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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제발 도와주세요!!

운영자 2006.01.23 19:35:58
조회 1908 추천 0 댓글 2

  3. 평화, 멀고도 험한 길

  
제발 도와주세요!!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슬픔으로 변하는 이런저런 해프닝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혼연일체가 되어 올림픽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1984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서울 올림픽의 바로 전 대회라는 사실에 모두가 관심을 집중했지만 그 대회 역시 소련과 동구권의 불참으로 반쪽 대회가 되고 말았다. 소련과 미국이 지구 전략적 겨루기를 벌이는 가운데, 1980년 모스크바에 이어 두 대회가 연이어 냉전의 희생물이 되고 만 것이다. 1972년 뮌헨 대회는 종교 문제로, 1976년 몬트리올 대회는 인종 문제로, 1980년과 1984년 대회는 이념의 벽 때문에 인류의 축제는 계속 얼룩졌다. 따라서 서울 올림픽만은 온전한 세계인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박했다.

  1986년에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아시안 게임이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아시안 선수촌 아파트도 후일 시민들에게 돌아가,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쓰지 않고 성공한 결과가 되었다. 어쨌든 아시안 게임은 올림픽 운영을 미리 점검해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듬해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5년 단임제에 대해 누구도 믿지 않을 때였고, 또 체육관에서 선거인단을 통해 다음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을 우려하며 정치판이 어지러워졌을 때였다.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불거진 국내의 정치 사회 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연일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데다 KAL기 폭파 사건과 김포 공항 폭탄 테러 사건 등이 겹쳐서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이 극도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틀어져 갔다. 실제로 한 해 앞으로 다가온 서울 올림픽에 많은 나라가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나는 그 같은 사태를 도저히 그냥 앉아서 지켜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꿈꾸고, 어떻게 유치한 올림픽인가. 그런데 냉전이라는 국제 질서에 따른 것도 아닌, 북한의 테러 행위와 국내의 정치 문제 때문에 ‘반쪽 대회’가 아니라 아예 대회를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니 ……. 만약 올림픽마저 제대로 치러내지 못한다면 세계가 우리를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이 훌륭한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준비한 막대한 시설들은 어떻게 하고, 또 우리의 자존심은 어떡하라고.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태영 박사를 찾아갔다. 이 박사에게 당시 평민당을 이끌고 있던 김대중 총재를 만나도록 주선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리하여 나는 국회의사당 1층에 있는 평민당 총재실에서 김대중 총재와 단독으로 대면할 기회를 가졌다. 1973년 납치 사건 당시의 구명 운동, 1980년 사형 선고 때 로마 교황의 사면 요청서 전달 등으로 이어진 보이지 않는 인연, 그 긴 시간을 돌아 처음으로 김 총재를 만났다. 나는 만나자마자 간곡히 부탁했다.

  “올림픽이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우니 자칫하면 모처럼 맞은 기회가 무산될 처지에 있습니다. 총재님께서 국내 소요를 진정시킬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주십시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간 꿈으로 간직했던 일을 생각하면 올림픽 경기만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나였고, 그 일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만나 무슨 말을 해서라도 설득시켜야 했다. 이런 나의 절박한 상황 인식과는 달리 김 총재는 이렇게 답변했다.

  “현 정권이 당초 왜 올림픽을 하려고 애를 쓴 줄 아시오? 내가 아는 바로는 그건 불법으로 잡은 정권을 합리화하고 장차 그 군사 정권을 또 연장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영향력을 가졌다고 데모하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겠어요?”

  나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 중대 민족 사안을 놓고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간곡히 부탁했다.

  “총재님, 부디 저를 믿어 주십시오. 군사 정권이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저는 전혀 알지도 못합니다. 올림픽을 하려고 시작한 것은 군사 정권이 아니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입니다. 제가 시작했다고 믿고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겸손하지 않게라도 자신을 확실하게 표현해야 했다.

  “저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그곳에서 일하는 대졸 출신의 한국인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나 그들과 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한국팀을 응원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국내에 일자리가 없어 라인강변 깊은 탄광에서 석탄을 캐내는 광부들은 누구 하나 몸에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뮌헨 올림픽을 통해서 조국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북한 응원단과 선수들도 이 민족이 하나라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총재님, ’88 서울 올림픽을, 동서 이념의 벽을 허물어 세계가 하나 되고 우리 민족도 하나 되는 대회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결국 김 총재는 나의 뜻을 이해해 주었고, 평민당 총재실을 나올 때에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곽 선생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내 힘 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그 후 김용래 경기도지사와 깊이 협의하여 경기도청 직원들이 세계 올림픽 시설들을 견학하도록 하였다. 나는 이 일행과 동행하면서 ’88 서울 올림픽을 평화롭게 치르는 데 협조해 달라고 부탁을 하며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심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서울 올림픽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몬트리올에서 만난 한 체육인은 “서울이 위험해서 못 가겠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톰 브래들리 LA 시장은 TV를 통해 “3개월 이상의 시간만 주면 LA에서 또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면서 개최지 변경을 공식적으로 시사하기까지 했다.

  우울한 마음으로 출장에서 돌아오는 6월 29일이었다. 현지 도시 시설과 관광지 개발 현황을 둘러보기 위해 출장의 마지막 행선지인 싱가포르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또 하나의 구상을 메모지 뒷장에 써 놓았다. 그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들과 세계 지도자들에게 올림픽 평화 운동을 전개하자는 호소문의 기초였다.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하자 그곳 대사관과 코트라(KOTRA) 직원이 나와서 한국 신문 하나를 나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서울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후보가 전격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 선언’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극도의 혼란에 빠졌던 국내 정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된 셈이었다. 나는 싱가포르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세계시민기구(WCO)를 만들고 서울 올림픽의 성공을 뒷받침할 계획과 ‘올림픽 평화 운동(Olympeace)’의 4대 원칙을 메모하여 두었는데, 물론 첫 번째 원칙은 모두가 참여하는 ‘No Boycott’였고,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단하는 ‘싸움의 모라토리엄(Moratorium)’, 그리고 경기 운영과 선수들의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 앞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구상의 필요성 등이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향후 레이건이나 고르바초프 등과 같은 세계적 정치인들과 연결이 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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