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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씨.”
“예, 여왕님.”
지, 진정하자. 진정하는 거야, 크리스토프. 아니, 진정이 될 리가 없잖아. 왕국 공식 얼음장수로서든, 안나의……. 저기, 그, 애인으로서든, 자기 앞에 선 젊은 여왕과의 대화는 몇 번을 반복해도 무섭다. 여러가지 이유로.
“제가 왜 당신을 불렀는지 알고 있나요?”
“…… 모릅니다, 여왕 폐하.”
일단 솔직하게 대답하지만, 돌아오는 건 엘사의 쓴웃음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버릇부터 고쳐야겠군요. 둘이 있을 때는 엘사라고 불러달라니까요.”
“좀 봐주십쇼. 쉽게 고쳐지는 버릇은 아니라.”
참, 그래도 운명적인 첫 만남으로부터 한 달이나 지났다. 이젠 여왕 앞에서 이런 너스레도 떨 수 있게 된 거다. 물론 잘못 까불다 걸리면 국물도 없겠지만.
“뭐, 좋습니다. 이 주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그건 그렇고…… 요새 안나가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지 않나요?”
아하, 의혹은 들었지만 역시 그 얘기였나.
“좋은 쪽으로 말입니까, 나쁜 쪽으로 말입니까?”
“그게…… 확신이 안 가요. 역시 눈치채셨나요?”
“며칠 안됐어요. 뭐랄까…… 얌전해졌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당신 앞에선 좀 솔직한 모양이군요; 제 앞에선 완전히 딴 사람이 돼버려요.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엘사의 표정이 좋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변했길래? 자기 앞에선 바뀌었대 봤자 말수가 좀 줄고 여기저기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좀 애쓰는 정도다. 아, 그러고 보니 요새 화장을 바꿨나?
“특히 저와 다른 사람들 앞에 있을 때가 제일 심해요. 너무 조신해서 다른 사람 같다고 해야 할까요? 요샌 회의에도 참석하고 있고, 정무에도 약간 관심을 보이고 있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있고, 표정도 관리하고 있고…...”
“음…… 그건 여왕님 입장에선 좋은 일 아닙니까?”
크리스토프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엘사의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그 아이, 혹시 절 신경 써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신한 숙녀로써 행동하지 않으면 제 위상이 나빠질까봐 무리하는 것 같아요.”
흠, 확실히 안나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엄청 고생할게 뻔하지만.
“마음은 고맙지만…… 그 애, 이미 절 위해 너무 많은 걸 희생했어요. 전 그 애가 지금처럼 활달하고, 방정맞고, 할말 안 할말 다 하고, 가끔씩은 혼자 헛디뎌 넘어지기도 하고…… 아무튼 안나다웠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크리스토프도 조용히 동의를 표한다. 엘사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심이다. 그런 어설프고 다혈질이고 온몸에서 긍정을 내뿜는 철부지 공주님을 사랑하게 된 자신이니까.
“만약 저 때문에 그 애가 자기 개성까지 잃어버리면…… 전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엘사의 고백은 비통하기까지 하다. 한 나라의 여왕이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지만, 그 모든 것 이전에 그녀는 그저 좋은 언니이고 싶은 것이다.
어째,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고민을, 엘사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이 정도면 그녀에게 어느 정도 신뢰받고 있단 증거일까?
그럼 그 신뢰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말괄량이 공주님께 그 진심을 전해드려야겠지.
“안나를 불러주세요, 여왕님. 저희 둘 다 그녀에게 할 얘기가 있겠네요.”
이번엔 또 뭘 잘못했나?
언니 – 엘사의 서재 앞에서 안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거였다. 안 그래도 요 몇 주간은 최대한 공주로서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던 참인데, 뭔가 실수한 건가?
정말 변하려고 노력했다. 그 운명의 대관식 날, 엘사를 아렌델 밖으로 쫓아낸 건 자신의 무심함이었다. 한스를, 첫사랑의 힘을 너무 믿어서 모든 걸 끝장낼 뻔한 건 자신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이었다. 더 이상은 그런 걸 허락할 수 없었다.
뭐, 열어보면 알겠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문에 노크를 한다. 똑 똑 또독 똑.
“들어오렴, 안나.”
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살짝 미소가 떠오르는 걸 느끼며 문을 연다. 톤을 보니 혼날 것 같진 않다.
방문을 들어섰더니, 어라? 방 안에는 엘사뿐만 아니라 크리스토프도 있었다. 평소 모습 그대로지만, 예상 못한 기습에 안나의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아, 아니, 침착해, 안나! 이럴 때야말로 냉정해야지! 여기서 또 뻘소리라도 하면 언니와 그 뭣이냐, 남친 앞에서 쌍으로 망신이라고!
“이런, 벌써부터 당황하고 있는데요?”
히익! 귀신이다, 이 남자!
“귀신이라니, 그건 좀 심하지 않니, 안나?”
히이익! 나 방금 그거 소리내서 말했었어?!
“망했어……” 애써 만들고 있던 안나의 가면이 무너진다. 바보같아, 이런 사소한 일에조차 덤벙대다니. 이래가지고선 언니에게 구박받아도 할 말이 –
“아휴, 바보.”
갑자기 푹 하고 안나의 머리가 엘사의 쇄골에 파묻힌다. 갑작스런 포옹에 대한 당황함과 방금 전에 실수에 의한 부끄러움이 겹쳐 안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크리스토프는 뒤에서 뭐가 좋은지 콧노래나 흥얼거리고 있다.
<재생시작>
“무, 무슨……”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안나.”
차분히 뒤로 물러나던 엘사가, 콧노래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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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her eyes, her eyes make the stars look like they're not shinin'
(아아, 그 애의 눈, 그 애의 눈은 별조차 빛나지 않게 하네)
Her hair, her hair falls perfectly without her trying
(그 애의 머리칼, 그 애의 머리칼은 만지지 않아도 완벽히 늘어지네)
She's so beautiful, and I tell her everyday, yeah
(그 애는 너무 아름다워, 내가 매일 말하듯이, 그래)
안나의 눈이 동그래진다. 지금 자기 놀리는 건가? 아침마다 살아있는 까치집이 돼서 매만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 자기 머리가 완벽하다고?
“언니, 그런 빈말로 안심시킨다고 해도 –“
I know, I know when I compliment her she won't believe me
(알아, 알아, 내가 칭찬해도 그 애는 믿지 않아)
And it's so, it's so sad to think that she don't see what I see
(너무 너무 슬퍼, 뻔한 걸 그 애는 모른다고 생각하니)
But everytime she asks me "Do I look okay?" I say:
(그래도 그 애가 나 괜찮냐고 물어보면 나는 말하지)
동생의 항의를 듣긴 한 건지, 엘사는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노래를 계속한다.
근데…… 정말? 진심으로?
When I see your face there's not a thing that I would change
(네 얼굴을 보면 아무것도 고칠 게 없어)
'cause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넌 있는 그대로 놀라우니까)
And when you smile the whole world stops and stares for awhile
(네가 웃으면 온 세상이 멈춰서 쳐다보네)
'cause girl,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yeah
(넌 있는 그대로 놀라우니까, 그래)
안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아아, 그런 거였나. 이 무른 언니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바꿔보려 했던 동생이 그저 안쓰러웠던 거다. 참, 이런 언니를 위해서라면 자신은 기꺼이 바뀔 텐데.
“언니, 고마워…….”
“아직 안 끝났어,” 돌연 엘사가 눈웃음지으며 말한다. 영문을 몰라 하는 안나 앞에서, 그 동안 계속 콧노래만 부르던 크리스토프가 앞으로 걸어나오며 –
Her lips, her lips I could kiss them all day if she'd let me
(그녀의 입술, 그녀의 입술; 허락한다면 하루종일 키스할텐데)
Her laugh, her laugh she hates but I think it's so sexy
(그녀의 웃음, 그녀의 웃음, 그녀는 싫어하지만 나한텐 섹시하기만 하지)
She's so beautiful, and I tell her everyday
(그녀는 너무 아름다워, 내가 매일 말하지만)
헉, 안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된다.
그래, 그녀가 바뀌려던 이유는 단지 엘사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다.
Oh, you know, you know, you know I'd never ask you to change
(아아, 알고 있잖아요, 절대 당신이 변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If perfect's what you're searching for then just stay the same
(완벽함을 원한다면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So don't even bother asking if you look okay; you know I'll say:
(그니까 괜찮아 보이냐고 묻지도 말아요, 내 대답은 뻔하니까)
When I see your face there's not a thing that I would change
(당신의 얼굴을 보면 고칠 것 하나 없어요)
'cause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당신은 있는 그대로도 놀라우니까)
And when you smile the whole world stops and stares for awhile
(그리고 당신이 웃을 땐 온 세상이 멈춰서 쳐다보죠)
'cause girl,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당신은 있는 그대로도 놀라우니까)
...... 괜히 부끄럽다.
그래, 그녀가 변하려고 한 이유는 언니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어떻게 보일 지가 의식되서 –
The way you are, the way you are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문득 크리스토프가 노래 부르다 말고 피식 웃는다.
아아, 그 웃음으로 알았다.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는 게, 이 남자에게 있어선 가장 기쁜 거라고 –
특유의 바보같은 웃음이 지어지는 안나를 뒤로하고, 다시 엘사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Girl,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우리 아가, 넌 있는 그대로도 놀라우니까)
“하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이런 멋진 언니와 남자를 앞에 두고, 자기는 무슨 바보짓을 하고 있던 걸까.
When I see your face there's not a thing that I would change
(네 얼굴을 보면 아무것도 고칠 게 없어)
'cause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넌 있는 그대로 놀라우니까)
And when you smile the whole world stops and stares for awhile
(네가 웃으면 온 세상이 멈춰서 쳐다보네)
'cause girl,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yeah
(넌 있는 그대로 놀라우니까, 그래)
무슨 신의 타이밍인지, 노래가 끝나는 것과 안나가 두 사람에게 무지막지한 태클 포옹을 가한 건 거의 동시였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란 엘사와 크리스토프는 그대로 넘어져버렸고, 자기 운동량을 못이긴 안나까지 함께 쓰러지는 바람에 졸지에 세 사람은 땅바닥에 서로 위에 엎어지는 꼴을 연출해버렸다.
“...... 이런 바보라도, 이 모습 그대로가 좋은 거야?” 눈가에 감동으로 그렁그렁한 눈물을 애써 닦으며 안나가 묻는다.
“그래야 우리 안나지.”
“그런 바보를 사랑하는 바보니까요, 저는.”
참으로 오랜만에 안나의 웃음이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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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 안-렐루야를 외치는거지
다행히 시간이 나서 오늘 올릴 수 있게 됐네. 노래는 브루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 빌리 조엘꺼 아냐. 좀 길었지, 이번 건.
가끔은 이렇게 병풍도 나와주고 해야 분위기가 사는 거 아니겠어? 게다가 무려 엘사, 병풍 듀엣이야. 안나밖에 모르는 바보들 ㅠㅠ
말 나온 김에, 다음 건 내일 제때 올라올 거고, 이번에도 남자 노래다. 이번엔 안나랑 크리스토프 듀엣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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