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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단상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10.70) 2017.09.21 11:54:51
조회 98 추천 0 댓글 0


  헤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란 끝없는 상승의 작용이었다. 그 시작점을 보편자라 부르든, 제1의 원인이라 부르든, 신이라 부르든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 역사의 최종지점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는 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고, 존재자의 운동이다. 정과 반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양의 끝에서 인간의 정신은 그것의 본래 모습, 즉 신이 될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바로 근세를 지배한 시대정신이다.

  근세의 종언 이후로, 헤겔의 역사를 니체의 계보가 대체했다. 그럼으로써 근원이라는 말은 권위를 잃었고, 목적이라는 말도 권위를 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니체의 믿음 역시 부정당했다. 세계는 생성이고, 그 생성은 영원한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어떤 것도 시간 밖에 서 있을 수는 없다. 역사는 영원의 회귀가 아니라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운동의 연속이다. 물론 그 운동은, 헤겔에 있어서의 운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핀천의 소설에 드러나는 것처럼, 현대인들에게 역사 개념이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하나의 로켓이다. 그것은 분명히 자기자신의 힘으로 움직인다. 로켓에는 대포알의 대포와 같은 제1의 원인자가 없다. 그러므로 출발점은 근원적이거나 신적인 것이 아니고 그 여정은 어떠한 텔로스에 의해 인도되지도 않는다. 종착지는 있지만 그것은 로켓의 목적이 아니다. 로켓의 추락은 완성이 아니라 종언, 열죽음의 상태다.

  결정론은 현대인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최소한, 우리는 우리에게 자유가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로켓이 스스로 운동하지만 그 자신의 궤적을 바꾸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스스로 나아가는 운동이지만 그 궤적은 바뀔 수 없다. 오직 약간의 오차, 거의 양자적인 오차만이 있을 뿐이다. 핀천은 그 양자적인 오차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그는 우리가 최소한 종언을 맞이하는 도착점을 바꿀 수 있다고는 믿는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나는 차라리 코제브의 좌절적인 넋두리에 더 이끌린다. 역사는 끝났고, 인간의 삶에 이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행복과 실존은 공허한 개념이 되었다는 넋두리에. 인간은 물론 발전할 것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속물들의 얄팍한 세계와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속물과 동물의 얄팍한 세계가 본디 역사의 의미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는 철학자들조차도 가장 얄팍한 세계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상을 벗어나는 모든 학문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유희로 격하된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 같은 환영에 시달리지만 결국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그저 일상을 묵묵히 참으며 살아가는 것 외에는 어떤 선택지도 허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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