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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진정한 행복

운영자 2017.11.06 10: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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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진정한 행복
  

몇 년 전 습기 찬 여름밤 동경의 관청 옆 지하 대피소 같은 광장에서 본 광경이다. 그 옆의 호텔에 묵다가 밤 10시쯤 나와 지나가다가 본 모습이었다. 지하공간에는 드문드문 희미한 형광등이 켜져 있고 그 아래 백여명의 노숙자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특이했다. 바닥에 신문지나 박스를 깔고 그 위에 군대 내무반 같이 네 다섯명씩 조를 이루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마치 가지런히 깍아 놓은 연필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도 큰 소리로 대화를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는 몇 사람은 누운 채 조용히 작은 책을 보고 있었다. 형광등이 켜져 있는 계단에도 포켓북을 보고 있는 노숙자들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 전해져 왔다. 빈곤이 그들을 거리로 내몰아도 책을 보는 그들의 영혼은 가난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을 불행하다고 보는 건 나의 시각일 뿐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서울의 을지로 지하상가의 한 작은 점포 안에서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게 앞 복도에는 팔려고 내놓은 값싼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고 안쪽 진열장에도 티셔츠 몇 개가 초라하게 걸려있다. 진열장의 유리를 통해 육십대 중반쯤의 기타를 든 여인이 걸상위에 놓인 악보를 보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기쁨이 넘치는 충만한 표정이다.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옷을 보는 데도 주인여자인 듯한 그녀는 계속 기타를 치면서 노래삼매경에 빠져있다.

“손님이 있는데도 노래만 부르세요?”

그녀에게 다가간 남자가 물었다.

“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난 다 알아요. 유리창 너머로 손님의 발이 다 보이잖아요? 살 사람은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아니면 그냥 갈 것이고”

여자는 지하상가의 유리통 같은 옷가게에 갇혀 청춘을 보냈다고 한다. 어두운 지하로 출근했다가 별이 떠야 땅 위로 올라가는 두더지 같은 삶이었다. 그녀는 앞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저는 매일 매일이 행복해요”

땅 속에 살아도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근원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우연히 본 한 장면이었다. 화면에는 걸상위에 걸쳐놓은 찬송가의 악보가 클로즈업이 되고 있었다. 분명히 행복할 것 같았다. 

청계천의 헌책방 구석에 보관되어 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작은 수필집을 다시 구해 집으로 가지고 왔다. 거의 30년 전 젊은 읽었던 걸 육십대 중반인 지금 다시 보는 느낌도 새롭다. 좋은 책은 세 번쯤은 반복해서 읽으라는 말도 있다. 수필집 안에서 스님은 지금도 뜨거운 여름 해인사 암자의 조그마한 산방에 앉아있었다. 산방이라고 하지만 작은 방 하나를 칸을 막아 쓰는 협소한 곳이다. 서까래가 내다뵈는 조그만 들창과 드나드는 작은 문이 하나밖에 없다. 여름이 아니라도 답답한 방이다. 한 여름 비좁은 방에서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입고 단정히 앉아서 향을 사르고 경을 마지막 클로즈업 되는 읽고 있다. 스님은 목청을 돋구어 경을 읽는다. 스님은 저녁공양을 한 시간 쯤 앞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사 장삼에 땀이 흠뻑 배고 깔았던 방석도 축축이 젖었다. 스님은 골짜기로 나가 옷을 벗고 시냇물에 잠긴다. 이내 더위가 가시고 심신이 날 듯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고 스님은 고백하고 있다. 세상과는 다른 성스러운 행복 같았다. 

이십대 젊은 여름날 나는 문경근처의 사불산 대승사라는 절 뒷 채 작은 방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고시공부를 위해 세상과 절연하고 산속에서 보내던 시절이었다. 해가 저물면 장지문을 열어둔 채 촛불 두 자루를 앞에 켜 놓고 책을 읽었다. 달이 휘영청 뜬 어느 날 밤이었다. 갑자기 원인모를 행복감이 온몸에 충만해 왔다.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안개같이 올라오는 신비한 행복감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파트 구석에 한 평 반 정도의 작은 나만의 골방을 가지고 있다. 기도실 겸 독서당 그리고 집필실을 겸했다. 나만의 우주다. 여기서 촛불을 켜놓고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한다. 그리고 나의 내면으로 성령이 들어와 작은 글들이지만 쓰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나의 작은 글들은 나의 일상의 예배행위고 기도이자 묵상록이기도 하다.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충만감이 진짜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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