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가사를 위해 멜로디를 이용하는 걸까? 아니면 멜로디를 위해 가사를 이용하는 것일까? 이런 이분법을 싫어한다. 사람마다 그리고 노래에 따라 더 중히 와 닿는 것이 다를 테니까. 그래도 멜로디가 없이 가사만으로는 음악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가사 없이도 혹은 가사를 모르거나 모국어 가사가 아니라도 노래를 감상할 수 있으니까 나는 보통 가사보다는 멜로디와 리듬에 더 비중을 뒀다.

가사냐 멜로디냐 이런 고민이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을 콘서트에 다녀올 때마다 깨닫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형이 부른다는 것. 콘서트장은 동사의 공간. 노래라는 명사는 무대의 배경일 뿐, 무대의 주인공은 동사. 형이 부르고 김밴이 연주하고 내가 듣는다라는 동사들의 공간이다.

이번 부산 콘서트에서 새 노래들 많아서 아주 좋았다. 특히 ‘마치 너인 것처럼’의 등장이 놀라웠다.(너를 기다리며, 아스파라거스, 마지막 하나까지, 그 밖에 모든 노래 다다다 좋았지만) 형의 노래 가사들은 참 다양해서 좋다. 소설 같은 가사, 시 같은 가사, 수필 같은 가사, 선언문 같은 가사, 일기 같은 가사까지. 정지된 한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 가사부터 영겁의 시간 속의 사건들을 표현한 가사까지. 음원으로만 들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콘서트 장에서 들으니 ‘마치 너인 것처럼’의 가사와 멜로디는 단편 소설, 혹은 단편영화 시나리오 같았다.

짧은 여우비가 지나가는 어느 쌀쌀한 날, 너의 친구를 만난 거리, 현실의 만남과 대화는 짧지만, 그것이 줄줄이 끝없이 화자에게 불러 오는 수만 가지 감정들. 반가움, 설레임, 기쁨, 안도감, 아쉬움, 아픔과 슬픔......  감미롭고 쓸쓸하고 절제할 때 절제하고 터뜨릴 때 터뜨리는 가수님의 목소리와 나란히 발 맞추어 걷다 보니 점점 노래와 나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처음에 나는 이 노래 화자를 지켜 보는 관객에 불과했는데 곧 화자의 친구가 됐다가 화자가 그리워 하는 ‘너’가 됐다가 급기야는 이 노래의 화자가 됐다.

이렇게 콘서트 장은 변화의 공간이다. 보통 때 무심히 듣던 멜로디와 가사인데 형이 부르는 순간 내 안에서 눌려 있던 기억이 풀리고, 잊고 싶던 아린 감각들과 마주하고, 놓아 보내고, 새로운 의미가 생겨 난다. 형의 콘서트장에서 나는 형에게 설득 당하지만 마냥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형의 노래를 들으며 형과 대화하고 동시에 나 자신과 대화한다. 그래서 전투에서 형과 김밴은 나에게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이다.

이제 마무리.

이번 콘에서 들은 새 노래 “마지막 하나까지”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고마워, 너를 알게 했던 우연과” “난 이 세상에 올 때부터(멜론에는 원래부터라고 돼 있는데 아무리 들어도 올 때부터로 들림) 너를 찾아 왔으니” 어떤 기막힌 우연이 나에게 형을 데려 왔는데, 알고 보니 내가 형 목소리(이전의 목소리부터 변한 지금의 목소리까지 다)를 찾아 낸 것은 태어 날 때부터의 필연이었던 것.

형과 김밴, 올해 전투에서 백전백승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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