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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문학/엘탄절]포도주스가 삼켜지고, 각자의 말은 남겨진다

ㄱㅁㅅs(14.52) 2015.12.22 22:32:09
조회 423 추천 9 댓글 8

꽤 오래전...

 

“상사님! 상사님! 어딨어요 상사님!”

 

아침부터 부하직원 하나가 요란이다. 이제 연말이라 피곤할텐데 왜 저래...

 

“왜?”

 

“드디어! 저희 채널에 오랜만에 인기 영화가 풀릴 날이 왔습니다!”

 

후배에게 좀 괜찮은 영화들 좀 알아보랬더니 뭐 하나 건졌나 보다.

 

“뭐가?”

 

“그거.. 그거, 그거! 디즈니에서 눈 마법 부리는...”

 

눈치챘다. 그게 벌써? 맘 같아선 바로 승낙하고 싶지만 체면이 있지, 끝까지 말을 듣는다. 차부우운~히... 는 듣긴 듣는데 벌써 그날이라니... 얼빠진 표정으로 변하진 않을까 고민이네.

“그러니까 이번 26일에는 겨울왕국 틀죠. 전통적으로 신작 인기 영화는 밤 10시에 하니. 시간은 그 때하고.”

 

일단 거절하는 척 한다.

 

“밤 10시? 그 땐 애들은 이미 다 잘 시간인데?”

 

“에이~ 피디님이 모르시는구나?”

 

안다, 이놈아, 너보다 훨씬 더.

 

“그게 천만영화인 이유가 뭐겠어요? 그건 애들뿐만 아니라 저희같은 성인도 잔뜩 몰려들어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수고했어.” 끝까지 컨실돈필. 무심한 척.

 

“네, 시청률 높게 나오면 뭐 사주세요!”

 

“그래 그래”
‘아마 그렇게 될걸?’

 

입가에 미소를 숨기고 끝까지 무뚝뚝한 척 한다. 그리고 부하직원이 나가자 탄성을 지른다.

 

아싸! 앗흥행할학 을로 우그킂! 할렐루야!
.
.
.

얼마 안가... 다른 곳에서 꽤나 딱딱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의 회의가 열렸다.

 

“에... XX씨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 방송 뭘로 내보낼지 아이디어 짜낸 걸로는... 6시 10분에 ‘겨울왕국’이네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약간의 피식거리는 웃음소리들을 기대했지만 다들 반응을 감추자 묵묵히 자신의 의견을 꺼낸다.

 

“아 예, 겨울왕국 러닝 타임이 딱 그거 끝나고 8시 뉴스하기에도 좋고, 특히,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요즘은 크리스마스 때 커플이니 뭐니 하지만, 애들과 가정은 아직 아니잖아요? 그런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생각합니다. 딱 그 시간대가 저녁 먹을 시간이니 같이 저녁 먹으면서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평소에도 믿음직했고 본인도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기도 해서(유난히 첫 음절을 길게 발음하긴 하지만)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네, 그럼 이번엔 XX씨 의견으로 가죠.”

 

직원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역시 난 믿-음직해
.
.
.
얼마 전... 어떤 회의에서 꽤나 강압적인 사람이 다른 방송사들의 방송 시간표를 빠르게 훑어본뒤 잔뜩 비웃는다.

 

“우하하하! OCN이고 SBS고 다들 자기가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낄낄낄. 겨울왕국은 바로 디즈니 작품이라고, 디즈니. 그리고 그 디즈니 방송은? 우리가 맡고 있지!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강점을 살리면 돼. 걔네들이 절대 못할 시간표를 짜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실 건데요?”

 

“26일 오전부터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종일. 모든 정규방송을 그걸로 채우는 거야.”

 

당연히 다들 놀란다.

 

“하루 종일요? 그래도 되요?”

 

“그럼! 다른나라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디즈니하면 모르는 애들은 있어도, 겨울왕국 하면 모르는 애는 없다고! 우리나라에선 애들에게 디즈니는 겨울왕국이야!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어? 어린이가 티비를 안아주고, 티비를 보다가 그 나이에 처음으로 밥 먹는 것도 까을 정도로 보여주는 거야! 책임은 내가 지도록 하지! 그럼 오늘 회의는 이만! 기분이다! 오늘은 모두 1시간 일찍 퇴근하도록 해!”

 

상사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즐겁게 퇴근했다.

 

상사가 마지막으로 퇴근하는 건 오랜만이지만 지금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나 보다. 노래까지 부르며 차를 운전하는 걸 보니

 

렛 잇 고~ 렛 잇 고~ 캔트 홀드 잇 백 애니 모어~
.
.
.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장소에서 세 피디들은 전자기기를 만지작거리면서 회상에 잠겼다.

 

“햐... 벌써 2번째 생신이시네...”

 

“이놈들은 어디서 뭐할라나...”

 

“옛날 생각나네...”

 

각자의 장소에서 피디들은 똑같이, 한때 많이 팔리고 지금도 간간히 팔리는 어떤 브랜드의 포도주스가 담긴 음료수병을 연다.

 

“메가박스와 CGV의 독점은 끝났다. 잠시 동안, 전설의 볼래양께서 우리를 휘어잡았지... 이제 무대는 방송파가 차지한다... 그리고 무대는”

 

각자의 두 문장이 끝난 뒤 포도주스는 각자의 입 속으로 삼켜진다.

 

“영화전문 OCN이”
“국민방송 SBS가”
“물량의 디즈니채널이”

 

“장다.”

 

“모든 것은 최고존엄과 나의 방송사, 그리고 믿-음직한 트루-러브를 위하여”
.
.
.
원래 쓰던 연재 문학이 안 되어서 머리 식힐 겸 다른 장르 처음으로 썼어염. 프갤에선 나름 전통있는 장르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올해에 온 갤러들은 잘 모르겠네요.

 

엘-멘 안-렐루야, 이번엔 엘탄절이니 엘-멘 엘-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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