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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함정 5 - 변호회의

운영자 2018.04.16 10:11:03
조회 193 추천 0 댓글 0
소설 형식이지만 진솔한 변호사 사무실에서의 의뢰인과 변호사의 모습입니다.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5

  

변호회의 

  

며칠 후 신 교수의 가족과 일심을 담당한 변호사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검사출신의 사십대 초쯤의 여성변호사였다. 내가 일심의 상황을 알기 위해 여성변호사에게 물었다.

“변호의 방향이 어땠습니까?”

“무죄투쟁의 방향이었습니다. 저도 검사를 했습니다만 이 사건은 고소를 대리한 로펌이 기술력이 없는 것으로 프레임을 짜고 회사의 기술이사를 포섭해서 증언을 하게 한 것 같아요.”

“그 기술이사의 결정적 증언을 항소심에서 번복 시키는 게 급소 같은데 어떤 사람 같았습니까?”

나의 물음에 심 교수의 부인이 말했다.

“MIT 대학을 졸업한 박사인데 남편의 제자인 셈이예요. 고집이 세고 독특한 성격의 사람 이예요. 자기의 주관 이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법정에서 그렇게 진술을 한 동기나 배경이 있나요?”

내가 심교수 부인에게 물었다.

“저는 남편의 회사 일에 관여를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질문의 방향을 돌려 확인했다.

“평생을 함께 사시면서 부인은 누구보다 남편을 잘 아실 겁니다. 혹시 남편이 자신의 기술에 대해서 과장했다고는 보지 않으십니까? 과학자들은 종종 자기의 기술에 대해 과대망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사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의 부인이 잠시 침묵하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남편은 평소에 거의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족에게조차도 묻기 전에는 말을 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과장하는 성격이 아니죠. 저는 남편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번에는 옆에서 듣고 있던 심교수의 아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아들이 본 아버지는 어때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아들은 확신을 가진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와 아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진정성이 보였다. 이어서 나는 가족과 함께 온 변호사에게 물었다.

“쓰신 의견서를 보면 심교수의 기술이 세계적이라고 평가 하셨는데 그 기술로 무엇을 만들어 냅니까?”

“모르겠어요, 설명할 수 없어요.”

“기업가가 백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걸 보면 이 기술이 대박을 터뜨린다고 보았기 때문에 돈을 준 것 아니겠어요? 어떤 경우에 대박이 터집니까?”

“그것도 모르겠는데요.”

나는 일심변호사의 대답에 아연했다. 그를 사기죄라는 그물에서 풀려나게 하기 위해서는 거액을 투자받을 만한 기술이라는 걸 납득시켜야 했다. 그런데 변호사는 그 기술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심의 변론은 알지 못하는 자가 한 남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공허한 관념의 나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의 본질은 판사를 설득하는 일이다. 현실에서는 법원에 써내는 글이 변론이다. 과학적 사실이나 한 인간의 삶을 문장에 녹여 생생한 모습으로 판사 책상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붓으로 녹여 변론서로 작성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거의 힘들 것 같았다. 변호사인 나는 일단 변호사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현실적으로 제시하고 선택하게 해야 할 입장이었다. 심 교수의 부인과 아들에게 나의 의견을 말했다.

“상대방의 낚시 바늘에 꿰어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제 두 가지 방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몸이 풀려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빌고 상대방과 합의를 하는 일입니다. 정상참작을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방법이죠. 둘째는 철저하게 무죄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일심에서 무죄투쟁의 방향으로 갔다가 패배했습니다. 일단 법원에서 유죄로 본 사건을 항소심에서 무죄로 만들기는 일심보다 훨씬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심 교수 본인과 의논하셔서 방향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남편이 나오게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죠?”

부인이 물었다.

“고소를 한 방회장을 만나서 빌고 그 요구대로 들어줘야죠.”

“안 만나 주면 어떻게 해요?”

“집요하게 찾아가셔야죠. 그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일률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변호사가 대신 해 드릴 일은 아닙니다. 방회장의 합의서를 얻지 못하면 나오기 힘들 겁니다.”

“기술이사였던 추영석 박사도 만나야 하나요?”

“증언한 게 사실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분이 다른 동기로 증언을 잘못했다면 항소심에서 번복하게 해야죠.”

“항소심에서 증언을 번복하면 남편이 무죄가 될까요?”

“왔다갔다 하는 진술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에 따라 다를 겁니다.” 

부인과 아들의 표정에 짙은 그늘이 서렸다. 내가 덧붙였다.

“남편이 평생 연구한 세계적인 첨단기술이 사실이라면 판사가 읽고 투자를 할 마음이 생길 정도로 그 기술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롤투롤 플랫폼’이나 ‘ALD’기술을 누가 그렇게 묘사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일단 일심변호사가 그동안 기술에 대해 공부 하셨으니 항소심에서도 계속 맡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만.”

  

며칠 후 심 교수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심변호사가 자기네 로펌에서 변호사 여러 명이 팀으로 했기 때문에 그 팀을 모두 고용해야 항소심에서 일을 맡을 수 있다고 하네요. 저는 한명만 고용해서 남편의 ‘롤투롤 플랫폼’기술에 대해 쓰면 좋겠는데요, 어떻게 하죠? 세 명의 변호사를 살 돈을 대기가 벅차요.” 

“글쎄요,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도 일심변호사들이 열심히 일해 줬어요.”

부인의 말이었다. 법정구속이 됐는데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격이라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일심변호사가 그동안 일 년 이상 신 교수의 연구기술을 파악해서 의견서를 썼다면 보다 더 설득력 있는 글을 새로 쓰기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단 과학기술을 이제부터 공부하는데 필요한 시간들을 생각하면 높은 선임료를 받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선임료로 기본적인 금액을 요구했었다. 많은 돈을 받으면 그 만큼 책임이 무거워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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