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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으로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체감하는 '시간'은 사람 각자각자에 따라 다르다.
행복했던 시간은 보통 찰나처럼 지나간다고들 말한다.
그건 행복하니까, 정신없이 그 시간을 흘려보내서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자기 자신과 가장 진실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때문이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가 되었어.
도착한 후 나는 그와 말없이 계속 키스만을 나눴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이윽고 그가 내게서 멀어졌을때, 내 머리속은 이미 새햐얗게 탈색되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버렸어.
약간 부르튼 입술이 아파온다. 하지만 싫진 않아.
무슨말을 먼저 건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말을 해야 좋을까?
- 한스...아렌델엔 무슨 이유로 다시... 돌아온건가요?
가장 궁금한걸 물어보는게 좋겠지.
-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 네? 죽기전에요? 하지만 당신은.. 내가 보기엔 건강해보이는걸요?
- 저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들은적 없으세요?
그 말에 잠시 나는 할말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차단하고 살았기에,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은적도 없으니까.. 이 이야기를 굳이 그의 앞에서 하고 싶진 않았다.
- 무슨일이라도... 있어요?
내 말에 잠시 그는 표정을 굳히는것 같았다.
- 아녜요! 아무것도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예요. 죽기전이라면 지금도 포함되는잖아요? 그리고.
이 말을 끝내고 내 손을 부드럽게 잡는 한스.
- 당신이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 말에 난 또 정신이 멍해진다. 오늘 나 왜 이럴까.. 감정조절이 전혀 되질 않아. 부품 하나가 고장나버린 기계 마냥 어설픈 오작동만 반복중이다.
- 엘사는 잘 지내고 있나요? 기회가 된다면 꼭 사죄드리고 싶은데..
- 아.. 언니야 잘 지내죠! 그런데 가까이 가지 않는게 좋을것 같아요~ 아무래도 당신을 싫어할수밖에.. 그리고.. 음,,,
엘사 언니에 대해 떠올리다가, 뭔가 하날 잊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중요한것 한가지를 아까전부터 계속 놓치고 있는것 같은 이상한 기분.
내가 아까부터 즐겁지만 부적절함을 느끼고 있는 이유.
- 아.....
크리스토프.
지금 내 옆방에서 편안히 자고 있을 나의 피앙세. 다음달에 나와 결혼하기로 한 예비신랑.
한스가 날 죽이려 하기 이전부터 계속해서 날 위해 뛰고 도와주고, 응원해줬던 착하디 착해빠진 남자..
그를 떠올리자 행복했던 기분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그 빈공간은 죄책감이 대신 가득 메웠다.
그래..이래선 안되는거야. 절대로
이건 크리스토프와 엘사 언니, 크게는 아렌델 국민의 기대를 배반하는 행동이니까.
난 한명의 여자이기 이전에 아렌델의 서열 2위, 언니의 뒤를 잇는 유일한 공주야.
철부지마냥 행동해선 안돼.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해. 난 이미 약혼녀야.. 크리스토프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거야?
이성적으로 생각해. 감성은 잠시 접어두는거야. 일단 이 자리를 떠나.
- 어...저기.. 한스? 있잖아요..
- 네? 말해봐요 안나.
내 말에 나를 지긋이 응시하는 아마빛 눈동자. 그 눈동자에 빨려들어갈것 같은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쓴다.
- 시간이.. 어, 늦어버려서요..하하.. 아무래도 걸리면 위험..하니까. 일단 전 가봐야겠어요.
- 아.. 그러네요. 그럼 어서 가도록 해요.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게.
- 알겠어요. 그리고 한스, 지금 바깥을 돌아다니는건 위험할수 있으니까..
내 말을 듣던 한스가 내 입에 조용히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갖다댄다.
-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 어서..
- 알았어요...
이제 뒤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돼. 어서 빨리 왕궁으로 돌아가.
그런데 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걸까...
하..난 정말 나쁜 여자야.. 미안해...
정신을 차리고 문 앞을 떠나 달려가기 시작했다. 곧 동이 틀꺼야.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 멀어져가는 헛간을 자꾸 한번씩, 한번씩 쳐다보게 된다.. 불빛은 점점 멀어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 후우....
안나와의 즐거웠던 시간은 찰나. 어느새 그녀는 떠나버렸다.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게 느껴졌다.
아마 자신의 언니 몰래 나를 만나는것에 죄책감을 느끼는걸지도..
어쩌면, 그때 나를 주먹으로 후려팼던 그 얼음장수와 아직도 교제중일지도 모르겠군..
부러진 칼날로 엘사를 죽이려 했던 내 잘못이 제일 컸지만...으...그 무식한 새끼..
그런 투박한 남자는 안나를 가지기엔 너무 수준미달이다. 코딱지나 파먹게 생겨가지고. 흥.
....후,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봐야 아무 쓸모 없다.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게 나에게 더 좋깄어.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한번 생각을 해볼까.
감옥에서 나온게 11월 26일.
표류되서 이곳으로 온게 27일
안나와 만난 오늘이 28일..
나에게 남은 시간은... 이번달이 31일까지 있으니 29일 정도.
약 4주정도의 여유가 있다.
그리고 난 이미 아렌델에 와서 내가 하고자 했던 목적을 이뤘다. 원래 목적은 단순히 안나의 모습을 한번 더 봐야겠다- 였으니 달성 초과겠지만.
이제 어떻게 할까. 이곳을 떠나야할까?
여기 있는건 너무 큰 위험이 따른다. 배 위에서 날 파도속으로 집어 던진 아렌델 시민들을 생각해봐.. 걸리면 어떤 방식으로든 날 끔찍하게 죽이려 할게 분명하다.
내가 저지른 죄의 댓가긴 하지만 마지막 한달의 시간을 그렇게 험 하게 날리고 샆진 않다. 그렇기 위해선 아렌델을 지금이라도 당장 뜨는게 제일 좋겠지.
아렌델을 뜬다면 어디로 가야하지? 다시 서던 제도로? 그날이 오기전엔 절대 먼저 갈 생각 없고.. 위즐튼? 거긴 너무 진부해...그래 맞아. 코로나 정도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꽤나 화려하고 볼 거리도 많은 곳이니까.
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보니 현명한 판단은 아닐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렌델과 코로나는 현재 깊은 친선관계에 있다. 프로즌 크라이시스(* 프로즌 원작에서 벌어진 위기를 이렇게 표현하겠음.)가 모두 극복된 이후 다시 치룬 대관식에 정식 방문한 코로나의 공주와 엘사 여왕이 꽤나 깊은 친분을 나눴다는 모양이다. 물론 안나도 포함됐을테고.
이후 자국으로 돌아간 코로나 공주의 설득으로 두 나라는 특별 무역-군사 협정을 맺고 거의 동맹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 규모만으론 우리 서던 제도와 맞먹는 코로나와 엘사 여왕 하나로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아렌델의 친선 소식은 꽤나 충격적인 사실이였던 모양이다. 감옥에 있었던 나도 간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여하튼 이렇게 공주끼리 친해져버린 나라를 내가 놀러간다고? 걸리면 아마 여기서도 무사하진 못할것 같으니 방금 고려했던 건은 취소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 입장에선 어디를 가던 위험이 배제된곳은 없다...
그래, 오히려 폐쇄되고 외진 이 헛간이 제일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안나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것 같은 눈치다. 굳이 내가 위험을 무릎쓰고 떠날 이유가 크게 없지..
결국 나는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
안나가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나에 대해 마음을 열어주길 바라면서..
겨울바람은 차다. 요새 내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안나가 몇일째 밤마다 사라진다.
안나는 내가 자는줄로만 알고 있었겠지. 난 생각보다 밤귀가 밝다.
밤마다 도대체 어딜 가는거야 안나?
그런데 차마 직접적으로 물어볼수도 없다. 의심한다는 느낌을 줄까봐.. 난 안나를 믿으니까. 하지만 어딜가는지 궁금한건 정말 어쩔수 없다.
답답한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났다. 굳이 나갈 필요는 없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얼음을 캐러 가볼까.
무언가라도 열심히 깨고 부수고 자르고 싶은 느낌이다.
곡괭이와 밧줄, 랜턴을 챙기고 마굿간으로 향한다.
원래 항상 자고 있을시간인데 스벤은 깨있었다. 나를 맑은 눈동자로 쳐다보는 순록. 나의 20여년지기 친구이자 가족..
- 자 스벤, 오늘은 오랜만에 얼어붙은 심장을 캐내러 갈꺼야.
스벤이 좋아하는 당근을 입에 물려주며 나는 차근차근 얼음을 캐러나갈 채비를 했다. 빨리 무언가를 쪼개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채로..
무언가는 얼음일까,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확실치 않은 불안감일까.
- 후우....
방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오전 6시를 가리켰다.
크리스토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벽애 나간 모양이다.
- 내가 새벽에 나가버린걸...알고 있겠지..?
크리스토프가 내 새벽외출을 아는건 이번 한번뿐일테니 어떻게든 넘길수 있지만, 내 마음속의 죄책감을 넘길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내 머리속을 한스가 점점 지배해가기 시작했다.
난 그걸 부정하려고 애쓴다. 부정해야돼. 더 이상 만나선 안돼. 엘사 언니랑 크리스토프를 배반할 수 없어.
안돼, 안돼안돼안돼....
- 그래...안나, 이제 한스는 잊어버려. 지금이 어쨌던 과거에 너와 언니를 죽이려 했던 나쁜놈일뿐이야.
'....아니야, 그는 나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있어.'
- 연기하는것 뿐이라고 이 멍청아! 또 바보같이 속아 넘어가려는거야?
'....아니야. 그의 눈빛과 표정에선 어떠한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어.'
- 제발 그만해....
자꾸 한스를 부정하려 할수록 마음속에서 내게 되묻는 질문이 많아진다.
아까 헛간에서 들었던 죄책감과 동시에 헛간에서 나눴던 달콤했던 키스가 동시에 내 머릿속을 가득채워버렸다.
머리통이 터져 버릴것만 같아...
이런 생각외엔 아무 생각도 할수가 없어. 다른것을 하고 싶지도 않아.
난 그대로 침대위에 누웠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 카이!
- 예, 여왕폐하.
- 안나는 들어왔나요?
- 예, 여왕폐하. 방금전에 공주님이 왕궁에 도착해서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입니다.
새벽 6시.... 이렇게 길게 도대체 어딜 돌아다닌거지 안나?
- 그렇군요.... 알겠어요. 어제 말했던건 오늘 밤부터 진행하도록 하세요. 안나의 뒤를 철저히 밟도록 해요.그럼 이만 나가봐요.
- 예, 여왕폐하.
카이가 방을 나간 이후 30분, 1시간이 지나도 내 의문은 끝날줄 모른다.
안나가 원래 활발하긴 하지만 올빼미족은 절대로 아니다.
항상 12시 이전엔 자는게 안나였는데. 어릴때부터 항상 그래왔으니까. 습관이라는건 잘 바뀌지 않는 법인데.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밖을 돌아다닌거지?
그것도 한겨울에. 넌 나처럼 마법을 가진것도 아니라서 추위도 탈텐데.
그냥 겨울밤의 산책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뭔가 이상한 부분이 너무 많아..
혹시 이상한 신흥종교에라도 빠진건 아니겠지? 동생을 그런곳에 절대로 물들이게 할순 없다. 그건 언니로서 해야할 알이야. 어머니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어. '우리가 세상을 뜨면 혈육은 안나 하나뿐' 이라고..
만약 안나를 끌어들인 간 큰 놈들이 있다면...
방이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후우.. 진정하자, 진정..
그리고 또 하나 걸리는게 있다. 얼마전에 본 시민의 편지.
시민은 한스를 배위에서 발견했고, 물속으로 빠뜨렸다고 했다. 아마 분명히 죽었을꺼야. 분명히.
그렇지만 혹시나 살아 돌아와서 밤중에 돌아다니는 안나를 해치려들지도 모른다.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놈은 귀신같은 놈이라 혹시 모른다.
아렌델 근처 바다에 던졌다는것도 자꾸 마음에 걸리고 말야..
한스가 돌아와서 안나를 해칠수도 있다니..오, 그런일이 있어선 절대로 안돼.
프로즌 크라이시스 당시엔 네가 날 보호했겠지만, 이젠 내가 널 보호할꺼야 안나.
아무도 너에게 위해를 가할수 없어, 아무도....
되게 오랜만에 쓰는것 같네.. 없겠지만 기다렸던 사람이 만약에라도 있다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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