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끝이 정해져 있던 시작,
그랬기에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이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툴기만 하다. 마지막 이별 또한 그러했다.
자신의 이름마저 까먹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준영과
그리고 그런 준영에게 맞춰 하루는 을이었다가, 하루는 얼굴조차 모르는 낯선 이였다가, 또 하루는 가정부 을이언니가 된 을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증상으로 준영이의 시간이 촉박할만큼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태와 마주한 준영이
어린아이와도 같은 앳된 표정과 말투가 낯설고도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한다.
지태는 어쩌면 몇 번이고 참아왔을 그 고백들을 준영의 앞에 늘어 놓는다.
다음엔 정말 형처럼 잘해주겠노라고.
다음.
시간의 유한함을 알기에 그래서 이 작은 약속으로라도 늘리고 싶은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을의 표정.
먹먹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을의 표정은 쓸쓸하다.
장을 보고 돌아온 을은 엄마와 마주앉은 준영이를 보게된다.
을이는 씁쓸한 미소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 두 사람의 온전한 시간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두 사람을 기다리는 을의 모습.
두 사람의 시간을 기다리는 을의 모습은 생각보다 길게 자주 나온다.
준영이 영옥과 함께하는 사이사이 모두 을의 기다림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의 시간을 위해 자리를 피해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을의 표정은 굉장히 씁쓸하고도 착잡해보인다.
때로는 초조해 보이기도 한다.
온전히 두 사람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려는 이유
그것이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안되는, 이 순간이 아니라면 다시 없을 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너 되게 많이 피곤해보인다."
"그러게. 되게 많이 피곤하네 오늘."
"기대서 좀 자."
"자면 또 깨우려고?"
"안깨울게. 자."
"또 깨울거잖아. 놀아달라고."
"안깨울게요. 푹 주무세요. "
을은 그 동안 숱한 두려움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예고된 이별이었지만 두려움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으니.
준영이 깊게 잠에 들어있는 순간마다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아 준영을 흔들어 깨웠을 것이다.
그리고는 감사하게도 눈을 떠주는 준영을 보며 을이는 매번 무거운 마음을 감춘 채 '놀아달라구' 웃으며 말했을 것이다.
이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을테니까.
하지만 이제 을은 준영을 깨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더 이상 준영을 붙잡을 수 없다는걸 오늘 알게 되었으니까.
을이 준영의 세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을 자신도 알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직 다 못 전한 작별인사가 남았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매 순간이 얽혀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이복형제
그리고 준영이 가장 사랑하는 두 여자 중 한 사람, 엄마.
을은 준영이 두 사람과 작별아닌 작별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정말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다.
"알았어. 말 안 시킬게. 깨워서 놀아달라고도 안할게.
그래 너 오늘 진짜 피곤하고 고단했어. 다신 안 깨울테니까 엄마도 잊고, 아버지도 잊고, 나도 잊고
아무 생각말고 푹 자. 고마웠어 준영아. 내일 보자."
생의 마지막 둘의 세상으로 도피해오고서도 끝까지 놓지 못했을 사람들,
그랬기에 못내 미련에 남아 준영이 차마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던 이유들.
엄마, 아버지, 그리고 을.
내일 보자 준영아.
그 날이 정말 둘의 이별이었는지, 더 후에 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척박한 삶에서 준영을 만나 처음으로 계절을 느끼고, 사랑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안 을이
사랑한 만큼 보내줄 수 있었던 이별의 의미 또한 준영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영원히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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