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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올림픽의 평화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

운영자 2006.01.27 13:20:22
조회 2496 추천 0 댓글 3

  3. 평화, 멀고도 험한 길

  
올림픽의 평화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


올림피스(Olympeace)

  올림픽 때 한국에 오지 않은 고르바초프가 1990년 서울을 찾았다. 세계 평화 지도자들의 모임이었는데, 워싱턴에서 잘 아는 분이 와서 초청해 준 덕택에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할 기회를 얻어서 무척 가슴이 설레었다. 점심을 먹는 시간에 고르바초프와 한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나는 통역을 통해 고르바초프에게 내가 누군지를 알렸다.

  “나는 곽영훈이라는 한국의 도시 건축가입니다. 당신을 위해 서울에 집을 지은 그 사람입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내 쪽을 쳐다보며 환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곧 그의 옆 자리로 안내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르바초프와 약 15분간 짧고도 긴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말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김일성 주석과의 일화였다. 한국계 러시아인이 우리 사이에 서서 통역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말을 지금 당신에게 처음 하려고 하니, 후일 당신의 회고록에 쓰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전제를 한 후 고르바초프는 내게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1987년에 김일성 주석이 긴히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김 주석은 이렇게 말했어요. ‘소련이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해서 남한을 고립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가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한다고 남한이 고립되겠습니까?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하면 고립되는 것은 남한이 아니고 오히려 북한입니다. 나아가서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도 고립됩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장했구요. 서울 올림픽 보이콧은 나의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김일성 주석은 크게 실망하고 되돌아갔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메모하면서 그의 입과 눈, 그리고 이마를 주시했다. 나는 내 편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끝내 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의 환한 표정과 진지한 대화만으로도 그 대답은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서울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우리 민족이 해낸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1년 만인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천안문 사태도 발발했다. 헝가리를 위시한 동유럽 여러 나라의 문들도 활짝 열렸다. 1972년 뮌헨에서 얻은 아이디어, 1981년 바덴바덴에서 서울을 선택한 사실, 독일이 준 선물을 우리는 충분히 되돌려 주었다. 그래서 내 가슴속에 남은 추억과 보람은, 지금도 불타오르고 있는 올림픽 공원 평화의 불처럼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다음 올림픽은 1992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 대회의 마스코트는 ‘코비(Cobi)’라는 이름의 피레네 산맥에 사는 스페인 전통 개였다. COBI는 마침 바르셀로나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약자이기도 했다. 나는 서울 올림픽의 평화 정신을 세계 만방에 되살리고자 그 마스코트에 걸맞은 프로그램 하나를 준비했다. 우리나라의 명견 진돗개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코비를 교환하여 양국의 우정과 평화를 상징하는 이벤트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이었다. 우선 진도에서 하얀 진돗개 암수 두 마리를 들여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수놈에게는 올림픽이라는 단어를 따서 ‘올리’라는 이름을, 암놈에게는 평화를 의미하는 ‘피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래서 언젠가 새끼를 낳으면 서울 올림픽 위원회에서 ‘올림픽의 평화 정신’을 상징하는 단어로 썼던 그 ‘올림피스’(Olympeace)라는 이름을 붙여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바르셀로나에 가서 그쪽 어린이에게 평화와 우정의 메시지를 전하며 진돗개 두 마리를 증정하고, 그쪽의 코비를 받아 오는 계획이었다. 마침내 올리와 피스 사이에서 새끼 네 마리가 태어났다. 얼마 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우리 선수단과 같은 전세기편으로 이중 암수 두 마리를 바르셀로나에 데리고 갔다.

  ‘우정과 평화의 사절’이라는 글자를 새긴 청색과 홍색의 옷을 입힌 후, 올림픽 평화의 불틀을 몇 바퀴 돌고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그리고 7월 24일, 시장실에서 인터뷰를 한 후, 시 청사 앞에서 올림픽 개회식 전날 교환 행사를 가졌다. 우리 집 두 아들 준엽이와 제엽이가 바르셀로나 어린이에게 보내는 서울 어린이의 메시지를 영어로 읽었고, 바르셀로나 부시장이 조그만 새끼 코비를 우리에게 주었다. 코비는 2002년 죽을 때까지 우리 식구처럼 살았다. 그리고 올림피스의 새끼들은 머나먼 마드리드와 유럽의 여러 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것은 서울 올림픽이 밝힌 세계 평화의 정신을 잇는, 작지만 큰 생명의 표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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