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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강제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했다.

겨울(121.133) 2017.09.17 00:32:24
조회 579 추천 3 댓글 4

그는 나를 강제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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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3-TEXT { -->내가 그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그는 폭력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발로 찬 선풍기는 저 멀리 바닥을 뒹굴었다. 그가 발로 찬 나는 가까운 바닥에 엎드러졌다. 그가 집어던진 주방 용품은 작은방 온천지에 자신의 내용물을 흘려 놓았다. 그가 집어던진 나는 좁은 방 구석에 몰려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내 덩치는 작아졌으며 그가 나를 노려볼수록 내 고개는 떨구어졌다. 그렇게, 그의 집에 머무는 한 달의 시간 동안 나는 철저히 그에게 굴종하였고 온전히 그에게 조련당하였다.

때로 그는 달콤한 말로 나를 설득했다. 폭력 후의 친절은 일견 자비롭게까지 보인다. 열 번의 폭력이 지나고 단 한 번의 친절이 베풀어지면, 어쩐지 지난 폭력이 착각이라도 되는 듯 생각하게 된다. 그간 느끼지 못했던 그의 친절이 너무나 감격스러워, 마침내 이전의 폭력과 협박을 잊고 싶어하게 된다. 그가 휘두른 폭력은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렇게 착한 그가 힘까지 쓴 것은 분명 내가 무언가 큰 잘못을 한 탓이라고.

허나, 날카로운 칼을 솜사탕 속에 숨길 수는 없음이다. 본디 그 성격이 폭력적이라, 그가 선심 쓰듯 내민 친절이 가짜인 것은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솜사탕이 눅진하게 들러붙어 칼날이 드러나듯이 그의 친절 속에 숨겨진 폭력성은 금세 드러났다. 내가 그토록 감사히 여긴 그의 친절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그가 손을 내민 것은 실은 나를 밀쳐내기 위함이었으며, 그가 내게 흘린 미소 한 자락은 그 앞에서 보이는 나의 무력함에 대한 야유였다.

반복되는 폭력과 친절에. 강제와 설득에. 나는 그의 어떤 모습을 믿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가끔의 친절도, 그 후의 폭력도, 폭력 후에 다시 던져지는 한 조각의 자비도.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야 할는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다. ㅡ그저 당시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것은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해 그의 눈치를 보고 웅크리는 것뿐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는 그에게서 자유를 얻었다. 이제 더 이상 물리적으로 나를 위협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언제고 그것을 철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긋한 내게 그 한 달의 경험은 너무 강렬했던 것인지. 무른 나는 이미 그가 원하는 모양으로 반죽되어 굳어진 것인지. 자유를 찾은 나는 오히려 폭력에의 굴종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한 달의 교육으로 그는 원하는 바를 손에 쥐었다. 나는 그의 손안에서 이것이 내 최선이라 생각했다. 제 발로 그에게 기어가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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