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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煙波江上使人愁] 金庸雜論 - 6. 김용이 본 김용소설

-_- 2004.12.29 15:15:39
조회 587 추천 0 댓글 12

대부분의 김용소설의 토론에 대해서 결론이 날것이오. 원본은 찾으려다가 귀찮아서 번역본만 김용이 본 김용 소설(1) 어떤 소설이 당초 계획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가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다만 결점이 있는 곳은 수정할 것입니다. 호비와 묘인봉의 대결의 결과는 어떻게 된 것 입니까? 호비가 결국 칼을 내려쳤을까 아닐까 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될까? 안 그랬다면? 이는 흥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소용녀가 부활함으로서 <신조협려>의 특질이 파괴되었는데 그렇게 쓴 것에 후회하지 않습니까? 소용녀가 살아나지 않았다면 내가 제일 먼저 울었을 것입니다. 어째서 <녹정기>의 풍격은 다른 소설과 차이가 큰 입니까? 이전의 소설들과 중복시키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일부로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를 둔 것입니다. <의천도룡기>가 당신이 가장 만족하는 작품입니까? 모든 작품은 모두 내 자식과 같은 것으로 고하를 나눌 수 없습니다. 이전에 자신이 창작한 소설을 되돌아보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막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연재하기 위한 것이므로 쓰는데 바빠 어떤 곳은 세밀하지 못하여 지금은 몇 몇 작품을 잘 수정하고 싶습니다. 쓰면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구조를 완성한 후에 쓰십니까? 큰 틀이 사전에 되어야 그림이 잘 나옵니다. 세밀한 것은 쓰면서 생각합니다. 양과를 창조할 때 누구를 모델로 삼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양과의 개성은 현대성과 반역성, 아울러 제멋대로의 기질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책 속의 인물을 모두 동일 시대에 놓는다면 누가 ‘천하제일’ 입니까? 이건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김 선생께서 가장 좋아하는 남여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남자로는 곽정, 교봉, 영호충이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고, 여자로는 황용, 임영영, 소용녀 같은 사람을 매우 좋아합니다. 소설중의 무공초식과 명칭은 어디서부터 영감을 얻는 것입니까? 초식의 명칭은 책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항룡十八’의 초식은 <역경>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어떤 것은 스스로 생각해낸 것입니다. 비교적 특별한 명칭을 좋아하는데 일반 무협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흑호투심(黑虎偸心)’과 같은 종류는 매우 평범한 것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36권의 책을 연관성 있게 할 계획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심해서 시대적 연관성을 넣더라도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일부 작품의 결사단체와 방파조직이 합리적인 세계라고 생각하십니까? 얼마 전 김용 소설 국제 학술 연구토론회에서 쓰투다시엔(司徒達賢) 교수가 내 소설 속의 남자주인공과 방회조직이 경영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제기했는데 나는 어느 정도 수긍합니다. 개방 같은 경우 관리가 매우 좋지 않고, 홍칠공 같은 사람은 온종일 보이지도 않는데 관리가 좋을 리가요! <천룡팔부>의 통솔자 대형은 무림 중에서 무척 높은 지위입니다. 그런데 그의 동료들이 그의 신분을 감추다 모두 해를 입는데 그는 왜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소원산이 핍박하니 자신이 통솔자 대형이라고 시인하는 것입니까? 통솔자 대형은 바로 현자방장입니다. 강민이 단정순을 통솔자 대형으로 모함할 때 소봉이 볼 때 단정순은 중년이므로 안문관의 사건으로부터 시간을 추산해보면 단정순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것을 당연히 생각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얘기해 보면 통솔자 대형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별안간 찾아낸 것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흥분된 상태였으므로 이런 것을 생각해내지 못 한 것입니다. 하지만 소봉은 세심한 사람이므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며 그래서 나중에는 이를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약간 동문서답인 듯-_-;) 단정순은 도처에서 다른 사람과 정을 뿌리고 다니는데 최후에 이르러선 그 자신 스스로도 자신의 부인도 그러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의도로 이러한 줄거리를 안배한 것입니까? 이것은 인과응보의 문제가 아니라 극의 구조와 관계된 문제입니다. <천룡팔부>에서 단예와 많은 여인들은 사랑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그는 그 여인들이 모두 아버지의 사생아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만약 단예가 나중에 자신이 단정순의 소생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요한 의도는 극의 구조의 문제 때문인 것입니다. 결코 단정순이 다른 사람의 처를 유혹하니 다른 사람도 그의 처를 유혹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단정순의 처는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소오강호>의 도곡육선은 이미 육칠십 세의 노인입니다. 하지만 책에서 그 중 한명의 신선이 다른 신선에게 말하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 언젠가 한번 이웃집에서 훔쳐 먹던 기억이 안 나오?” 그러자 다른 한명이 말했다. “그건 이미 삼십여 년 전의 일이다.” 만약 도곡육선이 6, 70세라면 30년 전에는 그들은 당연히 3, 40세의 사람들인데 어째서 “우리 어렸을 적”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도곡육선은 육칠십세의 사람이 아니고 사오십세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도곡육선은 머리가 좋지 못하고 어렸을 때는 그들 시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므로 그들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우리 어렸을 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습관적인 문장입니다. 황약사는 여섯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차례로 배열하면 진(陳), 매(梅), 육(陸), 곡(曲), 무(武), 풍(馮)입니다. 만약 이런 배열로 본다면 진현풍은 당연히 대사형입니다. 하지만 한번은 둘째인 매초풍이 진현풍을 두 번째로 놓기도 하고 자신을 세 번째로 놓기도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도대체 누가 대사형 입니까? 다른 방면으론 곡령풍이 스스로 곡삼(曲三)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세 번째 항렬이지만 한번은 또 황약사가 육승풍에게 말하길 “내 셋째 제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진, 매, 육, 곡 인지 아니면 진, 매, 곡, 육인 것 중 어느게 맞는 것입니까? 이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곡삼이란 것은 반드시 동문 간에서 세 번째란 뜻은 아닙니다. 진현풍, 매초풍, 곡령풍의 이 관계는 다시 새로이 안배해야할 문제로 <사조영웅전>의 설자[楔子 -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의 시작 부분으로, 본 이야기 앞에 나와 어떤 사건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따로 설명하는 절]속의 허점은 다시 보완할 것입니다. 김용선생께서 곽정을 매우 추앙하는 것은 “협지대자”라는 원칙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곽정은 처음에는 양과와 소용녀가 사도관계이므로 같이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양, 용 두 사람을 싫어할 때 곽정도 그러하였는데 16년이 지나고 양과가 신조대협이 되어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게 되자 두 사람을 곽정은 혼인한 것처럼 표현합니다. 이런 전후의 불일치 된 표현방법이 정말 “협지대자”의 풍모입니까? 당시 송조는 심지어 지금의 대만에서도 스승과 제자가 사랑의 감정을 갖는 것은 불륜이지만 나는 스승과 제자는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사고방식에선 만약 법률규정이 사람들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연애할 수 없는 것으로 연애란 것은 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국가의 법률규정은 상이하고 민간의 전통적인 관념 등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에선 cousin은 결혼할 수 있고 중화민국에선 외종사촌은 결혼할 수 있지만 사촌오누이는 결혼 할 수 없습니다. 난륜과 불륜은 다른 것으로 난륜은 아버지와 딸 오빠와 누이 혹은 동생과 누나 등....이것은 당연히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륜이라는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한 고조의 아들은 한 혜제는 그의 누나의 딸을 황후로 취했는데 조카가 외삼촌에게 시집오는 것은 현대 대만이나 홍콩 혹은 대륙에서도 모두 법률로서 금지되는 것이지만 한나라 때는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혜제가 황후를 취한 시기에는 황태후 여치(呂雉)가 정식으로 혼사를 주관한 것입니다. 총합해보면 법률규정이 허락하면 연애는 가능하고, 성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면 결혼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남송과 북송은 중국에서 예교가 가장 엄격하던 시기로 가장 폐쇄적인 사상을 가졌고 가장 개방적이지 못한 시기이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스승과 제자는 결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했으므로 양과와 소용녀는 결혼할 수 없었고 당연히 연애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의 곽정에 대한 묘사는 “위국위민 협지대자”로 국가를 배반해선 안되고, 백성을 배반해선 안되며, 협의의 신조를 반드시 준수한다는 것입니다. 곽정의 사고방식에선 양과가 국가와 백성을 위해 큰 공을 세웠으니 스승과 제자간의 결혼은 사회도덕상 사소한 문제이므로 그들을 이해하고 탓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절(大節)이 어긋나지 않는다면 작은 일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영호충이 사과애의 동굴 안에 있을 때 뜻하지 않게 많은 검초가 새겨진 석벽의 비밀통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교장로들이 동굴에 갇혀 통로를 뚫을 수 있었다면 몇 촌을 더 파 벽을 뚫어 탈출 할 수 도 있었을 텐데 의외로 마지막에 힘을 다하다 죽고 맙니다. 나는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 힘을 다해 활로를 뚫을 생각은 안하고 왜 검초를 새긴 것입니까? 만약 마교장로들이 검초를 조금만 새겼다면 탈출할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요? 인생에선 우연의 요인이 매우 많습니다. 소설가 예광 선생은 인생의 슬픔도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탄식했는데 인생의 차이란 매우 작은 것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생사의 거리 또한 아주 짧은 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게 우연히 만나는 것은 종종 한 걸음을 더 간다거나 5분 일찍 도착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만날 수 있습니다. 한걸음 적게 가거나 5분이 늦어 두 사람이 서로 만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마교장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운이 좋지 않다면 적게 벽에 새겼더라도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조협려>에서 독자들을 가장 실망시키는 부분은 아마도 소용녀가 윤지평에게 정절을 잃은 부분 일 것입니다. 소용녀는 어렸을 적부터 고묘에서 자랐고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았으므로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적었으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특히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손씨 할머니가 죽은 후 그녀는 양과와 많은 해를 조석으로 맞대고 있었으므로 양과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숨소리, 행동과 몸무게 등을 소용녀는 무척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윤지평을 양과로 오해하는 것입니까? 또한 무학의 각도에서 생각해 본다면 양과와 윤지평이 수련한 내공심법이 다른데 어째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소용녀가 호흡소리로 두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째서 그렇게 쉽게 자신의 몸을 잃은 것입니까? 이 문제를 제기한 독자는 내가 생각하기에 나이가 아마 적고 성경험이 완전히 없는 독자인 것 같습니다. 소용녀가 정조를 잃을 때는 지금까지 성경험이 전혀 없는 처녀로 처음 겪는 일로 마음은 당연히 놀라고 부끄럽고 기쁘기도 하며 분노하기도 하는 것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감정상태에 비추어 본다면 소용녀가 무공의 문제를 전혀 생각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로 만약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경험이 없는 처녀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런 상황에선 소용녀가 아니라 더 세심하고 무공이 높고 심지어 나이가 더 많고 성적 경험이 더 풍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공에 관한 문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장취산과 은소소는 빙화도에서 결혼해서 십년을 같이 살았는데 어째서 장무기 하나만 낳은 것입니까? 설마 당시에 매우 진보된 피임기술이 있었던 것입니까? 누군가는 줄거리의 안배를 위해선 장무기가 형제를 가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할까요? 이 문제는 간단하게 대답한다면 은소소는 다시 아이를 낳을 여력이 없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는가하면 생물학상의 해석에 따르면 만약 생장환경이 좋지 못하다면 동물은 자연히 생육을 감소시키게 됩니다. 예로 기후가 매우 한랭하면 흰곰과 같은 유의 동물은 많은 번식을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한대지방의 생물은 번식하기가 쉽지 않지만 열대지방의 생물은 번식력이 비교적 좋습니다. 은소소는 빙화도에 있었으므로 기후가 무척 추웠고 따라서 그녀의 생식능력은 자연히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소용녀가 곽부의 빙백은침에 맞은 후에 독에 중독되고 이미 오장육부에 깊이 스며 이치에 맞다면 그녀는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절정곡의 밑으로 뛰어내렸을 때 벌꿀을 먹고 백어(멸치, 은어 등의 치어)를 먹었다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것입니까? 이런 안배가 비록 양과와 소용녀의 개성에 따른 안배였다고는 하지만 아무의 도움도 없이 그랬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사실 소용녀의 중독이 심하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인물의 성격이 그러하였다면 두 사람을 16년이나 떨어지게 할 필요가 있었나요? 양과와 소용녀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첫째는 소용녀가 중독 된 후 양과와 소용녀는 심리적으로 매우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그들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천축승이 이막수에게 죽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들의 혼인은 줄곧 곽정과 황용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엔 살고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사랑에 미래를 가질 수 없었으므로 죽는 것이 나으며 죽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기에 자연히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소용녀가 절정곡 지하에서 16년 동안 살았는데 어떻게 나무껍질로 흰옷을 만들고 16년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옷이 계속 하얀 것입니까?(이 문제는 통신상에서 열렬한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 문제에 관해선 쑤덩(蘇墱)선생이 이미 일종의 해석을 제공했는데, 절정곡의 밑엔 먼지가 없어서 소용녀가 입고 있던 백의가 16년이 지나도 여전히 흰 옷이었다는 것입니다. 소용녀가 입고 있는 옷이 찢어지면 나무껍질로 잇고 구멍난 곳을 꿰매였을 테니 아직 흰옷으로 남아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소용녀가 절정곡에 오래 있었기에 양과가 그녀를 봤을 때 그녀의 옷엔 구멍이 나있고 꿰맨 흔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의는 어떻게든 백의로 검은색이나 빨강 혹은 누런색으로 변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의천도룡기>에서 멸절사태는 도룡도와 의천검은 황용이 양과가 곽양에게 준 현철중검을 녹여 서방의 제련술을 이용해 만든 후에 도룡도엔 무목유서를 넣어 무목유서를 얻은 후세사람이 원을 무찌르길 희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의천검엔 구음진경을 넣어 만약 무목유서로 원을 물리친 자가 백성을 괴롭히면 다른 사람이 구음진경의 무공으로 그의 생명을 뺏을 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무목유서나 구음진경을 얻으려먼 반드시 도룡도와 의천검을 서로 부딪혀야만 했는데 이렇게 된다면 두 권의 보전은 한사람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니 이러면 황용의 배려는 성립되지 않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확실히 빈틈으로 도검이 서로 깨진 후에 보전이 한사람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억제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다시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좋은 의견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말씀하셔서 내가 수정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신조협려>에선 양과와 소용녀가 꽃 수풀 속에서 옥녀심경을 연마할 때 윤지평과 조지경의 방해로 소용녀가 주화입마를 당해 중상을 입게 됩니다. 당시 양과는 소용녀의 “혈행이 부족해서 운공해서 치료할 수가 없어.”라는 말을 듣고선 자기의 팔목을 물어 상처를 소용녀 입에 갖다대고 선혈을 소용녀의 입속으로 넣게 됩니다. 이런 양과의 수혈방식이 정말 가능한 것입니까? 만약 두 사람의 혈액형이 맞지 않다면 오히려 소용녀의 상세는 너 나빠지는 것 아닙니까? 이는 절대 혈액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수혈방식을 쓰면 피는 위속으로 들어가 소화되고 절대 혈액형이 맞나 안 맞느냐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정리에 비추어 말한다면 만약 당신과 애인이 넓은 벌판에서 갑자기 그 사람의 피가 멈추지 않고 당신도 의학상식이 전혀 없는데 그의 얼굴이 갈수록 창백해져만 간다고 합시다. 이럴 때 “그이의 피가 부족하니 내 피라고 먹여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상처 내 그 사람에게 마시게 하지 않을까요. 이건 당연히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런 급박한 상황 하에선 이런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피를 보충해주고 싶지 않을까요? 혈액형에 관한 문제로는 중국시보의 부 편집장인 쑤덩 선생이 이미 제기한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소오강호>에서 남봉황은 네 명의 묘족여자로 하여금 거머리로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게 한 다음 영호충에게 수혈하고자 합니다. 이런 직접적인 수혈방식은 혈액형의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남봉황 등의 사람의 혈액형이 영호충과 일치할 수는 없으므로 이런 수혈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가지 해석을 생각해 낼 수 있는데, 가능한 것으로 영호충이 당시 내공은 매우 이상하였으므로 묘족 여자들의 혈액형이 그와 달랐지만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항룡十八장을 계산해보니 항룡十八장은 15장이나 16장만 있다고 하는데 내가 계산한 바로는 18장입니다. 하지만 어떤 초식은 중복된 것으로 용전어야와 전룡재야, 어약어연과 혹약재연은 중복된 것입니다. 이것은 중복된 것입니까? 항룡十八장은 소설 속에서 다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16장만 쓰면 됩니다. 다른 2가지의 초식은 굳이 쓸 필요가 없는 것으로 홍칠공이나 곽정이 일부러 사정을 봐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이런 해석은 억지 부리는 것으로 농담하는 것이니 모두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수정하면서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으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김용이 그녀를 걸고넘어지다.”이는 다음과 같은 역사시험문제 때문입니다. “송나라 사람들의 몽고에 대한 저항은 매우 장렬했다. 송나라가 양양성을 지킨 것은 몇 년인가?” 그녀는 원래 6년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신조협려>에서 곽양의 출생 전부터 곽정과 황용이 양양을 지키고 있었고 곽양이 16살 생일이었을 때도 아직 함락되지 않았으니 6년을 16년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태클이 걸린 거지요. 김용 선생은 이 소녀의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주실 건지요? 좋습니다. 누명을 벗겨드리겠습니다. 송나라 사람이 얼마나 양양를 지켰는가에 대해 나는 절대 6년임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사서에 기재된 근거로 보면 몽고인이 양양을 친 것은 가장 이른 게 서기 1234년으로 송나라 이종 단평원년입니다. 몽고인이 양양을 공격한 원인은 남송이 몽고와 연합하여 금나라를 멸한 후 양양등지를 회복했는데 몽고인은 그 영토가 자기들 것이라 생각해서 양양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지만 함락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이후에 몽고인이 사천(四川)으로 우회하여 양양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다시 우회하여 대리로 들어가 두 방면으로 협공을 가했지만 양양을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서기 1273년으로 송나라 군사가 양양을 지킨 지 39년이 되었으니 절대 16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6년도 아닙니다. 양과는 주백통에게 “이것은 내가 독창한 17로 장법이요.”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자세히 계산해본 결과 18초인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이렇습니다. 심경육도(心驚肉跳), 기인우천(杞人憂天), 무중생유(無中生有), 타니대수(拖泥帶水), 배회공곡(徘徊空谷), 역불종심(力不從心), 행시주육(行尸走肉), 도행역시(倒行逆施), 폐침망식(廢寢忘食), 고형척영(孤影隻影), 음한탄성(飮恨呑聲), 육신불안(六神不安), 궁도미로(窮途末路), 면무인색(面無人色), 상입비비(想入非非), 태약목계(呆若木鷄), 신수불사(神守不舍 혹 魂守不舍), 약유소실(若有所失). 암연소혼장은 몇 초입니까? 전 17초가 비교적 합리적인 것으로 봅니다. 당시 이야기가 잘못 되거나 인쇄가 잘못 된 것 같은데 지금은 확정적으로 17초가 맞습니다. 양과가 암연소혼장을 시전할 때 넋이 나가 있는 상태고 소용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정신이 없을 때라 17초인지 18초인지 계산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양과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여러분께선 그를 책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황약사가 30살에 제 1차 화산 논검에 참가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제 3차 화산 논검 때에는 대략 8, 90세입니다. 황약사뿐만 아니라 일등대사 노완동 주백통, 심지어 <사조>에서 이미 늙은 도사인 전진칠자들은 <신조>에도 등장합니다. 이런 “백 살 클럽”의 사람들은 제 3차 화산논검에도 참여해 펄펄 날라다니니 정말 사람들의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바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재미는 있지만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무예를 연마한 사람들 게다가 내공이 훌륭한 사람은 수명이 좀 깁니다. 그래서 주백통 같은 사람은 8, 90세에도 화산논검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전 이것이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만약 불가능하다면 그들을 말처럼 풀어놓는다면 더 오래 살게 될 겁니다. 김용이 본 김용소설(2) 나는 한 대륙 작가가 김용 선생은 주유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입니까? 당신의 주유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나는 일본에서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과 대화하면서 정사를 근거로 <삼국연의>가 주유와 제갈량의 관계를 크게 왜곡했음을 이야기 하면서 적벽대전에서 동오와 촉한 연합군의 승리의 주요한 요인은 주유와 손권의 공로이며, 제갈량은 방계의 참모에 불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연의>는 주유의 공헌을 말살하고 게다가 그를 추화(醜化) 시켰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삼국의 역사소설을 써 주유, 조운, 고옹, 육손, 양호 등의 사람의 지위를 높이더라도 <삼국연의>가 이렇듯 잘 써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갔으니 내가 다른 역사소설을 쓰더라도 나관중 선생에 미치지 못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고, 이런 생각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입니다. 나중에 만약 내가 역사 평론을 쓴다면 이런 역사적 고사에 대해 서술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려낸 인물 중에서 누가 가장 정치에 힘쓰고 백성을 사랑하며 정치에 능하고 사람들을 화합시킬 정치적 인물 입니까? 내 소설에서 정치적 인물은 많지 않지만 그들에게 “근정애민(勤政愛民)과 정통인화(政通人和)”를 요구합니다. 대략 <사조영웅전>의 야율초재가 비교적 정치적 인물이고 다음으로 <천룡팔부>의 단예, 소봉 <녹정기>의 강희 <사조영웅전>의 단황야, 주자류, <소오강호>의 정한사태가 정치적 인물들입니다. 그들 다수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만약 정치를 맡는다면 정치에 힘쓰고 백성을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한편의 무협소설을 쓰십니까? 어디서 소재를 취하고 구상을 합니까? 당신의 소설의 구성은 세밀하고 복잡하므로 쉽게 뒤로 가면서 앞부분의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데 오히려 전후가 호응하고 안배가 교묘한데 어떻게 하면 이런 세밀한 배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내가 소설을 쓸 때는 하루에 한 단락을 쓰거나 한번 쓸 때 2, 3년을 썼으니 어쩔 때는 뒤에서 앞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복선은 뭐였는지 잊거나 해서 나중에 보충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독자들이 고칠 수 있게 해준 것이지요. 당신소설 속의 기예(棋藝), 무공, 의학, 불학은 모두 깊은 수준의 연구가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현실에서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런 심후한 공부를 하신 것입니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는 것을 쓰는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은 쓸 수 없으니 글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학생이 질문을 했는데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으로 무협소설은 완전히 작가가 통제하는 것으로 자신이 모르면 책 속의 인물도 역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천천히 찾아 볼 수는 있지만 만약 찾지 못한다면 병도 약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절필의 이유를 여쭈어 봐도 되겠는지요. 지금은 소설을 쓸 동기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신문의 판로를 얻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신문사를 경영하지 않으며,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게다가 매일 한 단락씩 쉬지 않고 쓰는 것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몇 단락을 남겨놓고 가지 않으면 외국으로 가지고 가서 저녁에 잠도 못자고 명을 축내면서 써야하고 아침 일찍 보내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굉장한 것입니다. 후에 내가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다시 소설을 쓴다면 오락성이 매우 강하고 스스로도 즐거워 할만한,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것을 썼으면 합니다. 자신의 허튼 생각을 수천수만의 사람들과 같이 한다면 재미있는 일이겠지요. “우상”으로 숭배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역사상으로 나는 악비를 무척 숭배합니다. 그는 국가를 위했으며 외적에 저항했고 자신의 이익을 희생했지만 마지막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마천과 사마광도 무척 존경합니다. 황용이 이 시대에 적합할까요? 그녀는 연합고사에 참가할까요? 황용이 연합고사에 참가한다면 난 그녀가 컨닝을 할 거라고 의심할 것입니다. 그녀는 매우 총명하고 물리나 수학 모두를 빨리 배울 테니 당연히 컨닝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녀의 성격은 완전무결한 것을 요구하기에 어떤 문제가 안 풀린다면 아마 컨닝 할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게다가 선생님께 걸리지도 않겠지요. 어째서 위보소를 그렇게 취급하는 것입니까? 어째서 전반부의 위소보는 온정이 있다가 후반부로 가서는 사악해 지는 것입니까? 이것은 남성의 성장에 있어 필연적인 것입니다. 보통으로 말해서 남자가 애정을 대하는 태도는 나이가 들수록 악화되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경험이 풍부해지지만 다른 한편으론 물질조건과 권력이 커질수록 여성을 괴롭힐 기회는 많아지는 것입니다.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의 경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모든 사회에선 교조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는 게 아직 존재하고, 아직 “마오쩌둥(毛澤東) 강화”니 “손중산(孫中山) 강화”니 “마르크스주의”니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런 수단들은 이미 고정된 것입니다. 사실 사회의 무궁한 변화와 복잡다단한 사건은 고인들이 생각지 못한 것으로 현대과학기술의 컴퓨터네트워크는 설령 레닌이나 손문 이라도 생각지 못 한 것입니다. 교조주의는 적용할 수 없지만 초수가 없다면 고정된 신념도 없을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실제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무학에 비유한다면 상대방의 출수를 보고 그의 결점을 찾아내 일검에 베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무초입니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어떻게 돈을 벌어 생활합니까? 어떤 사람은 표국을 운영해 돈을 벌지만 이것은 비교적 하등의 것으로, 마치 무당파처럼 어떤 문파는 지주계층이므로 스스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어떤 파벌은 비교적 곤궁한데 이건 마치 화산파의 영호충과 흡사한데 만약 사부가 돈을 주지 않으면 술도 못 사먹는 것이지요. 대체로 협객들은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다. 경제활동은 무협소설의 주요한 제재가 아니기에 생략하고 쓰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생활 속에서 무협소설에서와 같은 기질과 개성을 지닌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속의 인물성격은 과장된 것으로 사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여성과 남성은 없는 것으로 모두 현실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소설 속 여성은 대부분 용모가 꽃 같은 사람들인데 유독 정영소만은 개성이 남다릅니다. 그녀를 창작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사랑스러운 여성은 아름다울 필요가 없으며, 예쁘냐 아니냐는 부모가 주신 것으로 자신이 노력한 것이 아니니 아름다운 사람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 소설 속에선 아름답고 착한 여성이 많은데 물론 이것은 하늘이 도운 것으로 이런 일은 드문 일입니다. 외모가 아름다우면 결점이 있기도 하며 미모를 믿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며 과분한 일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그녀를 눈감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녀에겐 좋지 않은 것입니다. 정영소는 사랑스럽고 총명하고 한 사람에게만 정을 쏟으니 이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외모와 품성은 완전히 무관한 것입니다. 어째서 황용 같은 하늘이 내린 듯한 아름다운 여자가 곽정 같은 바보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까? 애정이란 보충적인 작용이 있는 것으로 당신이 한사람을 좋아한다면 그와 당신의 개성이 다르더라도 황용과 같이 총명하고 영리한 인물은 곽정과 같은 성실한 인물에게서 서로의 성격에는 없는 것에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아 이거 답변이 예술입니다. 바보라고 놀리고 있군요.-_-;;) 무협소설에 있어 당신은 이미 고봉(高峰)입니다. 당신은 이 문학 장르가 어떻게 발전하리라 보십니까? 무협소설의 장래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무협소설이 만약 주의를 기울여 다른 애정, 역사, 고사 등의 넓은 범위의 다른 제재를 흡수한다면 마땅히 전도가 있겠지만 현재 작가들은 고대에 대한 지식과 연구가 부족합니다. 어떤 학자는 당신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인성의 탐구라는 주장을 했는데요. 모든 문학의 발전은 인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문학의 출현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공능은 인간의 성격의 탐구와 인간의 정서를 묘사하고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당신 책 중의 무협 영웅 중 스스로 생각하기에 누가 당신의 이상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쓴 영웅은 많지만 모두 생각해 본다면 모든 영웅이 개성적인 면이 있으므로 누가 나의 이상을 대표하는 영웅이라고는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당신의 14부 소설 중 가장 만족하는 소설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는 많은 분들이 물어 본 것이지만 항상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기스스로를 자기와 비교하라는 것인데, 예술적으론 비교적 후기의 것이 성공적입니다. 비유하자면 <천룡팔부>의 예술적 성취가 이전에 쓴 것보다는 좋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성이 비교적 산만하기 때문입니다. 작품 중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아내로 삼고 싶은 사람은 임영영입니다. 여자친구로는 곽양이 좋겠군요. 가장 닮고 싶은 남자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영호충입니다. 하지만 내가 늙어서.. 당신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중국인 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작품의 문학적 지위를 긍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나의 소설은 학자들이 찬양하는 그런 좋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는 겸허의 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평가는 낮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신문제작자로 소설은 나의 부업입니다. 언론인의 본업은 사실의 정확한 보도로 사실에 충실하고, 거짓을 꾸며내서는 안 되며, 흰소리와 빈말 이것은 신문의 제작에 있어 가장 범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이렇게 한다면 독자에게 죄스러운 것이며 자신의 양심에도 미안한 것입니다. 처음 사람들이 “김학”을 제기했을 때 농담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나 자신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무슨 이유로 각계각층의 독자를 흡인하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중국의 역사배경과 중국전통예술의 표현방식으로부터 문학작품을 창작했고 중국인들은 이에 친밀한 감정을 느낀 것 같습니다. 나는 항상 생각하기를 현재 중국어로 된 중국소설은 매우 많지만 사상과 감정의 표현은 외국의 방식이라 외국의 유채 물감으로 중국화를 그린 것과 같아서 도구와 수법과 방식은 모두 외국의 것입니다. 서양의 유채화로 중국의 수묵산수화를 그린다면 중국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리 좋지 못 할 것입니다. 나의 무협소설은 뛰어나지는 않지만 중국인들이 나의 소설을 보면서 친밀감을 가지는 것은 마치 얼후(二胡)를 한번 들었다고 중국음악을 아는 것은 아니듯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한번 들었다고 서양음악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방식과 수단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천도룡기>에서 아미파의 멸절사태는 왜 그렇게 명교를 증오하는 것입니까? 명고 양소가 그녀의 사형(소녀 시절에 몰래 좋아하던 대상일 수도 있는)을 죽였고 그녀의 애제자 기효부(기효부는 그녀가 죽인 것 이지만 명교가 죽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를 죽였으니 장무기가 예금기에서 구해준다면 그녀가 면목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문대학교 재학생인데(대만의 5년제 대학,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이 결합된 형태) 무협소설 창작에 뜻이 있습니다. 좋은 무협소설은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하는 것입니까? 젊은 학생들은 무협소설 쓰는 것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좋지만 숙달된 사람이라야 괜찮은 것입니다. 무협소설이 포괄하는 사회는 매우 넓고 고대의 일이므로 쓰는데 어려움이 있고, 성인의 감정을 깊이 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륙에서 어린 소녀들이 무협소설을 써 출판하고자 나에게 책이름을 제자해주고 서문을 써달라고 하는데 나는 전부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쓴 소설이 비록 괜찮더라도 12, 3살의 여자아이가 어떻게 성인사회와 감정을 이해하겠으며 비록 글이 “신동수준”이라도 쓸데없는 것입니다. 당신 소설의 교봉, 홍칠공, 곽정 세 사람 중 누구의 항룡十八장이 가장 대단합니까? 세 명 중 교봉의 항룡十八장이 가장 강한 것으로, 홍, 곽 두 사람의 장법은 모두 교봉의 수하로부터 전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허죽을 통해 제자에게 전해짐) 소용녀의 진짜 이름은 무엇입니까? 소용녀는 부모가 종남산 중양궁 밖에 버렸는데, 전진교 도인이 그녀를 수습 했을 때 강포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성은 ‘용’입니다. 어진 분이 거둬 키워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름이 없고 나중에 그녀의 사부가 키워서 자라게 되자 ‘용아’라고 칭했는데, 이름을 얻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이 일을 서술하면서 소용녀 라고 부른 것입니다. <신조협려>에서 “16년이 지나 이제야 다시 만나다.”라는 복선은 일찍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독자의 요구로 쓴 것 입니까? 오랜 기간 쓰게 되면서 생기는 문풍의 불일치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新竹 / 小玉西瓜) 나는 소설을 쓰면서 독자의 반응에 따라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나는 양과와 소용녀가 만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이것은 친구나 독자의 의견이 아니며 나 자신이 두 사람의 애정을 동정해서 차마 이 한 쌍의 연인이 죽어서 만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문풍이 불일치하는 것은 이후에 수정해야 하는 것으로 통일시키고자 합니다. 소설을 발표한 후에 수정하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 불만족스런 부분이 많기 때문으로 고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필명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소옥수박(小玉西瓜)은 좀 달지요? <의천도룡기> 후기에서 장취산이 자결할 때의 장삼풍의 심정을 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쓰지 못했다고 했는데 지금 다시 수정하여 당시 ‘노협(老俠)’의 심정을 다시 써볼 생각은 없는지요? 내가 창작하던 때는 원래는 양과의 나이였지만 지금은 황약사의 나이로 되 버렸으니 소설 중 인물의 심성을 이에 근거해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나이든 장난꾸러기(老頑童)”의 나이라 만약 양과, 장무기, 단예, 호비, 적운, 황용, 곽양을 수정한다면 전부 “노완동화”가 되고 말 것이니 천하대란이 올 것입니다! 이러니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동사는 일본을 에둘러 말한 것이고, 황약사의 네 명의 제자는 일본의 네 개의 섬을 상징하며 구양봉은 서양을 암시하는데 즉, “구양풍(歐洋風, 서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이런 것입니까? 나는 소설을 쓰면서 어떤 사물을 투영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소위 ‘射影(암시, 상징)’은 잘못 추측한 것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자고이래로 소위 ‘암시’라는 것은 모두 허망한 일로 맞는 게 없습니다.[自古以來,所謂「影射」,都是捕風捉「影」,無的「射」矢. 捕風捉「影」는 근거가 없는 일 이라는 뜻, ‘암시, 상징의 射影’을 이용해 언어유희를 한 것임.] 당신의 인생관은 소설 속에서 관철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소설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난 불교신자이지만 불교를 소설 속에서 관철시키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조영웅전>의 곽정은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하고 이런 용감하고 직선적인 성격은 유가의 가장 좋은 일면을 반영하는데 매우 강직하고 굳센 것입니다. <소오강호>는 도가사상의 반영이고 <천룡팔부>는 불가의 반영이지만 나의 인생관은 아니며 중국 고대의 사상은 복잡한 것이며 사상에 있어 다른 점이 많습니다. <의천도룡기>에서 은소소는 죽을 때 장무기에게 “예쁜 여자의 말은 믿지 말거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광은 김용이 수수께끼를 남겼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왜 예쁜 여자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미인에게 속은 적이 있나요? 아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으로, 그녀가 죽기 전에 남녀간에 문제에 있어서 소위 영웅은 미인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나서 아이에게 교훈을 줘야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간단한 원칙을 아이에게 기억시키려 한 것입니다 김용이 본 김용 소설(3) 만약 우주선을 타고 우주고 가야하는데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당신의 무협소설을 가져가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전 제 작품을 고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보는 것은 재미없는 것입니다.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셰익스피어 전집을 가져가고 싶군요! 저는 열아홉 살 된 학생인데 항상 미래 인생의 진로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소설속의 인성은 저로 하여금 실망하게도 희망을 가지게도 합니다. 소설이 반드시 누군가를 투영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과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의 일치점은 저에게 많은 자성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은 글은 도를 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음풍농월이나 하고 서정적인 감정이나 쓴다면 아무 의미 없는 글로 사회에도 유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문장은 쓰지 않음만 못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글은 도리를 말하지만 어떤 것은 감정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두 가능한 것으로 모든 문장이 도리만을 말한다면 재미없을 것입니다. 감정을 말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공을 배우신적이 있거나 혹은 강호의 사람 혹은 무림의 고수들과 사귀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쓰실 수 있는 것입니까? 무공을 배운 적도 없으며 무술인과 교류한 적도 없지만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성을 쓰는데 여성이 될 필요가 없으며 기녀를 쓴다고 기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많이 읽고, 많이 관찰하고 많이 체험하면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상각은 어떠십니까? 나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 사후에 윤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믿음은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내, 아이들,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잘해주며 나도 그들을 사랑합니다. 김용팬들의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귀찮지 않습니까? 거리끼지 마시고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조금도 귀찮지 않습니다. 당신은 학문이 깊고 명예를 얻었으며 사회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속으로 두려워하는 게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무엇 입니까? 크게 두려워하는 것은 없지만 조금 두려워하는 것은 독자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웃음) 다른 것으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이지만 나의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십니까? 쓰지 않습니다. 쓰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컴퓨터에 반감이 있습니다. 간혹 쓰기는 하지만 영문학 자료를 기록할 때나 컴퓨터로 바둑을 둘 때고 컴퓨터로 책을 살 뿐 다른 때는 쓰지 않습니다. <천룡팔부>에서 소봉, 단예, 허죽, 청소하는 승려 중 누구의 무공이 가장 강합니까? 내공과 경험, 절기들을 포함해서요. 청소하는 승려가 가장 강합니다. 당신의 문학은 어떻게 창조된 것입니까? 책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걸 좋아했습니다. 처음 무협소설을 쓸 때의 심리상태는 어떠하였습니까? 마음속에 이야기가 떠오르면 무협소설에 넣은 것입니까? 아니면 마음속으로 소설의 구성과 다른 관련내용을 구상한 다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십니까? 처음 무협소설을 쓸 때는 어떤 계획도 없었는데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기분 내키는 대로 절반을 쓰고 바쁘게 써내려 간 것으로 필명조차 생각해내지 못해서 내 이름의 “용”자를 쪼개 “김용”으로 나눠 사용하게 된 것 입니다. 두 번째 작품을 쓸 때는 구성의 대강을 구상한 다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중의 인물의 이름과 무공초식의 명칭은 어디서 영감을 얻으십니까? 이름을 설정할 때 그 사람의 개성과 출생배경 등등을 만듭니다. 무공초수의 명칭에 관해선, 그 사람의 문학적 기초가 비교적 튼튼하다면 심오한 이름을 사용할 것이고,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도 이와 관계있습니다. 어째서 당신 소설 속의 남자주인공은 자질이 우둔하고, 심지어 위소보 같이 경솔하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수많은 여자의 호감을 받는 것입니까? 어떤 심리상태를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까? 당신의 성장 배경과 관련이 있는지요? 큰 관련은 없습니다. 내 소설의 남자주인공이 모두 자질이 우둔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겉으로 보기엔 바보 같지만 사실은 매우 총명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는 떠벌리는 남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천도룡기>의 명교가 정말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주원장은 당시 그들의 수령 중 한명 이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당시 명교를 이용해 원을 전복하려 한 것으로 주원장이 당시 통솔하던 것은 ‘홍군(洪軍)’이지만 작품을 쓸 때 공산당의 ‘홍군(紅軍)’과 헷갈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쓰지 않은 것입니다. 리안이 만든 ‘와호장룡’의 수준이 당신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작품을 개편해 영화로 만든 매체의 표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리안 선생과 합작할 생각은 있으신지요? 나는 ‘와호장룡’을 무척 좋아합니다. 만약 리안 선생이 흥미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작품을 주고 싶으며 심지어 판권료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대사께서 현생애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조금 더 잘 배웠으면 합니다. 당신이 만든 인물 중 누가 당신의 성격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단예의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과 여자친구가 그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 그의 개성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장무기의 너그러움과 소봉의 시원시원함을 좋아합니다. 지금 내 자신의 소설을 꺼내보면 스스로도 재미있습니다. 아마 나는 다시는 이런 소설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소설 속의 대부분의 인물은 나의 머릿속에 형상과 용모가 있어서 마치 나의 오랜 친구 같습니다. 경공 신법 중 누가 가장 상승의 것이며, 가장 빠르고 가장 멀리 갈 수 있습니까? 위일소 입니다! 나는 그의 경공이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규화보전에 기재된 무학은 검술입니까 아니면 내공입니까? 내 생각에는 내공위주의 검술입니다. 양과는 독고구검을 연성한 것입니까? 그의 무학의 경지는 어느 정도 입니까? 일부분이 독고구패에게서 완전하게 전수된 것이 아니기에 그의 검법은 매우 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력은 영호충보다 나은데 왜냐하면 16년 동안 절벽에서 폭포수로 연마하였기 때문으로 내력은 무척 강합니다. 책 속의 인물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성입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현대사회에선 새로운 남성상이 각광받고 있는데 누가 가장 여기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외형적으로 본다면 향향 공주가 가장아름답고 소용녀의 미인 점수도 높겠지요. 타이베이의 여성들은 단예를 가장 좋아하더군요. 성격이 좋고 사랑에 온 마음을 기울이니까요. 청나라때 홍화회와 같은 방회가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창조한 것입니다. <천룡팔부>엔 포부동, 포부정 부녀가 나옵니다. <사조영웅전>의 포석약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어떤 관계입니까? 관계없습니다. 성이 포씨 일뿐이지요.(김용은 웃으며 보충하길, 이 문제는 ‘포청천’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소오강호>는 어떤 시대입니까? 책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요. 어떤 독자는 명대로 생각하는데 창작할 때 어떤 시대로 설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허위성을 말하는데 어떤 시기라도 관계없기 때문입니다. 규화보전과 독고구검 중 어느것이 강합니까? 나는 당연히 독고구검이 이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에 보면 백의의 여자가 특히 많이 나오는데요. 어떤 함축된 뜻이 있습니까? 흰 옷은 비교적 깨끗하고 탈속하지 않습니까! 소설 속에서 많은 부분이 ‘무법세계’인 무림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강호의 은원으로 살인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죄가 되지 않나요? 물론 죄가 됩니다. 하지만 옛적에는 이는 도덕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관부에서도 반드시 복수하는 이런 일을 허용했습니다. 진한시대에는 만약 부모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멸시했습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선 지금이 이런 관념이 남아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무림인이 중시하는 것은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무공을 못하는 사람에겐 출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의 운명은 거의 그녀가 사랑하는 남성에 의해 좌우됩니다. 설령 총명하고 재지 넘치는 황용이라도 곽정의 무공이 자기보다 높기를 바랍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을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쓸 때는 부지불식간으로 고의가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성의 도덕성이 비교적 높으며 남성처럼 명리를 다투지 않고, 여성은 감정을 매우 중시하고 기꺼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자 합니다. 페미니즘이 만약 남녀평등을 주장한다면 나는 지지하지만 만약 남성을 뛰어넘는 것을 주장한다면 나는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교실에서 “김용은 남존여비의 관념이 있는가?”, “김용은 여성을 중시하는가?”에 대한 일련의 문제에 관해 쌍방 격렬한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둘 다 주장에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김용 대협께서 좀 가라앉혀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절대 남존여비의 관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쓴 무협소설은 중국고대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당시에는 남존여비의 관념이 유행했으니 시대상황의 반영인 것입니다. 나는 여성을 존중합니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감성을 중시하고 가정을 중시하며 애정과 주위사람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남성은 명예를 중시하고 권력투쟁을 중시하고 사회적 지위를 중시하고 사리를 중시하면서도 감정을 경시합니다. 가치로 논하자면 대다수의 여성이 대다수 남성의 인격보다 비교적 높습니다. 하지만 남성은 종종 국가와 민족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니 이것은 여성보다 나은 점입니다. <협객행>에서 주인공 석파천은 뜻하지 않게 현철령을 얻은 후에 무림의 풍파에 휘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석파천이 태현경을 배운 후에 이야기는 끝나게 되어 어떻게 되는지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김용 선생께선 왜 이렇게 끝낸 것입니까? 다른 원인이 있습니까? 석파천이 당세 무적의 무공을 익힌 후에는 백아수를 아내로 삼고 석청, 민유 양대 고인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는 본성이 선량하고 행동이 바른 사람이라 결말도 반드시 아름답습니다. 모두들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더 좋게 쓸 필요는 없습니다. 책 속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그중에 객잔에서 조민이 장무기를 본 후에 잔에 연지자국을 남겨 장무기가 잊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도 술을 마시면서 여러 번 립스틱 자국을 남겨봤는데 아무도 내게 주목하지 않더라고요! 난 하도 분해서 다 마시고 난 다음 칠해버렸어요. 어떻게 이런 세세한 이야기에도 신경을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상상입니다. 만약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하는 모든 것이 감각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르다면 어떤 작은 이야기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김용 방문기 중에서> 김용은 자신이 가장 세밀하게 그려낸 사람은 양과이며, 가장 좋아하는 여주인공은 황용이고, 가장 좋아하는 남자주인공은 단예, 싫어하는 남자로는 악불군, 여자로는 곽부, 이상적인 배우자로는 임영영을 말했다. 그럼 김용의 부인께선 황용과 영영 중 누구와 비슷할까? 우리는 재삼 추궁했지만 김용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이 김대협을 무척 곤란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용이나 영영을 답하더라도 우린 “불충분해요.”라고 할 작정이었다. 막 우리의 계획을 옮기려는 때 뜻밖에도 대협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벽혈검의 온청청과 비슷해요!” 아! 황용, 영영, 온청청이라, 대협의 감정세계는 퍽 복잡하고 심오하다! 문제를 들고 갔던 것은 1997년 이었는데 나중에 다른 매체에서 방문했을 때 부인이 누구와 가장 비슷하냐라는 문제에 대한 답안들로는 쌍아 버젼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막수 버젼도 있었다. -출처 다음까페 곽정과 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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