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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소설맨(59.152) 2017.09.26 22:30:02
조회 410 추천 4 댓글 1

동구와 용만은 한참 내리던 비가 그치자 칡뿌리나 좀 캐어볼 겸 뒷산을 올랐다.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산중턱에 이르자, 출장소 주변에 몰린 인파가 동구의 눈에 띄었다.

 

“야, 곰보야, 먼디 저리 모여있데?‘

 

“잉, 그그, 오늘이 그 순사 시험 보는날 아녀.”

 

용만이 양볼 울긋불긋한 곰보를 주머니칼로 슬슬 긁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순사? 그 칼 찬 왜놈들 말항겨?”

 

“엉. 멫년 전부텀 조선사람들두 쫌 뽑는다드라. 순사 하먼은 그래두 식구 밥은 안 굶긴다데.”

 

“쩝. 먹구살기두 힘든디 나두 저거나 해보꺼나.”

 

“아서라, 똥구야. 암만 팍팍해두 조선인헌티 칼 디밀구싶데. 허긴. 옆동네 개똥이는 지 마을 사람들은 솔찬히 챙기긴 한다드마는.”

 

“와아, 개똥이가 순사가 돼블었다고? 개똥이가 멀 안다구?”

 

“조선사람들은 따로 뽑는디 워낙 못 배운 사람들이 많아섬 공부 쫌만 해도 붙는다드만은.”

 

“글먼 나도 해봐야겄네, 키킥. 야, 나가 순사 돼블먼 곰보 니는 안 잡아가께, 응.”

 

“낄낄, 헛소리 말어야. 해 지기 전에 그만 내려가게.”

 

어깨동무를 하고 내려오는 둘의 등을 비추던 햇빛이 드리운 구름에 슬쩍 가리었다.

 

 

 

- 5년 뒤, 경성

 

“끄응.”

 

닭이 울고 나서야 겨우 눈을 뜬 동구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시부럴, 언제 적 꿈이데, 쯧.”

 

간만에 고향 꿈을 꾸니 기분이 더 싱숭생숭했다.

 

“하아, 집에 가섬 용만이놈이랑 탁주나 한 잔 해블어야 쓰겄네.”

 

동구는 고양이세수를 대충 하곤 김선생의 어학당으로 향했다.

 

곰방대에 꾹꾹 담뱃잎을 눌러 채우던 김선생이 동구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아, 동구 왔네?”

 

“예에, 슨상님. 저어.. 저두 인자 고향으로 내려가야 쓰겄습니다.”

 

동구가 주저하며 말을 꺼내자, 김선생이 한숨을 푹 쉬더니 곰방대에 불을 붙이곤 쭉 빨아들였다.

 

“내래 동구 니는 쪼금 더 하믄 될 기라 하디 않았네?”

 

“그래두.. 엄니도 펜찮으시다는디 언제꺼정 시험만 볼 수두 없는 노릇이구..”

 

“하아, 기래. 니 생각이 길타문 내래 어이 말리가서.. 고향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라.

 

혹시 아네? 고조 되둑놈이래두 잡으믄 특채를 하니끼니.. 흘흘.. 메칠 내려갔다 맘 바뀌면 언제든 돌아오라우.“

 

“예. 그동안 감사혔습니다.”

 

 

 

- 고흥, 동구의 고향집

 

“엄니, 저 왔어라.”

 

“콜록, 콜록. 하이고, 그래. 동구야. 고생 많었다.”

 

“고생은 무얼..”

 

“그래그래.. 며칠 쉬다가, 응. 아버지 밭일이나 좀 도우면서 일 혀라. 엄니두 니가 그 숭악한 순사질 하는 것 별루였은게.

 

엄니가 팔봉이네섬 닭 하나 잡아놓으라 혔은게 저녁에 고아주께.“

 

“곰보, 아니, 용만이네 푸줏간 나비두구 뭣허러 팔봉이네까지 간단가?”

 

“에휴, 용만이네는 그나마 좀 있던 밭뙈기며 가게며 몽땅 빼앗기구는 박첨지네섬 소작이나 받구있다.

 

용만이는 돈푼이나 벌러 전주쪽으로 간 모양인디.. 콜록, 몇 년 째 영 소식이 없어야.“

 

“아..”

 

“좀 쉬구 있어라, 동구야, 응. 엄니 시방 좀 나갔다올라니깐. 켈룩켈룩.”

 

“예에.”

 

 

저녁을 먹은 동구는 어머니에게 물어 용만의 부모님의 작은 판잣집을 찾아갔다.

 

“아짐, 저 왔어라.”

 

“동구야. 그래그래.. 안그래도 왔다구 들었다.”

 

“용만이는 벨 소식 없담서요?”

 

그 새 10년은 늙은 듯한 용만의 어머니가 꼬던 새끼줄을 내려놓고 한숨을 푸욱 쉬었다.

 

“자식이.. 가끔 돈푼이나 보내오긴 하는데 도통 찾아오지도 않고 하니 걱정이구나. 어디서 나쁜 짓이나 하는 건 아닌지 원..”

 

“용만이가 어디 그럴 놈이데요. 자리나 좀 잡으머넌 오겠지요.”

 

“그래, 그래야 할 텐데. 동구 너도 이젠 아버지나 착실히 도와드리거라. 늦었는데 어여 가 쉬고.”

 

“예, 아짐씨. 뭐 일 시키실 것 있으먼은 부르셔요.”

 

“그래그래..”

 

 

 

무거운 마음으로 싸구려 궐련을 입에 꼬나물고 집으로 향하던 동구의 눈에 어떤 시커먼 것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는데, 얼굴에는 복면까지 쓴 것이 영락없는 도둑의 꼴이었다.

 

‘고조 되둑놈이래두 잡으믄 특채를 하니끼니.. 흘흘..’

 

김선생이 흘리듯 한 말이 동구의 뇌리를 스쳤다.

 

“이노옴, 나도 출세 한 번 해보자. 퉤.”

 

잠시 중얼거린 동구가 나는 듯이 도둑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간의 노력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는지, 동구는 도둑의 허리춤을 금새 붙잡을 수 있었다.

 

“이놈아, 워디 우리 마을을 털어블라고 하느냐!”

 

동구가 뒤에서 허리를 꽉 끌어안자, 도둑이 버둥거리며 팔꿈치로 동구의 관자놀이를 퍽퍽 때려댔다.

 

“어매, 어매. 이 자식.. 끄응..”

 

동구의 마빡에 퍼런 핏줄이 툭툭 올라오니, 도둑의 몸이 부웅 들려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혔다.

 

챙강

 

데굴데굴 바닥을 구른 도둑이 얼굴을 찡그리며 품속을 더듬어 작은 단검을 꺼내들었다.

 

“헛.”

 

어두운 밤 속에서 시린 칼날이 시퍼렇게 빛나자, 동구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야아!”

 

도둑이 고함을 지르며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얼어붙은 동구의 발은 도망치기엔 너무 느려 보였다.

 

“으어어!”

 

둘의 숨이 맞닿을 듯 가까워진 순간, 동구는 도둑의 눈이 소눈깔처럼 커다래진 것을 보았다.

 

“허억. 허억..”

 

분명 찌르면 닿을 거리였기에, 오금이 저려 철퍼덕 주저앉은 동구의 얼굴에 의문의 빛이 어렸다.

 

“왜.. 왜..”

 

동구가 턱을 딱딱 맞부딪히며 말을 꺼내도, 도둑은 엉거주춤 서서 단도를 갈무리할 뿐이었다.

 

그 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나부끼는 복면 아래로, 불그스름한 곰보자국이 슬쩍 드러났다.

 

‘...!’

 

도둑이 허겁지겁 왼손으로 복면을 붙잡고 입을 가렸다.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동구가 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나 어색한 자세로 섰다.

 

동구의 머릿속이 시장바닥에 온 듯 이런저런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울려 뒤죽박죽되었다.

 


‘되둑놈이래두 잡으믄..’

 

‘어디서 나쁜 짓이나 하는 건 아닌지 원..’

 

‘엄니, 올해는 꼭 될거같은게요, 좀만.. 응? 좀만..’

 

‘콜록콜록, 동구야, 엄니는 괜찮은게..’

 

‘야, 나가 순사 돼블먼 곰보 니는..’

 

 

 

내리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동구가 고개를 들자, 둘의 눈이 마주쳤다.

 

“동..”

 

“도, 도둑이야, 도둑! 도둑이다!”

 

동구가 소래기를 치자 화들짝 놀란 도둑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하더니 냅다 줄행랑을 쳤다.

 

동구도 다시 도둑을 쫓기 시작했다.

 

다리가 한 번 풀렸던 탓인지, 동구에게서 아까 전의 날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치는 동구의 눈에 맺힌 눈물이 슬쩍 흘러내렸다.

 

“도둑이야.. 도둑.. 도둑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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