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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속의 핏자국 -1-

Subterrane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8.19 23:40:05
조회 159 추천 0 댓글 2

잔인하기 짝이 없군.” 처형장에서 꽤 나이든 오리 한 마리가 오래도록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노쇄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원로 오리의 부리에서 한탄이 새어나오자, 순식간에 대중의 눈길이 그 쪽으로 쏠렸다. 서로 원로 오리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던 차에, 용기 있고 소신 있는 젊은 오리 한 마리가 그를 향해 쏘아 붙였다.

당신 뭐야, 지금 저런 악마 새끼들을 옹호하겠다는 거야?” 그제서야 주변의 다른 오리들은 안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할 말을 대신 해줬다는 듯이 다들 속 시원해하는 눈치였다. 몇몇 오리는 쌤통이라는 눈길로 원로 오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지금, 이 상황은 너무하다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이지...” 원로 오리는 겁을 집어먹었는지 쭈뼛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젊은 오리는 다짜고짜 원로 오리를 향해 정의로운 울음 소리를 내는 것을 마지않았다.

제정신인가? 지금 저런 사악한 주둥아리를 달고 태어난 새끼들을 보고 한다는 말이 너무하다야? 당신 같이 늙고 썩어빠진 오리와 한 연못 안에 같이 있는게 그야말로 치욕스럽다.” 갑자기 벌어진 소란 아닌 소란에 처형장의 오리들 대부분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원로 오리는 갑자기 쏠린 시선에 당혹해했고, 젊은 오리는 더 기세가 등등해져 가슴을 잔뜩 부풀리며 원로 오리를 향해 씩씩거렸다.

아까 말은 정도가 지나쳤나 보군, 내 사과함세원로 오리는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마지못해 그 사악한 말을 취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중들의 분노를 녹이기엔 차마 부족한 일이었다.

당신 같이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죽이거나 가둬버려야 해, 아마 그래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평생 모를태지젊은 오리는 화가 식지 않은 듯 씩씩거렸고, 원로 오리는 그저 곤란해 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근처에서 처형장을 감시하던 오리 한 마리가 소동을 눈치 채고는 그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사무적인 어조로 경찰 오리가 물었다.

아니 지금 여기 주둥아리가 두 개 달린 오리를 옹호하는 작자가 있잖습니까젊은 오리가 볼맨소리로 증언하자, 급하게 근무를 나오느라 수첩이 없었던 경찰 오리는 아마도 수첩보다도 정확할 자신의 머리에 열심히 사건을 기록하였다.

지금 부리가 두 개 달린 오리를 옹호하는 것은, 오리 사회 치안 유지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 23항에 위반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죠?” 원로 오리를 향해 경찰 오리가 물었다.

23항이 아니라, 32항이죠젊은 오리가 경찰 오리의 실수를 정정하였다.

33항일세듣다 못한 원로 오리가 둘의 잘못을 정정하였다. 뒤늦게 33항이었다는걸 깨달은 경찰 오리는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한번 하곤 수사를 이어갔다. 젊은 오리는 그 와중에도 수사에 끼어들며 32항이 맞다며 계속 우겨댔다.

아무튼 지금 하신 말씀은 법에 저촉됩니다. 잠시 저랑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그 말을 듣곤 원로 오리는 허탈해하였으나, 이내 순순히 경찰 오리와 함께 처형장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둘의 뒷모습은 점점 작아지며, 이내 그 둘이 있던 자리에는 물결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세상이 정말... 문제야 문제 하여간물결이 채 사라지기 전에, 그 사건을 지켜보던 깃털이 짧은 오리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런 오리들이 많아져서 무슨 소동이라도 일으킬까봐 걱정이에요.” 그 옆에 있던 털이 까칠한 오리가 걱정하며 말했다.

어떻게 부리가 둘인 오리를 살려두잔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부리가 분홍색인 오리가 말했다.

다들 시끄러워, 그런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던 놈들이 말은 많어 하여간젊은 오리가 우쭐해 하며 말했다.

당신 정말 용기 있더군, 자네 같은 젊은이가 많아져야 연못이 좀 깨끗해 질텐데 말이지, 나중에 나랑 같이 달팽이 한 마리 같이 하지 않겠나?” 오리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꽤나 이름난 교수 오리 한 마리가 젊은 오리를 향해 물었다.

어이구, 저야 영광이지요. 처형 끝나면 저쪽 연잎으로 같이 가시죠.” 젊은 오리는 고개를 숙이며 기뻐하였다.

  

이런 와중에도 처형은 거침없이 진행 되었으며, 처형장에 부리가 둘 달린 오리는 이제 한 마리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부리가 하나 달린 오리 들 사이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진 오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눈을 감고 처형대로 올랐다. 처형대로 오르자, 정말 부리가 둘 달린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는 몇몇 오리는 두려워 하였고, 몇몇 오리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죽여야 한다며 꽥꽥 울어댔다.

조용!” 처형장의 경찰 오리 한 마리가 외치자 그제서야 분위기가 조용해지고, 이내 처형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신은 부리를 두 개 달고 태어나, 연못의 잡초, 곤충 등 각종 먹이를 남들 보다 많이 먹어치워, 다른 오리들이 먹어야 할 먹이를 빼앗고, 연못내의 생태계를 어지럽힌 댓가로, 부리가 하나 뽑힌 채로 연못 외로 추방될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의 있는가?”

없습니다.” 할 말이 있어도 없을 것이다.

그럼 시작하겠다.” 처형대 위의 경찰 오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처형을 담당하는 오리 두 마리가 양쪽에서 턱 쪽에 작게 나있는 이질적인 모양새의 부리를 쪼아대었다. 공적인 처형이었지만, 오리 두 마리는 악의적인 감정을 잔뜩 담아 부리를 뜯어내었다. 금방 턱 쪽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 하얀 털을 붉게 물들여갔고, 턱 아래에서 날개 윗 부분까지 붉게 되고나서야 악마의 뿔 같은 부리는 떨어져나갔다. 그러고 나서도 처형 오리 둘은 턱을 계속 쪼려했지만, 경찰 오리의 중재로 겨우 둘을 막을 수 있었다. 처형이 모두 끝난 뒤에도 둘은 계속 씩씩대며 부리가 둘 달렸었던 오리를 노려보았다. 부리가 둘 달린 오리는 어느새 살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파서 흘리는 눈물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확실한건 그가 부리가 둘 달려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처형이 모두 끝난 후, 몰려드는 관중을 저지하며 경찰 오리 두 마리가 대동하여 부리 둘 달렸던 오리를 끌고 연못 밖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처형을 지켜보던 오리들은 모두 안심한 채로 하나 둘 처형장을 떠났다. 처형장에는 이내 부리가 둘 달렸던 오리들의 부리들과, 그것을 뜯어내려다 흐른 피만 흥건히 물결에 섞여 흐르고 있었다. 피는 곧 연못에 섞여 희미해지겠지만, 그래도 차마 사라지지 않은 채로 연못 여기저기에 섞여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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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년 만에 글을 써보내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은 환영합니다. 다만 거친 어조만 자제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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