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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 따위는 없었다. 그 증거를 끝에 요약으로 써놓는다.

책사풍후키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2.08 22:23:25
조회 234 추천 14 댓글 3


행주대첩이란건 없었다.




처음에 평양이 회복되자 여러 장수들이 많이 경성으로 모여들었다. 중국군이 개성부에 진주하자 우리 나라 장수들은 차례로 전진시켜 함께 기각(掎角)의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전라도 순찰사 권율은 그의 군사 4천 명...... - 선조실록 1593년 2월 24일 기사




선조실록 35권, 선조 26년 2월 24일 기유 1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신경희가 권율의 행주 산성 대첩을 보고하자 인견하고 전투 상황을 상세히 묻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 권율(權慄)이 행주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고산 현감(高山縣監) 신경희(申景禧)를 보내어 승첩(勝捷)을 아뢰었다. 상이 신경희에게 묻기를,


"적의 숫자는 얼마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3만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성산(城山)이란 곳은 지세가 싸움터로서 합당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일면은 강가이고, 삼면은 구릉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곳에 성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먼저 녹각(鹿角)을 설치한 뒤에 토석성(土石城)을 쌓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은 기병이던가, 보병이던가?"


하니, 대답하기를,

"기병과 보병이 서로 섞였습니다. 11일에 정탐군을 보냈는데 무악재[母岳峴]에서 적을 만나 해를 당한 자가 8∼9명이나 됩니다. 그날 적 2개 진이 성산에 나와 진을 쳤는데 한 진의 수효는 거의 5∼6백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튿날 적이 들판을 뒤덮으며 나왔는데 그 숫자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위에서 무엇으로 방어했는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창이나 칼로 찌르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였으며 혹은 화살을 난사하기도 했는데, 성중에서 와전(訛傳)되기를 ‘적이 이미 성 위에 올라 왔다.’고 하자 성중의 군졸이 장차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권율이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명령을 듣지 않는 자 몇 명을 베고 독전하기를 마지 않으니, 적군이 진격해 왔다 물러갔다 하기를 8∼9차례나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이 쏜 것 중에는 우리 나라 화살도 있었는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편전(片箭)에 맞은 자가 많았으니 적군 중에 필시 우리 나라 사람이 투입되어 전쟁을 돕는 것 같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여러 진의 장수들 중 구원하지 않은 자는 누구였는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양천(陽川) 건너 편에는 건의 부장(健義副將) 조대곤(曺大坤)이 있고, 심악(深嶽)에는 추의장(秋義將) 우성전(禹性傳)이 있었으나 모두 와서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들의 형세가 와서 구원할 수 있었는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배를 타면 와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였다. 심희수(沈喜壽)가 아뢰기를,


"여러 장수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형세가 구원할 수 있었는데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극히 통분합니다."


하고, 경희가 아뢰기를,

"그날 적이 물러갈 때에 마침 전라도 조운선 40여 척이 양천 포구를 뒤덮고 왔으니 그 성원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고, 심희수가 아뢰기를,

"대개 오늘의 일은 천행입니다. 여러 장수들이 서로 구원하지는 않았으나 역시 여러 장수들의 성세가 서로 의지되었기 때문에 중국군이 이미 물러갔는데도 적들은 그 유무를 알 수가 없으므로 이튿날 다시 오지 않은 것이니 이 또한 천행입니다. 전라도 군사가 비록 정예라고는 하지만 경계를 넘으면 힘써 싸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죽기로써 싸웠으니, 이것은 반드시 장수가 독전한 공입니다."


하고, 경희가 아뢰기를,

"그날 묘시(卯時)로부터 신시(申時)에 이르도록 싸우느라 화살이 거의 떨어져 가는데 마침 충청 병사(忠淸兵使) 정걸(丁傑)이 화살을 운반해 와 위급을 구해주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의 용병(用兵)을 당할 만하던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이번의 전투에서는 적이 화살을 맞아 죽는 자가 줄을 잇는데도 오히려 진격만 하고 후퇴하지를 않았으니 이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전투시에는 돌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곳에서는 돌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군사들이 다투어 돌을 던져 싸움을 도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네가 거의 죽을 뻔했구나."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권율이 직접 독전하며 진정시켰기 때문에 군사들은 모두 죽기로써 싸웠습니다. 장수가 먼저 동요했다면 군사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또 남병에 우려할 만한 것이 있으니, 소모사(召募使) 변이중(邊以中)은 수레 만들기를 독촉, 백성들에게 소를 바치라고 다그치므로 백성들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민학(安敏學) 역시 소모한다고 하면서 오로지 자기 배 채우는 것만을 우선합니다. 김은휘(金殷輝)는 종사관으로서 군사를 징집할 때 형장(刑杖)을 남용하여 수령들은 조치를 그르치고 백성은 원망하는 자가 많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백성을 곤장치는 막대로 왜적을 때린다면 왜병 한 놈이라고 잡을 수 있을 것인데 일을 성공시키지는 못하고 한갓 폐단만을 끼치니 무슨 까닭인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이광(李洸)을 아직까지 죽이지 않았으니 혹시 후일 위급한 일이 있으면 기율이 엄하지 않아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여기에서는 간혹 서용하자는 의논도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광의 소행이 탐욕스럽고 더러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이 들으니 대가(大駕)가 서천할 때에 2∼3천 병력으로 입경하여 호종하려 했으나 이광이 대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대(沈岱)가 신에게 이르기를 ‘남방의 군사가 정예하고 강성하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이광은 안된다. 윤두수(尹斗壽)가 전일 감사로 있을 때 그 직임을 잘 수행하였으니 만약 두수를 시킨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고 행조(行朝)에 청하게 했으나 심대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 부안 현감(扶安縣監) 김여회(金汝晦)가 먼저 도망치자 대군이 따라서 패했는데도 광은 그를 죄주지 않고 도리어 기생을 데리고 고부(古阜)에 있는 집에 가서 편안히 쉬었으니 필시 불측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고, 심희수가 아뢰기를,


"당초 이광을 잘못 등용했습니다. 이광이 호남의 정병을 가지고 용인(龍仁)에서 패한 뒤에 끝내 근왕(勤王)하지 않았으니 그 죄가 매우 중합니다. 그러나 그 위인이 본디 용렬해서 그런 것입니다. 불측한 마음을 가졌다고 한 경희의 말은 지나칩니다. 이점을 성명께서 참작하셔야 합니다. 유성룡(柳成龍)이 일찍이 이광은 책임자가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과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장검(內藏劎)을 권율에게 준 것은 명령을 어기는 자를 참하게 하려 한 것이다. 너는 돌아가거든 율에게 ‘군율을 어긴 자를 몇 사람이나 베었는가?’라고 내가 한 말로 말하라."


하니, 심희수가 아뢰기를,

"군율에 해이하면서 사기를 진작시킬 수 없습니다. 이번 권율의 승첩은 실로 하늘이 도운 것으로 거의 전군이 함몰될 뻔하다가 끝내 대첩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하지 않는 여러 장수들은 마땅히 군율로써 처단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일 연안성(延安城)이 포위되었을 때 강화(江華)에 위급을 고하니 김천일(金千鎰)은 구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 군대에게 논상하려고 하였으니 이 무슨 도리인가?"

하니, 희수가 아뢰기를,


"군사를 거느리고 적에게 나아갔다면 경성 사람들의 기세가 오르고 적 또한 물리칠 수 있었는데 한 사람도 구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권율이 이미 도순찰사(都巡察使)가 되었으니 병사 이하는 스스로 처단할 수가 있다."


하니, 희수가 아뢰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아군의 전사자는 묻어 두었는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거두어 장사지낼 사람이 있는 자는 거두어 장사지냈으나 없는 사람은 묻어 두고 나무를 꽂아 표를 했습니다."


하였다. 상이 경희에게 묻기를,


"적은 도망갈 뜻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경성에서 온 자들이 모두들 말하기를, ‘적들은 혹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형적을 드러내지는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적은 매우 교활하다."


하였다. 경희가 아뢰기를,


"김천일이 군사 3백 명을 거느리고 온 것을 사람들이 모두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고, 심희수가 아뢰기를,


"김천일이 다만 외로운 섬에 들어가서 일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당초 국가가 위태로운 중에 군사를 이끌고 멀리 왔으니 뜻만은 가상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사람의 뜻은 칭찬할 만하나 장수의 재능이 없다. 고경명(高敬命)은 적의 간첩에게 죽었다 하는데 그런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경명이 뜻은 강개하나 지모(智謀)가 모자랍니다. 금산(錦山)에는 싸울 만한 장수가 없는데 형세를 몰라서 끝내 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였다. 신경희가 드디어 하직을 고하고 나갔다. 【이광은 여러 차례 총애를 받아 방백(方伯)으로 발탁되었는데 국가가 변란을 당하였어도 근왕(勤王)할 뜻이 없었으니 죄는 실로 용서받기 어렵다. 그러나 불측한 마음이 있다고 지목한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김천일은 의병을 일으켜 천리 길을 달려 임전하였으니 그 뜻은 가상하다. 그러나 고도(孤島)에서 해를 넘기면서 적을 제압할 방책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재능을 어찌 일컬을 수 있겠는가?】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45면

【분류】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1. 행주산 정상에서 권율은 강을 뒤로 배수진 친채 강물에 빠져죽을 각오를 하고 4천 군사들과 함께 급히 널린 돌들로 성을 급히 대충대충 쌓고 

 녹각 방해물들을 이리저리 뿌리고 화살 개난사를 준비하고 돌들도 투석하려고 꾸역꾸역 준비한다. 


2. 권율은 다가오는 일본군이 겨우 3만명임을 파악한다. 조선군이 일본군을 '겨우'  3만명이라고 파악한 이유는 한강 건너편에 충청도 순찰사와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양천 포구 근처에 두고온 병사가 무려 3만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용인전투에서 충청군 전라군 8만명은 패주하고 그중 5만명이 굶어죽었다고 선조실록은 적는다.

하지만 3만명이 계속 살아남아 서울을 되찾기위해 명나라군의 남하를 돕기위해 다시 부랴부랴 진격해왔다. 

다 합쳐봤자 1만 이상이지만 경기 관군과 의병들도 속속 강화 , 한성 부근으로 천천히 오고있었다.  

하지만 충청군 전라군 3만은 권율을 행주산에 내버려두고 강을 건너지않았다.  다만 한강변 이남의 여러 곳곳에 넓게 진을 치고있었을 따름이다.  

행주산에서 권율 4천군은 원군이 양천 포구에서부터 건너지도않고 가만 보고만있는걸보며 화를 내며 외로이 싸운다.  

일본군 3만 중 1천명만 행주산으로 진군해와서 권율 4천군을 포위하고 교대로 나오며 권율을

공격한다. 하지만 조선군이 화살 개난사하고 돌 다 던지고 격렬히 저항해서 일본군은 사상자가 수십명 부상자가 백여명이 발생하자 아주 아주 천천히 

차근차근 소수의 돌격을 교대로 감행하며 여러차례 친다. 하지만 조선군 화살이 비오듯 퍼부어져서 돌격이 쉽지않았다. 


3. 일본군이 사상자 백여명 정도 발생하자 밤에 쉰다.  강 건너편의 충청 수군 이종걸 500명이 포구를 뒤덮으며 배들을 타고 몰려와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며 

화살들을 무더기로 수송해온다. 하지만 원군이 더이상 오지않으므로 결국 권율 조선군 4천은 행주산에서 야밤을 틈타 철수한다. 

권율 조선군이 야밤을 틈타 도망했다는건 일본측 기록에 나온다는게 구글링 검색에 간단한 기록 내용과 함께 나온다. 자세한 기록 원문은 찾을수없어서 여기에 안적겠으나

실록 내용을 봐도 원군이 강을 건너오지않아서 권율군이 도중에 도주한듯한 정황이 포착된다.  




"여러 장수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형세가 구원할 수 있었는데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극히 통분합니다."

하고, 경희가 아뢰기를,

"그날 적이 물러갈 때에 마침 전라도 조운선 40여 척이 양천 포구를 뒤덮고 왔으니 그 성원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고, 심희수가 아뢰기를,

"대개 오늘의 일은 천행입니다. 여러 장수들이 서로 구원하지는 않았으나 역시 여러 장수들의 성세가 서로 의지되었기 때문에 중국군이 이미 물러갔는데도 적들은 그 유무를 알 수가 없으므로 이튿날 다시 오지 않은 것이니 이 또한 천행입니다. 전라도 군사가 비록 정예라고는 하지만 경계를 넘으면 힘써 싸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죽기로써 싸웠으니, 이것은 반드시 장수가 독전한 공입니다."

하고, 경희가 아뢰기를,

"그날 묘시(卯時)로부터 신시(申時)에 이르도록 싸우느라 화살이 거의 떨어져 가는데 마침 충청 병사(忠淸兵使) 정걸(丁傑)이 화살을 운반해 와 위급을 구해주었습니다."



일본군이 행주산을 빽빽이 포위했다면 정걸의 군사 500명이 관우 장비가 아니고서야 그걸 돌파해서 무거운 화살들을 운반해오긴 힘들다.

더군다나 강 건너편의 여러 장수들과 원군이 전라도순찰사 권율이 행주산에서 독전하는데도 구원하러 오지않으니 행주산에 그대로 남아있으면 전멸 밖에 없다. 

일본군 3만명이 미쳤다고 포위를 풀고 돌아가겠는가? 

위 실록의 신경회의 보고 기록 장문을 모두 검토해보면 일본군 사상자도 겨우 백여명에 불과하다.


정걸이 배 타고 와서 화살들을 운반해왔는데. 배가 무거우니 화살들은 다 쓰레기 버리듯 버리고 권율군 4천이 야밤을 틈타 산을 내려와 정걸의 배 40여척에 꾸역꾸역 타서 야밤을 틈타 도주했을 것이다. 

일본군 3만명은 설마 조선의 장수가 그리 비겁하게 도주하진않으리라 보고 행주산을 빽빽이 포위하지않았다. 이것이 일본군의 최대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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