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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의 꿈

운영자 2017.09.25 10: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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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의 꿈

  

호텔의 예식부에서 하는 친구 딸의 결혼식장에 갔었다. 둥그런 테이블에 몇 명의 고교동창의 얼굴이 보였다. 음식을 나누면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로펌의 대표변호사를 하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아내가 전원주택에 사는 게 꿈이었어. 그래서 오포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데 차가 막힐 때면 이게 보통일이 아니야.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잔디가 그럴 듯 하지만 살아보니까 항상 잡초가 잔디를 이기는 거야. 잡초를 뽑는 게 일이라니까. 겨울에 눈 오는 풍경은 좋은데 쌓이는 눈을 다른 집에서 치우면 나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누가 줘서 개도 한 마리 키워봤는데 그게 사람을 꽉 붙드는 거야. 밥을 챙겨 먹여야 하고 말이야. 여행을 갈 수가 없어. 그래서 주인에게 돌려줬지. 하여튼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전원주택에서 살 자격이 없어.”

그 자리에서 같이 스테이크를 먹던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사업을 접고 이십년 전에 아예 예산으로 내려갔어. 수덕사 부근의 농가주택을 사서 지금까지 거기서 혼자 살고 있어. 장작을 패고 물을 긷고 그렇게 스님들의 수행생활같이 시작했지. 처음에 먹물같이 캄캄한 밤에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갔다가 방으로 돌아올 때면 뒤에서 뭐가 잡아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머리가 쭈뼛했지. 무서웠어.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까 이제 한밤중에 중천에 뜬 달빛에 나뭇가지가 바닥에 어른거리는 걸 보면서 즐기게 됐어.”

“요즈음은 시골사람들 인심이 고약해서 귀촌해서 살기 힘들다면서?”

내가 물었다.

“시골에 정착하려면 마을 사람들한테 잘해야 해. 행사 때 마다 마을회관에 돈을 내기도 하고 막걸리도 수시로 돌려야 해. 내 경우는 집집마다 찾아가서 놀기도 하고 기금을 내라면 냈어. 그래야 융화가 될 수 있어. 요즈음 서울에서 내려와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을 보면 시골사람들하고 전혀 어울리려고 하지를 않아. 글을 쓰던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같이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해가가 그런 예술가 아닌 사람들은 도대체 밤이면 뭘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

나도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어린 시절 강원도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할머니의 세 칸 초가집에서 녹음 짙은 여름이나 눈 덮인 하얀 겨울을 보냈었다. 소금쟁이가 물주름을 잡고 기어가는 투명한 개울물의 모래바닥에 있는 고동을 잡기도 하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기도 했었다. 이십대는 책 보따리를 싸들고 강가의 외딴 빈집을 빌려 한겨울을 보내기도 했었다. 도심의 공간에서 바빴던 삶이 끝나가고 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더러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통해 산골의 오두막에 사는 대리체험을 하곤 했다. 스님이 얼어붙은 시냇가의 얼음을 깨 물을 길어오고 채소밭을 가꾸고 하면서 사는 단순 소박한 삶 자체가 수행이었다. 스님은 맑고 투명한 삶의 모습과 매일 자연을 화두로 삼아 얻은 깨우침을 원고지위에 또박또박 아름다운 수필로 남겨놓았다. 고난은 깊은 산속까지도 따라가는 것 같았다. 스님이 없을 때 마을에서 누군가 심술 꾼이 와서 채소밭을 뒤엎어 놓기도 하고 문짝을 떼고 방을 흐트러놓고 가기도 했다. 고약한 짓을 참는 스님은 또 다른 인내의 고행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나와 다르면 부수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 같았다. 일요일 밤 우연히 헌책방에서 사다가 놓은 소설가 박완서씨의 ‘호미’라는 수필집이 책꽂이에서 내 눈에 띄어 들춰보았다. 평생소원이던 호수가의 집에서 채마밭과 잔디를 가꾸는 일상을 얘기하고 있었다. 벌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그녀는 채마밭을 가꾸는 걸 포기하고 있었다. 무성해지는 잡초 뽑기에 하루가 가는 칠십 할머니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노년이 된 나는 숲으로 들어가야 하겠다는 마음만 먹을 뿐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전원주택을 화두로 인생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름답고 화려한 경력의 인생을 가진 사람들의 백조같이 품위 있는 외형만 보고 부러워했지 흙탕물 밑에서 부지런히 놀리는 발을 상상하지 못했다. 의원이 되기 위해 그들은 매일 밤 모르는 상가 집을 내집같이 드나들어야 했다. 지저분한 인생들의 쓰레기 같은 말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 같았다.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밤낮없이 영혼까지도 인사권자의 종이 되어야 하는 면이 있었다. 부자가 좋아 보이지만 그들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먹지 않고 쓰지 않고 험난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겉의 그럴듯한 모습만 보았지 그걸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뒤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은 도심의 지하철 역 부근의 작은 아파트 골방에 자리잡고 책이나 읽다가 허기지면 라면을 끓이며 사는 게 제일 행복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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