걸릴 게 없이 다 좋은데 한지원을 안 밀어줄 이유가 없지. 

심지어 마침 자기가 원하던 아이템까지 물어왔는데. 

유일하게 걸릴 만하다면 그간 서로 밀어낼려고 하고 밀려나지 않으려고 버티는 과정에서 쌓인 앙금인데 이건 감정적인 앙금이라기보다 남보기엔 살벌했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비열한 수단까지 동원했었지만, 그게 상대방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치열한 적자생존을 위한 경쟁과정의 일환으로 벌어진 일인 거 서로 아는 거니까. 마치 암컷무리를 거느리고 왕초노릇하던 늙은 숫사자가 더 젊고 힘쎈 숫사자에게 세월이 흘러 밀려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런 과정이었던 거잖아. 한지원도 계속 혜란에게 그 점을 어필했던 거고. 

피디는 쪼잔하게 자신이 혜란에게 패해서 밀려났던 걸 여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자한테 밀려났다는 사실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고 자격지심이 생겨서 아직도 열폭을 하고 뒤끝 만발인데 지원이나 혜란은 그 한심하고 찌질한 레벨까진 떨어지지도 않지. 훨씬 이성적인 애들인데. 피디가 한지원을 위하는 척해도 혜란을 저격하려는 수단으로 쓰는거고 한지원이 어려서 자기 뜻대로 다루기 쉬울 거라고 여겨 그러는 거지. 아마 한지원이 앵커우먼 되서 자기 주장 시작하고 피디 말대로 다 따르지 않고 자기 영역 구축하기 시작하면 혜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밀어내지 못해서 또 ㅈㄹ날 놈일껄? 한지원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함께 일할 사람을 혜란과 피디 중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혜란 고를껄? 둘은 그런 관계임. 혜란이 방송국을 떠날 계획이라 지원은 선택의 여지 없이 그 열폭전문피디와 일해야겠지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