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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갤문학] KBO리그 2040시즌 막바지의 어느 날

이과출신문창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0 10:13:02
조회 32751 추천 388 댓글 277



할아버지! 할아버지! 야구이야기 해주세요!
롯데의 경기를 보던 소년은 크게 벌어진 점수차에 시시해진듯 할아버지를 부른다.

롯데 자이언츠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은 오래전에 확정된지라, 요즘의 소년은 야구를 보기보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듯하다.

백발이 된 노인은 은퇴한 야구선수로서 롯데자이언츠의 감독까지 지낸, 이대호라는 인물이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줄까... 2010년에 9경기동안 친 홈런들 얘기를 했었나?

에이, 할아버지! 그건 저번주에 얘기해주셨어요! 그리고 그건 너무 유명한 이야기고요. 더 흥미진진한 얘기는 없어요? 짜릿한 역전승같은거요!

역전이라...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구나

불현듯 스친, 그날들의 기억은 노인의 눈빛에 총기를 담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렬한 기억이었다.

얘야, 2018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음... 우리나라가 금메달 땄던 거요. 근데 할아버지는 그 때 대표팀이 아니었잖아요.

녀석, 그런건 어디서 찾아보는지 기억력도 좋구나. 물론 그런 일도 있었지만 2018년은 나에게,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에게 특별한 해였단다.

왜요? 2018년에 롯데가 우승했었나...? 기억이 잘 안나요. 얼른 말해주세요 할아버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어요? 아니면 특별한 기록을 세웠어요? 역전승을 엄청 많이 했어요? 아니면...

성질 급하기는, 나의, 그리고 롯데의 2018년을 말하려면 그 시즌의 마지막 일주일을 말해줘야겠구나.

노인의 입가에는 당장 어제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한 생기가 가득했다.

소년의 눈망울에는 당장 내일의 이야기를 미리 듣는 듯한 총명함이 가득했다.

잘들어보렴. 그날들의 이야기를

시작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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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조금 이상했다.

하루에도 수 백번을 잡았던 공.

또 그 하루가 수 천일.

그러나 그 날 따라 야구공은, 풋내나는 새침데기 처녀마냥 문규현 씨의 손을 뿌리치곤 다른 곳으로 유유히 굴러가고 말던 것이다.

문규현 씨를 위로하는 동생들의 웃음.

그 뒤의 다른 생각에 대해 생각하던 문규현 씨는 두려워진 나머지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다.

경기장을 둘러싼 관중들의 노래. 그 속에 간간히 들리는 욕설. 아니, 간간히라기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욕설.

하릴없이 들어선 타석이다.

2루에 서 있는 까마득한 후배를 문규현 씨는 바라보았다.

경기에 행방이 달려있는 긴박한 상황.

우습게 들리겠지만 문규현 씨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 갓 스물의 후배를 보며 스무 살의 문재화 씨를 떠올렸다.

"재화야. 닌 와 그렇게 마음이 급해보이노."

"잘 안 맞아서요. 나름 연습한다고 하는데 성과가 없으니..."

"재화야. 그거 안 좋은 생각이데이. 마음 편하게 먹거라."


"스트라이크"

다시 2018년의 문규현 씨. 다른 생각을 하느라 한 가운데의 공을 놓쳐버렸다.


"재화야. 야구 선수는 실패에 익숙해져야 하는 직업이디. 이승엽이가 잘 친다 하지만 봐라. 열 번 나오면 최소 여섯 번은 실패하고 들어간다 아이가."

젊은 날의 치기로 둘러싸인 문재화 씨는 불쑥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실패에 익숙해져야 하는 사람이라니. 그런 게 말이 되는가.


"볼"

2구 째를 맞은 문규현 씨는 여전히 칠 생각이 없어보인다. 너무 힘든 하루였기 때문일까. 문규현 씨는 현실로 돌아오기 싫은 듯 하다.


"재화야. 근데 내가 왜 야구를 좋아하는지 아나?"

"실패해도 최소 3이닝 후에는 다시 기회가 오거든. 경기에서 빠진다 해도 내일의 경기가 있거든."

문재화 씨는 잘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 날의 기억을 가슴에 담기로 했다.

"이번 타석, 이번 기회 놓쳤다고 마음 달리 먹지 마레이. 니가 할거는 그저 꿋꿋하게 빠따 돌리는기라."


투구는 문규현 씨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치기 좋은 곳으로.

문규현 씨는 배트를 돌렸다. 다른 생각 없이. 그저, 그저 말이다.

문규현 씨는 타구를 지켜보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기쁨을 가려버린, 큰 깨달음의 표정이었다. 문재화 씨는 몰랐던 것을, 문규현 씨는 알게 되었다.

내일의 문규현 씨, 내년의 문규현 씨는 끊임없이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문규현 씨는 그 다음날에도 배트를 휘두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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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원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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