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일 ․ 중 간 균형적 실용 외교의 추구

  2006년 9월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신정부와 더불어 건설적인 한․일 관계를 정립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행보는 이웃 국가들에게 심각한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를 재해석 또는 개정하여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군사적 행동 제약을 해소하고 군사적 ‘보통국가’를 실현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 기본법을 개정하는 등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갈등의 근원이 되어 왔던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교과서 왜곡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해 냉철히 대응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결코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엄중히 경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 간 세력균형을 도모함으로써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균형적 실용 외교’를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동북아의 양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은 역동적인 중견 세력으로서 상호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과 중국을 전략적으로 연계해 가는 중간자 역할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한반도와의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우리와는 수천 년의 역사에서 갈등과 협력의 숙명적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중국은 1970년대 말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한 이래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고, 이제는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 의존이 심화될수록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높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 간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우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어떠한 외교 전략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한민족의 운명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선 우리는 분단된 한반도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갈등과 협력의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는 것을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중 양국은 현재 한반도의 전쟁 방지와 비핵화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접근방법과 수단의 차이로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대립․경쟁보다 협력․공조의 방향으로 상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소위 동북공정으로 일컬어지는 역사 왜곡 문제입니다. 이에 관한 중국의 목표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하여 국가 통합을 증진하고 간도 영토분쟁을 미리 차단하는 데 있으며, 북한의 급변 사태 발생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도 보입니다. 향후 한반도의 정세 변화가 중국 동북 지구의 안정에 미칠 영향과 충격을 줄이고,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라 재편될 동북아 국제정세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중국의 ‘동북아 전략’인 것입니다.

  이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명심해야 할 사실은 역사 분쟁을 역사적인 양보의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역사는 역사적 사실만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북공정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은 중국이 한국의 역사 체계를 인정하고 한국의 역사적․민족적 정체성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대신, 한국은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 고민과 우려를 해소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주변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침해해서 역사적․민족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동북공정 식의 역사 인식은 장기적으로 중국의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할 것입니다.

  중․단기적으로는 몽골, 중앙아시아 국가, 베트남 등 중국과 역사 분쟁을 겪고 있는 역사 왜곡 피해 국가들과 국제적 공조 노력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남북한 간의 공조를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동북아 평화역사 협의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컨대 중국과 정치․경제적 협력을 지속해 나가되 분쟁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외교를 치밀하게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