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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31. 질투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247) 2019.04.13 22:23:30
조회 578 추천 5 댓글 0


31. 질투

한 두시간 밖에 못 잔 것 같은데 왠지 몸이 가뿐하다. 출근 준비를 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상무님, 오늘 왠지 컨디션이 좋아보이시네요?"
"그런가?"

짐짓 딴청을 부렸지만 서진의 입에선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온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하나도 전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밤새 뒤척였지만, 오랜만에 편안하게 자신을 바라봐줬던 하나를 생각하면 그런 후회조차 날아가는 듯 하다.

\'아.. 보고 싶다..\'

출근길 내내 어떻게 하면 오늘도 하나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떠오를 뿐이다. 지금까지 정말 잘 참아왔는데, 한 번 보고 나니 더 보고 싶다.

\'그냥 슬쩍 서커스단에  찾아가볼까? 퍼레이드 핑계로 얼굴 보자고 해 볼까? 아님, 그냥 솔직하게 만나자고 해 볼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문득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을, 왜 그동안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한 번 찾아가 볼 것을..  분명히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떠나보낸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이유들이 모두 의미없게 생각되었다.

"상무님? 듣고 계시죠?"
"응?"
"제 말씀 듣고 계시냐구요?"
날카로운 권비서의 눈초리가 서진에게 쏟아진다.

"응, 미안. 방금 뭐라고 했지?"
"오늘 오후에 어린이 서커스단 체험 프로그램 관련자 미팅이 있다구요. "
"뭐? 그게 오늘이었나?"
머릿속에 불이 번쩍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오늘도 하나를 볼 핑계가 생겼다!
"하지만 상무님은 원더백화점에 입점 예정인 명품 브랜드 미팅건으로 참석 못 하시게 되셨다고.. 제가 말씀드린 거 잖아요."
아니, 이럴 수가. 다시 불이 꺼진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장하나씨가 오늘 회의 자료를 미리 가져다 줬는데요.. 이거이거 내용이 너무 좋은 거에요, 한 번 보세요."


과연 하나의 기획안은 정성이 가득했다. 그 안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 서커스를 통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세상을 향한 자신감을 찾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전문가들과의 협의를 거쳐 세부 사항만 수정한다면 금방이라도 실행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음, 아주 좋네. 마음에 들어."
"그쵸? 역시 우리 하나씨가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니까요."
"우리 하나씨? 언제부터 우리 하나씨야?"

서진의 눈에 불이 튄다. 권비서는 움찔하며 눈치를 봤다.

"왜 또 그러세요..하나씨 얘기만 나오면 예민해지셔가지고.."

"됐고. 오늘 회의할 때, 몇 가지 사항만 추가시키라고 해줘. 첫번째는 비장애 어린이와 장애 어린이 프로그램을 분리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것,  두번째는 진행요원과 서커스 단원들이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요령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봐.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이 프로그램  이름을 말야.. "

일 이야기가 시작되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냉철하게 돌변하는 서진.  권비서는 그런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저렇게 추진력있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응답하는 속도는 왜 저렇게 느린 것인까..하고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아, 그리고 말야, 오늘 회의 다과 좀 신경써 봐. 원더호텔 베이커리에서 맛있는 걸로. 꽃도 좀 준비하고."
"꽃이요? 꽃다발을 준비하라고요?"
"회의실에 좀 가져다 놓으라고. 썰렁하지 않게."
"네, 네 알겠습니다. 하나씨 좋아하는 마카롱이랑 견과류 들어간 쿠키류 준비하고요, 은은한 색으로 꽃도 풍성하게 챙기라고 할게요.."
"입맛도 꿰고 있나?"
"그럼요, 제가 대신 전한 쿠키 상자가 얼만데요?"



숨가쁜 오전 일정이 끝나자, 서진은 자기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늘처럼 오후에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은 점심을 과하게 먹지 않는다. 샐러드로 간단하게 식사를 떼운  그는 오후 미팅 준비를 위해 회의실로 이동했다. 몇 달간 공들여 온 프로젝트다. 준비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협상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다.


"!! "
회의실로  가는 길, 복도 끝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하나를 발견했다. 웬 남자가 그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무엇인가를 하나에게 설명하고 있었고, 하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대체 저 남자는?\'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체 저 남자는 누구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에 하나는 저토록 환한 얼굴을 보이는 건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뭐야, 그런데 왜 또 저렇게 예쁜거야?\'
화가 나는 중에도 가슴이 뛰도록 예쁜 하나의 얼굴.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다행히 명품 브랜드 미팅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몇 달동안 준비해 온 내용이었기에 그간 고생해 준 직원들과 저녁까지 함께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운 차 안에서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질투.
잠깐이었지만 다른 사람과 있는 하나의 모습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늘 고요하고 냉정하던 나에게 이런 유치한 감정이 숨어있었다니. 인정하긴 싫지만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나가 나를 받아들여줄까, 하는 두려움과는 별개로 나보다 다른 사람이 편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그를 유치하게 만든다.

그때였다.
서진의 핸드폰에 문자 메세지가 뜬 것은.

김혜라.

\'상무님, 오늘 회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회의 내용 체크해주시고, 피드백해 주셔서 다른 참석자분들도 상무님의 관심과 진심이 느껴진다며 좋아하셨어요. 특별히 준비해 주신 다과도 정말 맛있었고, 꽃들도 너무 예뻤고요. 많은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주신 곳은 처음이에요. 무엇보다, 오늘 프로그램 이름 제안해주신 거, 정말 감동이었어요.^^\'

오늘 회의가 잘 진행된 모양이었다. 반응이 좋았다니 다 행이다. . 서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혹시 다른 문자는 없는 지 핸드폰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역시..  꽃의 진짜 주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실망감에 두 눈을 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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