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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상플]그대와 함께3

그냥조력자(58.29) 2014.08.28 09:57:34
조회 590 추천 7 댓글 2

그대와 함께3





차성진은 살며시 눈을 떴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너무나 눈부셔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다시 눈을 감지는 않았다. 따스한 빛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이 편안하고 참 좋았기 때문이다. 그 빛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진ㅇ... 진아... 성ㅈ...... 성진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 엄마......?


“성진아, 이제 괜찮아. 괜찮아...”


자신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쓰다듬어준 손이 아래로 내려와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올렸더니 눈앞에 하얀 얼굴 하나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동시에 자신의 뺨을 만지던 손가락이 코끝으로 올라오더니 톡톡 두드리는 것이었다.


“안녕, 작은 별. 이제 괜찮을 거야.”


이제 괜찮을 거야. 이제 괜찮을 거야. 이제 괜찮을 거야...


“흑!”


다시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눈물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목구멍이 뜨거워지더니 울컥 울음이 터졌다. 코끝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


“성진아아!!!”


다급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아빠였다. 아빠가 달려오고 있었다.


“흐윽... 아... ㅃ...빠...”


차태석은 아들에게 달려오다가 번개를 맞은 듯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서... 성진아... 방금... 뭐라고...”

“아... 빠...”


차태석이 아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성진아!!!”


아내가 죽은 지 석 달, 석 달 만이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아들의 목소리!


“아빠... 미안...해요... 미안...”

“아니야, 아니야! 아빠가... 이 아빠가 미안해... 미안해... 성진...아......! 흐흐흑...”


............


의사가 다시 왔고 이번에 그는 ‘기적’이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했다. 그래도 나중에 병원에 와서 정밀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가긴 했다.


“아야야, 살살 좀 해. 내가 지금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어휴,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에요. 의사선생님 말대로 진짜 ‘기적’이에요, 기적!”

“기적은 무슨... 다 내 뛰어난 운동 신경 덕분이지. 근데 태공실, 대체 언제나 그 버릇 고칠 건가? 아무 대책 없이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복판을 막 뛰어가다니...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또 귀신이 됐음 좋겠어? 엉? 우리 영혼결혼식 해야 돼?”


주중원의 상처를 살피던 태공실이 밴드를 붙인 그의 뺨을 꾸욱 눌러댔다.


“악! 아프다니까!”

“그런 끔찍한 말은 앞으로 절대 하지 마세요! 알았죠? 절대!”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거 좀 놓고... 아으...”


태공실은 주중원의 뺨을 놓고 빌딩 창가로 갔다. 발아래 아까 그녀가 아이를 안고 뒹굴었던 대로가 펼쳐져 있었다. 여전히 차들이 쌩쌩 무섭게 달리고 있는 길.


가슴에 묻어두었던 기억이 불쑥 튀어나온다. 다시 떠오르는 끔찍한 공포. 등을 안은 손에서 묻어나던 그의 붉은 피. 맞닿은 가슴에서 느껴지던 꺼져가는 심장의 고동... 몸 안의 피가 하나도 남김없이 일시에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차가운 숨결... 그리고, 두려움으로 떨며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다 기어이 마주한,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한 영혼.


“내가 제일 무서웠던 적이 ‘그때’라고 했잖아요. 정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귀신이었다구요... 다시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데... 근데... 내가... 이번에 내가... 또 당신을 그렇게 만들 뻔 했어요... 도대체 나는......! 왜 자꾸만...!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인 그녀를 보자 주중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가서 살며시 그녀를 품에 당겨 안았다.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그가 그녀를 안은 채로 속삭이듯 가만가만 얘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바빠도 운동은 거르지 않고 꼭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다 태공실 널 위해서 그런 거였어.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나 보니까 깨닫게 되더라고. 이 여자는 앞으로 쭉 이러고 살 텐데, 만약 내가 힘이 모자라거나 민첩하지 못해서 그때처럼 이 여자를 구해주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태공실, 너에겐 너만의 길이 있는 거 알아. 네가 그 길을 충실히 갈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알아둬. 내가 하는 지금의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이야. 너와 함께 하고, 걷고 싶은 내 길. 또다시 아까와 같은 상황에 맞부딪히게 된다 해도 난 널 향해 주저 없이 달려갈 거야. 그리고...... 하아, 이건 이미 내 몸에 새겨져서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생각도 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인단 말이야. 알겠어?”


태공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돌진해오는 트럭을 피하지도 못하고 아이를 안고 그저 망연자실 서있을 때, 온 몸을 던져 자신과 아이를 감싸 안고 트럭을 피해 도로에 뒹굴던 그의 모습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 지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미안한 줄 알면 앞으로 조심 좀 해! 꼴이 이게 뭐야! 이 옷이 얼마짜린 줄이나 알아? 내 얼굴은 또 어떻구? 안 되겠어. 여기 차 회장에게 치료비랑 정신적 피해 보상 등등 빠짐없이 전부 다 요구해야겠어.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그때였다. 차 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옆엔 아들 차성진이 아빠의 손을 꼭 잡고 같이 들어와서는 태공실과 주중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주중원이 태공실에게 작게 속삭였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꼭 다시 병원에 가셔서 정밀검진 받으세요. 비용은 이쪽에서...”

“당연히 청구할 생각이었습니다. 더불어 저와 제 약혼녀의 옷과,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전부!”


주중원이 차태석 회장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며 정색을 하고 얘기하자 차 회장이 미안함에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고 태공실이 주중원의 옆구리를 찌르며 앞으로 나섰다.


“저흰 괜찮아요. 다행히 상처가 가벼워서... 그보다 성진이는 어떤가요? 괜찮은지 모르겠네.”


그러면서 그녀는 차성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성진이가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선 태공실을 빤히 올려보았다. 커다란 눈에 물기가 촉촉하게 고인 것이 안쓰러워 태공실이 손을 뻗어 닦아주자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받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정말... 우리 엄마... 아니에요?”


그녀는 일순 대답을 할 수 없어 지그시 입술만 깨물었다.


“얼굴은 다르지만... 엄마가 나 볼려구, 찾아온 거...... 아니에요?”

“으응... 아냐... 미안해 성진아... 엄마가 아니라서...”

“그럼 엄마랑 나만 아는 인사, 그거 어떻게 알아요?”

“음... 그건 엄마가... 내게 가르쳐 주셨거든. 자기 대신 인사해 달라고...”


멈췄던 눈물이 다시 솟아올라 눈에 가득 찼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다시 온줄 알고...... 엄마한테... 사과할라 그랬는데...”


태공실이 다시 성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이번엔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울먹이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사고 났을 때 엄마가 나 지켜주느라고 날 감싸 안아서......... 손으로 아무리 막아도 엄마 몸에서 피가 계속 났어요... 계속 피나는데도 엄만 아프다 소리 안하고 나보고만 괜찮냐고... 괜찮... 냐고...”

“성진아!”


차태석이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아들을 꼭 껴안았다.


“아빠,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아니야! 아빠가 더...... 다 이 아빠 잘못이야! 아빠 잘못... 미안하다... 성진아... 아빠가 미안해... 크흐흑...”


그때였다.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끔찍한 모습의 그녀가 태공실 앞으로 다가온 것은. 그녀의 눈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끊임없이 붉은 눈물을 흘리며 태공실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태공실의 마음도 미어질 듯 아파왔다. 이윽고 태공실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태공실의 손을 잡았다.


............


아빠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성진의 등을 살며시 쓰다듬는 손. 그 손길이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서 성진이는 아빠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등을 쓰다듬던 손이 위로 올라와 성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려 주었다. 너무나 다정한 손길에 성진이는 눈을 깜박거렸다. 분명 엄마 아니라고 했는데 왜 자꾸 엄마 같은 걸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성진아.”


아까 자신을 구해주었던 누나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말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엄... 마...”


자신도 모르게 나온 한 마디...


“그래, 성진아. 내 귀여운 작은 별.”

“어... 엄마...... 으아앙! 엄마!!!”


울음소리와 함께 무작정 품에 뛰어들었다. 역시 엄마가 맞았던 거다!


“맘씨 착한 누나가 엄마한테 잠깐 몸을 빌려줬어. 그래그래. 착하지... 이제 울지 마.”

“엄마, 이제 가지 마세요! 내 옆에 있어요!”


성진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간절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성진의 엄마는 성진의 머리카락을 다시 부드럽게 쓸어 올려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가긴 어딜 갔다고... 엄마는 항상 네 옆에 있었는걸.”

“네에?”


놀란 성진이가 눈물을 멈추고 뚫어져라 쳐다보자 성진의 엄마는 두 손으로 성진의 뺨을 감싸며 눈물 자국을 지워주었다.


“엄마는 한 번도 널 떠난 적이 없었어. 단지 네가 보지 못했을 뿐이야.”

“엄마......”

“성진아.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말 잘 들어.”


성진이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엄마의 말을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우리 가족에게 큰 일이 일어났던 날 말이야... 그건 아빠 잘못도, 성진이 잘못도 아니야. 그건 그냥 사고였을 뿐이야. 비록 엄마가 더 이상 널 안아줄 수 없게 됐지만... 괜찮아. 아니, 엄마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사고가 났을 때 널 안으면서 그 짧은 순간,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어. 우리 성진이 살려달라고... 대신 날 데려가도 좋으니 제발 우리 아들만은 꼭 살려달라고! 그런데...... 기적처럼 엄마 기도가 통했어! 넌 이 엄말 붙잡고 울고 있었지만, 엄만 기뻤단다. 아! 우리 아들 살았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녀가 울고 있는 성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있잖아, 성진아.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또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엄만 그때랑 똑같이 그럴 거야. 널 위해서 몇 번이든 그렇게 할 거야. 비록 내가 죽게 된다는 걸 미리 알고 있다 해도 말이야. 이건 엄마의 선택이란다. 그러니까 네 잘못 아니야. 이제 그만 슬퍼해... 울고 있는 우리 성진이를 옆에서 지켜볼 때마다 엄마가 더 아팠어. 사고 났을 때보다 더, 더 많이... 아팠어...”

“엄... 마......!”

“근데, 이젠 정말 엄마가 가야 돼. 엄마 가야되는데, 성진이가 이렇게 계속 슬퍼하고 아파하면 엄만 마음 편히 갈 수가 없어. 더 많이 아프고 괴로워하면서 눈물만 흘리게 될 거야. 성진이가 옛날처럼 밝고 씩씩하면 좋겠는데, 그게 엄마 소원인데... 응? 마지막 소원...”

“엄마아!!!”


성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성진이를 꽉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엄마, 하늘의 별이 돼서 성진이를 지켜볼게. 성진이가 웃으면 엄마도 따라 웃느라 더 환하게 빛날 테고 성진이가 슬퍼하면 엄마도 따라 우느라 별빛이 흐릿해질 거야. 그러니까 이 엄마가 항상 밝게 빛날 수 있도록 성진이가 도와줘야 돼. 알았지? 내 작은 별!”


성진이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그러더니 옷소매로 얼굴을 북북 닦아내었다. 얼마나 세게 닦았는지 눈두덩이와 코가 빨개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진이는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려 몇 번 심호흡을 하더니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응! 이젠 울지 않을게요! 항상 웃을게요! 그러니까...”


성진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니까... 엄마도 하늘에서 울지 마세요! 내가 웃는 거 보면서 엄마도 항상 웃어야 돼요! 내가... 내가 늘 엄마 바라볼 거예요! 매일 밤마다 엄마별이 반짝이는지 볼 거예요!”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마치 눈부신 태양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성진이 엄마의 눈물을 작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었다. 그리고 곧 눈부신 빛이 엄마의 온 몸을 감싸 안았다.


............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거리의 가로등에 하나 둘씩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공실과 차성진은 손을 잡고 그 광경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도시에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을 즈음 성진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한 번 쳐다보더니 태공실에게 물었다.


“저기 어디쯤에서 엄마가 날 보고 있을까요?”


태공실이 성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럼!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성진이를 지켜보고 계실거야. 틀림없이.”

“엄마랑 별 보는 거 좋아했는데... 그래서 엄마가 별이 되셨나 봐요.”

“성진이, 별 많이 좋아하나 보구나.”

“캄캄한 밤을 무섭지 않게 해주는 하늘의 보물이랬어요, 엄마가. 엄만 불꽃놀이도 좋아하고, 아무튼 하늘에서 반짝이는 건 다 좋아했어요.”

“어? 이 누나도 막 반짝이는 사람인데. 그럼 성진이 엄마가 나도 좋아하시겠다.”

“네?”

“누나 이름이 ‘태공실’이거든. 그래서 별명이 ‘태양’이야, 태양. 하늘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누나가요?”

“그래! 어때, 누나를 보면 막 눈부시고 그러지 않니?”


태공실이 기대에 잔뜩 부풀어 성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성진은 그런 태공실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아니, 요 녀석이!”


태공실이 성진의 볼을 쭈욱 잡아당기자 성진이 까르르 웃더니 그녀의 손을 피해 아빠에게로 달아났다. 차태석은 실로 오랜만에 아들의 웃음소리를 듣고는 가슴이 벅차올라 말을 잇지 못하고 아들을 꼭 껴안았다. 그 뒤로 주중원이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태공실도 따라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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