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복지 한국을 위한 과제

주택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주택도 엄연한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택이라는 상품은 수요에 부응하여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 없는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상품입니다. 주택은 매우 비탄력적인 공급 속성을 가지고 있는 상품인 것입니다.

  이러한 공급의 비탄력성과 대조적으로 주택에 대한 높은 초과수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건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주택의 품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제조물 책임법 대상에서도 제외된 초고가의 제품을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입도선매하고 있는 현상은 주택이 특수한 상품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수가 소유한 막대한 자본이 주택 시장에 몰린 결과, 주택 시장은 투기장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나는 한국에서 기본적으로 주택은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택은 상품이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필수품이기 때문입니다.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된 결과, 인간적 삶의 기본 요소인 주거에 대한 서민들의 꿈과 희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막대한 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들어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시장으로 몰림으로써 집 없는 무주택자나 집을 늘리고자 하는 1주택 소유자들을 절망시켜 왔습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상품의 가격과 품질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메커니즘을 통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주택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면 공급 확대와 수요 축소라는 매우 간단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듯이 주택이라는 상품의 특성상 단기간에 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반응해 공급량을 확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수요 측면에서도 그 동안의 경험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투기심리와 불안감이 결합된 결과, 극심한 초과수요가 형성되곤 합니다. 결국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정상적인 시장기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불가피합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의 개입은 시장이 실패할 때 그것을 정상화하는 수단으로 정당화됩니다. 특히 주택이라는 상품은 토지 공급의 희소성과 장시간의 건설 기간으로 인해 매우 비탄력적인 공급 특성을 갖고 있고,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상품에 대한 정보가 매우 비대칭적인 반면, 모든 사람이 써야 하는 필수품으로서 공공성이 매우 높은 상품입니다.

  앞으로 부동산 정책은 지금까지와 같은 정부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보다 정교한 정책 대안으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주거 복지의 철학을 담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됩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는다는 소극적인 정책이 아니라, 국민소득 2만 불, 나아가 3만 불 시대의 복지국가에 걸맞는 값싸고 질 좋은 주택을 모든 계층의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보다 전향적인 방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월급쟁이로 30년 일해서 번 돈보다 지난 3년간 아파트 값 상승으로 번 돈이 더 많다는 일부의 이야기는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만연된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첨병인 무역상사에서 20여 년을 일했을 뿐 아니라 산자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시장경제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로서도 망국적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상당 부분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