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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건달

운영자 2017.11.20 11:27:41
조회 244 추천 2 댓글 0
노인건달 두목이 해병대 상사출신이래

  

가난한 노인들이 인도와 차도의 경계석위에 횟대 위의 새들처럼 나란히 앉아 있다. 탑골공원 뒤 골목풍경이다. 한 노인은 바지를 잃어버렸는지 얇은 이불을 치마같이 두르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영세한 이발소 앞에 한 노인이 눈을 감고 널부러져 있다. 나이 지긋한 이발소 주인이 나와 조용히 달랜다.

“영감님 이렇게 누워계시면 손님들이 들어오시지 못하잖아요?”

“내비 둬”

눈을 감은 노인은 보지도 않은 채 대꾸한다. 세상에 아무런 애착이 없는 공허한 목소리다.

“차들도 지나가지 못해요”

“그냥 두라니까”

건너편 작은 누각문 아래에는 아직 젊은 노숙자 두 명이 옆에 삼소나이트백을 놓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무료급식소 앞으로 돌아와 젊은 김 변호사 옆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무료상담 하나 해도 되요?”

양순해 보이는 칠십대 초쯤의 남자가 다가와 김 변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예, 예 무슨 말씀이시든 좋습니다.”

김 변호사가 무료 상담객을 흔쾌하게 받아들인다. 

“내가 옆의 싸구려 식당에서 주인이 없을 때 대신 가게를 봐줬는데 말이야 이 동네에도 늙은 건달이 있고 그 놈이 데리고 다니는 노인 양아치들이 있어. 해병대 상사출신이라고 재고 다녀. 내가 가게를 지켜주고 있는데 그 건달이 부하들 여섯명을 데리고 들어와 밥하고 술을 시켜 먹었어. 그리고 화장실 가는 것 같이 한명 한 명 나가더니 들어오지를 않아. 마지막에 두목만 남았는데 돈이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거야. 내가 대신 가게를 봐 줄 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변상할 능력도 없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전취식으로 신고하면 즉결에 넘길 수 있겠네요. 피해액이 얼만데요?”

김 변호사가 물었다.

“3만 2천원” 

나는 즉결심판을 담당하는 판사가 3만2천원이라는 금액을 정말 피해액이라고 공감할까 의문을 가졌다. 법원근처에서 판사의 간단한 점심값 정도일 수 있다. 또 판사의 눈에는 늙은 건달이 불쌍한 노인의 모습으로만 보일 수도 있었다. 돈 없는 노인이 배가 고파 동료들과 밥을 시켜 먹은 걸로 해석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같은 사실이라도 보는 시각과 공감하는 능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여러 번 오다보니까 낯이 익은 얼굴들이 생긴다. 무료급식소 앞에 얼굴이 새까맣게 탄 빠짝 마른 남자가 보였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도망했던 사람이었다. 일주일 전에 상담했던 사람이다. 헌옷을 수거하는 통에서 주워 입은 듯한 낡은 코트의 등판에 고춧가루가 가득 묻어있었다.

“돈 훔쳐간 놈 잡아온다고 하더니 못 잡았어?”

내가 그를 보면서 말을 걸었다. 

“내가 꼭 잡고 말거야”

그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여기 왜 왔어?”

“배고파서 밥 얻어먹으려고”

“밥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이거 짜장면 사먹어”

나는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그 손에 쥐어주었다. 그 골목에서 우거지 국이나 짜장면 한 그릇의 값이다. 작은 금액의 돈을 가장 보람 있게 쓸 수 있는 기회다. 이웃에게 체온이 담긴 한 끼 밥을 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감사가 아닐까. 나는 젊은 변호사들이 거리로 나와 공감하는 능력을 배워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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