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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자의 허망한 기부

운영자 2018.01.03 11:52:04
조회 297 추천 2 댓글 1
어느 부자의 허망한 기부

  

2013년 따뜻한 바람이 불던 5월 중순의 봄날이다. 나는 남산 하이야트 호텔 일층 레스트랑 ‘테라스’에서 삼성증권의 황상무를 만났다. 금융인 출신답게 침착하고 얌전한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맡은 사건의 강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그를 만났다. 죽은 강 회장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부두노동자부터 시작해서 안한 일이 없었다. 일생을 돈을 신으로 섬겼다. 말년에 그는 부자가 됐다. 죽기 얼마 전 그는 소설속의 스쿠리지 영감 같이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꽃동네에 수백 가마의 쌀을 가져다주더니 나중에는 백억대의 재산을 기증했다. 불쌍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텔레비전프로를 보고는 수백억대의 재산을 아낌없이 증여했다. 평생 같이 산 아내에게는 집 한 채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거액을 증권회사에 맡겨 운용했다. 그의 돈을 관리했던 증권회사 지점장의 시각을 통해 살아있을 때의 강회장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강회장과는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내가 수첩을 펼치며 물었다.

“제가 증권회사 지점장을 할 때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찾아오셔서 알게 됐습니다. 그런 차림인데도 단번에 수백억의 거액을 맡기는 걸 보고 깜짝 놀랬죠. 그 후 매일같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주식을 사라 팔라 지시를 하셨죠. 참 지독한 분이었어요. 조금만 손해가 나도 불같이 화를 냈으니까요. 그렇게 한 3년을 지냈다고 할까요. 부자인데도 행동은 촌스러웠어요. 지점에서 고객에게 증정품으로 주는 국수를 가져다 드리면 그걸 받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많았죠. 그 다음해는 지점에서 고객들에게 굴비를 선물을 했어요. 그걸 가지고 갔더니 ‘이왕이면 좀 더 큰 걸 주지’하시며 욕심을 내는 거예요. 제가 지점장을 하면서 큰돈을 가진 노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고생을 하면서 살아서 그런지 작은 물건들의 값에 민감해요. 예를 들면 짜장면 값이 천원 올라가는 데는 분노하는데 막상 주식을 하다가 몇 억 몇 십억을 날려도 아무런 관념이 없는 수도 있어요. 강회장님이 한번은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 나보고 ‘할아버지가 걸린 치킨’을 사오라고 하신적이 있죠.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는 말씀이었죠. 갑부인데도 평생 음식도 마음대로 드시지 못한 겁니다. 증권이 올라 수십억을 벌어드린 적이 있어요. 그때 제게 크게 한 턱 내겠다고 하시면서 저를 마장동의 싼 고깃집에 데리고 가서 고기와 소두 두병을 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참 수전노 같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 인식이 바뀌게 됐습니다.”

“어떤 기회였나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강회장이 음성 꽃동네에 쌀 백가마를 가져다주었다는 겁니다. 조금만 손해를 봐도 참지 못하는 영감이 이런 양면성이 있나 하고 놀랐죠. 그런데 그 다음부터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어요. 제주도에서 전화를 하셨는데 서울로 올라 갈 테니까 제가 보관하는 통장과 도장을 전부 가지고 오라는 거예요. 명령대로 통장뭉치와 도장들을 싸서 공항으로 가지고 갔죠. 공항에서 만났더니 저를 데리고 방송국으로 가셨죠. 그 돈이 수백 억원이 되는데 가서 그 돈을 다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고속도로 옆에 있는 평택농장이 가격이 꽤 되는데 그것도 아예 다 주시더라구요. 방송국에서는 그 돈으로 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약속하는 걸 옆에서 들었습니다. 강 회장은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저보고 재단의 감사가 되어 그 돈이 잘 쓰이는지 지켜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제가 재단에 감사로 들어갔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 정도의 사회명사들이 이사장과 이사로 들어왔습니다. 롯데호텔에서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강회장이 살던 모습을 떠올리니까 너무 화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고인에 대한 애도나 감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묵념이나 한번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분들이 시큰둥하고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제가 몇 년을 지켜봤습니다. 강회장이 기부한 농장 땅을 방치하는 바람에 거액의 세금이 부과됐습니다. 그냥 뺏기게 된 거죠. 그런데도 아무도 아쉬워하거나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게 뭔가 하는 허탈감이 들었습니다.”

평생 돈신을 섬기다가 죽음 직전에 그 신이 하나님과 동시에 섬길 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이 있다. 강 회장은 죽음의 사자인 폐섬유증에 걸려 인공호흡을 시작하자 주변사람에게 그가 평생 번 돈을 태워버리거나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바다가 아니라 방송국에 주어버렸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기부 받은 땅을 방치하는 사회명사를 상대로 나는 소송을 걸었었다. 며칠 전 서울역 앞에 있는 사설 노숙자합숙소를 들른 적이 있다. 한 달에 몇 만원씩 보내는 보통사람들의 작은 기부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와서 노숙자들의 머리를 깍아 주기도 하고 밥을 짓기도 했다. 노숙자 차림으로 그들 가운데 있는 목사는 평생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그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힘들게 운영되어 가는 노숙자 합숙소지만 그게 진짜인 것 같았다. 김밥을 평생 판 할머니가 대학에 기부해도 그 돈의 흔적이 없다는 소리가 들린다. 평생 사업해서 번 돈을 대학에 기부했는데 그걸 유용하는 바람에 소송이 걸려 싸우기도 한다. 기부문화가 한 단계 올라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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