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능력 있는 민주주의

능력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그러면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요? 과거 우리 사회에서 좋은 정치란 대체로 민주주의와 동일시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987년 이후 지난 20년 정도 민주주의를 실행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실망은 더욱 높아진 것이 현실입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제 민주주의의 질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능력 있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능력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의 집권 경험에 기초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민주정부의 업적과 잘못에 대한 자성 위에서 새로운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물꼬를 튼 우리 국민들은 1997년 선거에서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실현했으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라는 두 번의 민주정부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경제 재도약과 개혁의 완수, 남북통일의 준비 등 21세기 국가 도약을 위한 역사적 과제를 민주정부에 부여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정부는 국민의 여망을 성공적으로 실현했을까요? 나는 이에 대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 동안 민주개혁 세력은 민주주의와 민주정부의 운영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해 온 면이 있었습니다. 군부 권위주의 하에서 오랫동안 시달려 왔기 때문에, 권위주의 세력이 물러나고 자유선거를 통해 민주정부를 수립하기만 하면 곧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인권과 복지가 실현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안이한 판단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할 것입니다. 즉 국민들이 공적인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주체가 되고, 개개인의 자율과 자유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어디까지나 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절차와 방식에 대한 것으로서 정부 운영의 결과, 즉 정부의 정책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구성되었다는 것과 정부의 능력 및 정책의 성공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의 민주정부 하에서 민주세력들은 경제 회생 및 서민 생활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일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민주정부가 국민들의 실질적인 삶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민주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실패할 경우 민주주의는 형식으로만 남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는 것을 엄중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선거를 통해 민주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탈권위주의 단계의 민주주의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정부 구성 이후의 운영과 업적 및 결과를 보다 중요시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합리적 경쟁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어 내고, 유능한 정부의 정책 성공을 통해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능력 있는 민주주의의 내용이자 목표입니다.

  능력 있는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책임정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과 광범한 참여를 바탕으로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대변하는 책임 정당정치가 구현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민주주의를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 즉 실질적인 내용으로까지 확대하는 과제입니다. 이는 상당 부분 정책을 성공으로 이끄는 정부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유능한 민주적 리더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