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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ㅁㅅㅈㅇ 비밀이 있는 베니와 사랑에 빠진 게이 8

ㅇㅇ(182.213) 2014.08.23 23: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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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아침을 먹으며 베니는 여전히 지난 밤 흘러나왔던 뉴스와 드라마 얘기들뿐이었다. 게이는 그의 말을 막고 ‘오늘 오후에 같이 산책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베니는 심드렁한 말투로 ‘그러죠’라고 대답했다. ‘마트에 같이 가는 건 어때요?’라는 게이의 물음에는 ‘그건 좀... 별로 살 거 없는 것 같아요’라며 빙빙 돌러가며 피하는 베니였다.



“그래서... 학기 등록은 할 거예요?”


“네 그래야죠. 이번 학기만 공부하면 졸업할 수 있으니까요”



 * *



점심을 먹고 나서 베니의 품에 안겨 그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던 게이가 문득 말을 건넸다


“예전에 저 간병해줬던 H 있잖아요”

... 네 알아요”








“오늘 오후에 오기로 했어요”








게이는 자신이 왜 그런말을 던졌는지 스스로 말해놓고도 놀랐다. 다만 H가 남편 될 사람과 이미 영국으로 돌아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얼마 전 게이에게 전화해서 조만간 얼굴을 보러가겠다고 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어제 대학교에 전화를 해본 후에 종일 생각에 잠겨있던 자신이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라 게이 자신도 당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의심쩍은 부분을 해결하고 싶었던 게이가 곧 H에게 문자로 오늘 잠깐 집에 들러줄 수 있냐고 물었고. H는 애인이 일 때문에 멀리 간 상황이지만 혼자서 가겠다고 답변을 해왔다.








 * * 








오후가 되도록 베니는 별 말이 없었다. 다만 예전처럼 집안일을 해놓고 혼자서 피아노를 치다가 갑자기 ‘H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오늘은 산책 가는 게 어때요? 날씨가 좋은데...’라고 게이에게 물었지만 그녀가 안 될 것 같다고 거절했고 베니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없었다. 





이유 없이 부산스러운 그의 행동에 게이는 베니가 당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이는 처음엔 단지 H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이런 불순한 의도가 섞인 마음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부르고 싶진 않았다. 물론 그가 대학생이 아니어도 상관없었지만 왜 줄곧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는지 궁금한 마음이 커져갔다. 해가 질 즈음. 베니가 조심스럽게 ‘그래서.. H는 언제 온다고 해요?’라고 물었고. 게이는 별 감정 없이 ‘한 30분쯤 뒤에 도착한다고 한 것 같아요... 같이 저녁이나 먹죠 뭐’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베니는 ‘그럼 H를 위해서 뭘 좀 특별한 걸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라며 주방으로 향했다.





게이는 소파에 앉으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가 설령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더라도 그 의도는 게이 생각에 분명 한가지였다. 자신과 친밀해지기 위한 것. 그렇다면 지금쯤은 솔직하게 사실을 고하고 용서를 빌어도 될 일이었다. 베니와 자신은 사랑하는 사이니까. 그런데 베니는 어쩐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게이는 설령 H가 오더라도 그가 크게 당황하지 않게 인사나 하고 보낸 뒤에 대화를 하면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부엌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베니의 악! 하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놀란 마음에 더듬거리며 주방으로 간 게이. 베니는 어느새 게이 앞으로 와서 신음소리를 참는 목소리로 우물쭈물 말을 했다.








“어쩌죠... 손을 깊게 베인 것 같은데...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베 베니 괜찮아요?”








고통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게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게이가 급하게 그의 손을 잡았는데 뜨끈한 무언가가 손에 가득 흐르고 있었다. 








“얼른 치료만 받고 올게요. H랑 같이 있어요. 괜찮죠?”





“그럼요. 빨리 다녀와요. 기다릴게요.”








 * *








베니가 급하게 집을 나선 후 얼마 안 있어 H가 집에 찾아왔다.





기쁘게 그녀를 안아주고 한동안 재회의 기쁨을 나누다가 H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집이...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요?”








“음... 새로 온 간병인이 저보다 솜씨가 좋은 것 같은데요? 질투나라”





“헤헤... H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한껏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애교를 피우던 게이. 그런 그녀의 이마에 쪽 하고 키스를 해주더니 H는 달라진 집 좀 구경 하자며 여기저기를 어슬렁 거렸다. 그러다가 피아노 위의 종이를 발견하곤 ‘피아노 위의 종이가 있는데.. 이건 뭐예요 봐도 돼요?’라고 물었고 그게 뭔지 아는 게이는 기쁘게 ‘그럼요~’라고 대답했다.





종이 위의 글씨를 읽어내려 가는 H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으흠...’ 하는 소리를 내던 H가 약간 의아하다는 소리로 게이에게 물었다.








“... 게이, 혹시 지금 연애해요?”





“힉- 어떻게 알았어요?”








“오마이갓~ 드디어 게이같은 천사를 만났구나- 정말 잘 됐어요-”








게이에게 성큼 다가와 꼭 껴안아 준 H가 자신의 손에 든 종이를 팔랑거렸다.








“게이... 피아노 위에 있는 종이가... 아주 뜨거운 사랑의 징표같은데요?”





“우와.. H, 추리도 잘하는지 몰랐어요. 그건 그냥 그가 저랑 같이 연주하고 싶은 곡 써놓은 종인데... 헤헤”








약간 쑥쓰러워진 게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H는 파하하 웃었다. 








“귀여워라... 게이, 이건 연주곡 목록이 아니라 어린 남자애의 연애 스킬 적어놓은 페이퍼 같은데요?”





“네??????”








한껏 올라간 눈썹을 한 게이가 귀여웠는지 H는 소파에 털썩 앉아 그 종이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씨를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흠.. 보자... 일단, 줄표를 치고 주르륵 목록을 달아놨네요. 다정하게 말해주기. 하이팅 무비 참고하기, 예를 들어? 머리를 말려주거나 입에 음식을 떠 먹여주기~ 그리고 애정표현에 서투른척 하기. 아하하 귀여워라. 악기를 다룰 줄 알면 좋다. 또... 한없이 다정하게 굴었다가 무관심한척하기. 동정심을 유발하기, 눈 앞에서 갑자기 사라지기.. 오오 이런건 위험한데~... 그리고 이 목록에 죄다 가운데 찍- 그어놨어요. 뭐... 이미 실행했다는 거겠죠?”








H가 짓궂게 종이의 내용을 읽는 동안 게이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동안 자신과 생활을 하면서 언제부턴가 쓱쓱 적는 소리가 나서 물어보면 늘 레슨곡으로 준비해야할 것과, 자신과 연주하고 싶은 곡을 그 때마다 적어놓을 뿐이라고 대답했던 베니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게이는 아까전까지 가지고 있던 의구심은 저 바닥으로 밀어버리고 베니가 그 종이에 언제부터 적기 시작했더라.,,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게이가 한참을 혼자 생각을 하는 동안 H는 뭔가 발견한 듯 종이를 뒤집어 봤다. 뒤에는 앞에 쓴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H는 눈으로 첫 줄만 쓱 훑곤 게이를 놀려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읽으려다가 이내 입이 다물어졌고. 그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의 스킨십(상처),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흔적 남기기(흉터), 술 취해서 흔들리는 모습 보여주기...(역겹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기’








H는 차마 그 글들을 읽어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항목들은 모두 가운데 줄표가 그어져 있었는데 마지막 줄에만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 걸렸다. 





“게이... 혹시 애인이 어떤 사람이에요?”








혼자 생각에 빠져 있던 게이가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실은... 지금 제 간병인이에요” 








지난번 자신이 아팠을 때 H와 통화가 되어 어찌어찌 넘어갔더라도 베니와 지금같은 사이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게이는 조금 감정적인 자신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H는 설령 자신과 베니가 고용인과 간병인으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을거라고 확신해서 꼭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H의 대답에 게이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게이, 우리 센터에서는 병원 이동 서비스 같은 1회성이면 몰라도... 이성간에 1:1 간병인을 붙여주지 않아요. ” 








<14>








흔들리는 자신의 몸을 어찌하지 못하고 서 있는 게이를 당겨 자신의 옆에 앉힌 H가 가만히 그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센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현재 간병인과 센터가 약간 거리를 둔 시스템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물론, 창백해진 상태로 떠는 게이를 염려해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규정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고 첨언하는 H였다. 








“베니가 이 지역은 좁아서 간병인이 많이 없다고 했어요...”








게이가 변명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물론 게이도 처음에 하루 종일 자신을 케어해야하는 간병인이 이성이라는 것이 마뜩찮았지만 베니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었으니까. 








“흠... 그렇다면 서비스 신청자와 상의를 했을렌데.. 게이가 괜찮다고 한거예요?”








게이는 자신도 모르게 벌리고 있던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은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두 여자는 한동안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당장 전화해서 알아보고 싶어도 이미 센터는 문을 닫은 시간이었고 베니는 어쩐지 한 시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뭔가 석연찮은 듯 H는 내일 꼭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게이에게 당부를 했고 자신도 센터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내일 오전에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애인에게 전화를 걸면서 집을 나섰고 집에는 게이 혼자 남았다.








게이는 밤늦도록 베니를 기다렸다.








그녀는 오히려 어제 대학교에 전화했을 때보다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친구들의 시기어린 질투 때문에 이간질을 많이 당했던 게이는 이 상황에 확실한 건 베니에게 확인 받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도 거른 채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날따라 집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의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게이는 결국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다가 답답한 마음에 TV를 켰다. 





몇 개의 광고가 지나간 후에 심야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몇 개의 재미없는 세션이 지나갔고 그 중에는 베니가 종종 들려주던 소식도 있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귀에 거슬려서 TV를 끄려다가 어떠한 단어가 들리는 순간 게이는 어쩐지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다.








<... 가 종적을 감춘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네 건의 살인을 저질렀고 그 중 최근 두 달 전에 살인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이후 종적을 감춘 상황입니다. 통통한 체형에 붉은 머리의 여성만을 타겟으로 노려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초점을 맞추고 수사중이나, 우발적으로 보이는 사건 현장과는 달리 전혀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아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될 뻔한 R씨가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실마리를...>








이전에 베니가 종종 전해주던 사회란의 소식에 실려있던 뉴스였다. 옆 도시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인데 범인이 잡히지 않아서 수사망이 게이가 살고 있던 동네까지 퍼지고 있다는... 베니가 그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게이는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져서 ‘무서워요’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주길 원했던 기억이 스쳤다. 








그런데 갑자기 미묘하게 톤이 올라가고 흥분된 여자 앵커의 목소리를 듣던 게이의 눈이 점점 커졌다. 








<범인의 마지막 범행 대상이었던 피해자 R씨는 시각장애인으로 사건 당시 침착한 대응으로 살아남아 그의 연쇄 살인을 멈춘 생존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정신적 충격으로 진술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그녀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최근 수사가 다시 활개를 띄고 있습니다. 다음은 생존자 R씨의 증언 내용입니다.>








게이는 자신도 모르게 방으로 뛰어가듯 도망쳐 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거실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TV속의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그 문틈을 찢고 파고들듯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내 목을 누르며 자길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버리겠다고요. 그리고... 역겹지만 살인범은 부드럽고 좋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살았으나, 반드시 이 악마가 잡혀야 한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습니다. 혹시라도 주변에서 ... >








 * *








게이는 밤새 뒤척이며 자신이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사회성은 부족해 보였으나 그토록 자신을 위해서 헌신해 주던 사람이 왜 굳이 타인을 죽였단 말인가? 그리고 우습게도 자신의 외모를 떠올려보면 뉴스에서 말하는 통통한 외형도, 붉은 머리도 아니었다. 게이가 알기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명확한 기준이 있고 그것에서 어긋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이 타겟이 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다만 공통점이라면 그 5명의 여자 중에서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이 한 명 겹친다는 것뿐이었다. 





종일 긴장해서 피곤했던 게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베니를 만났다. 쭉 뻗어서 끝을 알 수 없는 도로 위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던 베니가 반갑게 달려와 그녀를 안아주더니 꼭 껴안고 귓속에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꿈이었다. 








“일어나요. 벌써 12시가 넘었어요”








그리고 게이는, 그 다음날 베니의 따뜻한 키스를 받으며 꿈에서 깨어났다.











45.





식사를 마친 후 게이는 소파에 앉아 점자책을 읽고 있었고 베니는 분주하게 집안일을 했다. 얼마간의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다가 세탁실에서 달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게이는 그날 처음으로 베니에게 말을 건넸다.








“어제 H가 당신을 꼭 보고 싶어 했어요... 기다리다가 애인이 기다린다고 금방 돌아가긴 했지만... 그나저나 베니, 손은 괜찮아요?”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와 함께 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원에 갔는데...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았어요. 빨리 집으로 오고 싶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좀 멀리 있는 응급실까지 다녀왔거든요. 치료 끝내니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요. 미안해요”








‘그럼 그렇다고 전화 해줄 수도 있었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게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난 밤 웅크린 자세로 들었던 앵커의 말 들 중에서 ‘20~30대 남자’ ‘섬세한 솜씨’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가 자신에게 했던 거짓말들까지... 








 * * 








저녁 시간이 되도록 H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게이는 차마 자신이 센터에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아 줄곧 전화기를 옷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이윽고 이미 센터가 문을 닫은 시간이 지나버렸고 둘의 식사시간이 찾아왔다. 게이는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베니의 뒤에 가서 그를 꼭 안았다. 그가 살짝 굳은 듯 했지만 게이는 좀 더 대담해져서 베니를 뒤로 돌려세우곤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급하게 입술을 부딪혀오자 베니는 반자동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게이는 그의 그런 행동을 기다렸다는 듯이 깍지를 끼고 손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평소보다 거칠게 호흡을 섞어서인지 입술을 떼었을 때 베니는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에 반해 게이는 숨을 쉬지도 않는건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힘겨운 말이 새어나왔다.








“왜... 손에 상처가 없어요?”





“...”








“어제... 손을 다쳤다고 했잖아요. 하루만에 다 나은 거예요?”





“....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다 오해예요”








게이는 울음을 겨우 삼킨 목소리와 함께 그의 팔을 쥐었다.








“내가 믿을 수 있게 설명해줘요.”





“알겠어요. 그 전에...”








게이는 갑자기 목에 따끔한 느낌과 함께 베니의 품에 안겨 기절했다.














<15>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게이가 일어났을 때는 그녀의 팔과 다리가 침대 다리와 연결된 끈에 묶여있었다. 제발, 아니길 바랬으나. 익숙한 베니의 향기에 게이는 절망했다. 베니가 침대에 올라가 게이의 목을 누르고 천천히 말했다.








“... 먼저 목을 깨끗하게 자르고, 그 다음에 당신의 눈을 가져갈 거예요. 이제 당신은 내 것이 되는거예요. 기쁘지 않아요?”








게이의 달싹이는 입을 보며 어차피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듯 베니는 목을 누르던 손을 그녀의 입으로 가져가 꽉 틀어 막곤 자기 얘기를 이어갔다.








“난 여자들이 자신의 몸을 주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걸 보는 게 좋았어요. ... 억지로 빼앗으면 ... 성취감이 더 크다는 걸 알거든요”








게이는 그의 말에 지난밤에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녀는 위험한 순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자신이 살인마의 도발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수사기관에서 추측하기론 그것이 범인의 흥미를 잃게 했고 범행을 지체하게 된 원인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는 사람에 의해 현장이 발견되면서 그나마 그가 20~30대로 추정되는 남자라는 단서를 잡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다.





실제로 R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삶의 의지가 없었으며 차라리 남의 손에 죽고 싶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 일을 계기로 생의 의지가 불타올랐다며 반드시 그 살인마를 잡아야한다는 식의 열변을 토하는 것으로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었다.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는 베니의 떨리는 손, 그리고 그가 말한 살인의 이유를 떠올려 보면 그의 살인 동기는 참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시작된 것 같았다. 게이는 이상하게도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나 어쩐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 * 





  


베니는 게이의 입에서 자신의 손을 떼고 그녀의 애원과 절규를 기다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한 손엔 그녀의 입을 틀어막을 수건도 쥐고 있었다. 두 눈을 꼭 감고 수 초간을 기다렸으나 베니의 귀에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초침소리만 울려댔다. 그의 미간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기어코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살려달라고 소리치지 않는 거예요 왜!!! 당신마저... 내 계획을 망치려 들지 말아요.”








게이는 갈등하고 있었다. 울고불고 살려달라고 해야 할 텐데 어쩐지 그가 자신을 죽인다고 하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조금 더 냉정해져보자면, 생존자가 말한 것처럼 의연하게 대처하면 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게이는 더 큰 감정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베니를 마음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직감이 처음부터 베니를 위험한 사람이라고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줄곧 그 위험한 씨앗을 발 밑에 꾹 누르고 있다가 이제와서 무시할 수 없게 커버린 괴물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게이는 그를 어떻게 해서든 지옥에서 구원하고 싶었다. 


심호흡을 한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리치고 미친듯이 애원할게요. 대신, 내 요구가 하나 있어요. 그동안 어떻게 된 건지.. 왜 나를 선택했는지 알아야겠어요. 이야기가 끝나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말해 주지 않으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거예요.” 








 * *








‘나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라는 말과 함께 베니는 자신이 어떻게 살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예전에 게이에게 들려줬던 연애 실패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녀가 한 갱단의 멤버였고 베니의 물질을 착실히 받아가던 여자가 그로부터 과한 구애를 받자 갱 멤버들에게 이상하게 얘기를 전달해서 몹쓸짓을 당했던 과거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베니의 얼굴만은 마음에 들었는지 위쪽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말에 더욱 자극받은 갱 멤버들이 성적인 폭행을 포함해서 본보기처럼 그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온 몸에 상처가 남은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베니는 자신의 가질 수 없었던 사랑을 보상받고 싶었다. 베니는 이 말을 하면서 버림 받은것에 화가 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그녀와 닮은 여자들의 ‘무엇’으로 진심 어린 선물을 보내서 자신의 마음을 인정받고 싶었다고 했다. 





베니는 그녀와 외형이 비슷한 여자들을 만나면 충동적으로 사랑을 고백했고 당연히 거절하는 그녀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신체를 훼손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게이는 자신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미디어에서는 수사에서 범인을 특정하기 위함과 너무 잔혹한 면이 있어서 보도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베니는 그동안 살인한 여자들의 몸에서 전리품처럼 신체 일부를 가져갔던 것이다. 





처음엔 발가락, 손가락, 입, 코, 그리고... 눈을 취할 순서가 되었다. 우발적이었던 살인이 반복이 되자 베니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신은 무척 분노해 있으며 그녀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이다. 








 * *








그런데, 하필 첫사랑의 모습을 보고 따라간 여자가 생존자 R씨였던 것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론 살해에 실패했고, 베니는 더욱 초조해졌다. 자신의 계획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제 R씨는 경찰의 보호를 받을테니 타겟을 바꿔야 했는데, 베니는 자신의 실수를 용납할 수가 없었고 첫사랑 대신 R씨의 대체제를 찾기로 했다. 자신의 실패를 만회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동네를 넘어 오다가 우연히 저녁에 마트에서 H와 함께 장을 보고 있는 게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H가 귀가한 후 당장 게이의 집으로 쳐들어가 살인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베니한테 살인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가 생긴것이다.





‘혹시... 그녀가 이전의 여자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어렵게 빼앗아야 가치가 있는건데... 그래야 나의 진정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건데...’





얼마간 고민하던 베니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냈다. 





게이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 줘야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할 이유를 만들어주면, 적어도 R씨 때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그 삶의 의지를 심어 주는 방법으로 그녀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 * 








힘겨운 말들이 공중에 흩어졌고... 그녀의 얼굴 위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뚝뚝 떨어졌다.





게이는 그것이 베니의 눈물임을 알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베니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길 바랬다. 사랑의 실패 한번으로 이렇게 무너진 남자를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자신이 20년간 쌓아온 상처를 그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이야기하고 자신을 온전히 인정했던 그 날 밤처럼... 하지만 게이는 자신의 동요를 베니가 눈치채면 그 의도를 알아챌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게이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고개를 돌리고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베니가 게이의 턱을 쥐고 가운데로 오게 했다. 말을 겨우 마친 베니는 결국 그녀가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말을 했다.








“날 보고 말해줘요. 날... 용서해 줄 건가요?”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녀들과 하늘에 계신분만 할 수 있는거죠. 베니도 알고 있잖아요.”








게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 하곤 베니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어 들려온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듯 낄낄거리며 웃는소리였다. 








“아니요 게이. 그건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니에요." 








게이는 그의 웃음소리에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H는 어떻게 했어요.”





“걱정마요. 우리집 지하실에 가둬놨으니까. 그녀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거든요.”








“H가 이곳을 나가면서 애인에게 전화를 했었어요. 아마 경찰이 곧 찾아올 거예요.”





“괜찮아요. 이제 다 그만 둘거예요. 그녀는 곧 풀어줄거고요."








그 말과 함께 베니는 게이의 목을 눌렀던 손을 살며시 들었다. 그가 자기 얘기를 하느라 시간이 꽤 지체됐을 터였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이제 모든 걸 그만두겠다고 한 베니의 태도에 용기를 얻은 게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그 말을 해주길 기다렸어요. 고마워요... 지금이라도 경찰에 자수해요. 오늘일은... 없던 걸로 할게요.“








게이는 내심 기대했다. 그의 체념한 듯한 말에 함께 한 지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걸 느꼈다. 자신과 함께한 지난 시간이 그를 바꾸어놓았구나. 그리고 게이는 결심했다. 그가 교수형에만 처해지지 않는다면 그가 남은 평생을 죽은 여자들에게 속죄하면서 살 수 있게 돕겠노라고. 


하지만 베니는 그녀의 기대를 낭떠러지 밑으로 밀어버렸다.


 


"이제 아무렴 상관없어요... 당신을 죽이고 나서 이곳을 나가면 그만이니까.” 



 



게이는 다시 한번 목에 따끔 하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엔터가 쓸데 없이 많아서 고치다가 자꾸 오류나서 걍 올림.... 쓸데 없는 스압 미안 ㅠㅠ 다음편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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