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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진상보고서 읽고 요약.

흐린 밤(39.127) 2018.04.03 23: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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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진상보고서를 읽고 난 뒤 요약한 내용입니다. 많은 문학작품의 배경이기도 하니 함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모든 내용은 책의 내용을 토대로 쓰여져 있습니다. 제 의견은 들어가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사건의 발발 전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발발 후의 내용도 책에는 나와 있으니 관심있으시면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역사공부로도 아주 괜찮은 책입니다.



 우선 제주도의 지리적 특수성을 애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제주도는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지역의 중앙부에 자리잡아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 받아왔다. 이로인해 1945년 종전 직전 일본군에게는 본토사수를 위한 최후 보루로서, 미군에게는 일본으로 진격하기 위해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섬으로 부각되었다. 제주도의 방비를 위해 일본군은 참호 땅굴 무기 등 여러 많은 병참들을 비축했으며 제주도의 70먹은 노인까지 끌어내어 일본군을 위한 땅굴을 파게 했다. 또한 제주 주민들에게 많은 양의 식량을 갈취했다. 이 식량의 징발을 맡은 것이 앞잡이 조선인 이였고 이는 곧 해방 후 제주도에 친일파 청산 분위기가 확산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8.15 이후 일본으로 간 조선인들이 제주도로 다시 돌아왔으나 미 맥아더의 귀환자의 반입물품 제한으로 인해 조선인들이 벌은 돈, 물품들을 전부 일본에 두고 왔으며 이는 곧 실업 문제와 맞물려 큰 사회적 문제가 된다. 또한 8.15 이전 제주도는 일본 본토로부터 생필품의 40%를 공급 받았는데 미군이 이를 제한하면서 마찰이 빚어진다.(또한 중간에서 모리배들과 미군 관리, 경찰 간부들이 결탁해 돈을 빼돌리는 사건도 발생한다.)


 해방 후 제주도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정부행세를 하는 유일한 조직체가 된다. 인민위원회의 특징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자치기구였으며, 항일투쟁 경험자들이 주도했고, 온건한 정책을 추구했으며, 미군정 중대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했고, 존속기간이 전국에서 가장 길었고, 중앙이나 전남 인민위와 거리를 두고 있어 독자성이 강했다는 점이다. 이 독자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했냐면, 대구 10.1사건에도 불참하고 입법위원 선거의 참여또한 한다. 이는 당시 좌파의 입장과 극명하게 대치되는 입장으로 제주도 인민위원회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섰지만 미군은 부여된 상황에 대한 선례의 부족, 문제점에 관한 정보 부족, 통치자들의 경험부족, 효율적 의사소통의 결여로 인해서 통치에 어려움을 겪는다.(특히 언어장벽이 심각해 몇몇 지역은 통역사의 입맛대로 정책이 결정되는 수준이였다고 한다.) 또한 미군정은 일제 치하의 조선총독부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일제의 식민통치 잔재를 청산치 못하고 그 기구와 부역자들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우를 범한다. 제주도 또한 상황은 비슷해 일제 강점기 관리들이 대거 재등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인민위원회는 미군과 상당히 우호적으로 협력하는 관계였으나 제주도(島)가 제주 도(道)로 승격되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때의 정국은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휴회로 들어가 미군정이 좌파세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제주도는 도로 승격함에 따라 군경 조직들이 신설되고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곧 인민위원회의 활동영역이 좁아지고 제한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승격이후에도 기구 명칭에 도(道)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 인민위원회의 권한이 강력했던 이유는 당시 경찰들 대부분이 친일행적을 하던 이들이였고 이는 곧 인민위원회의 치안대 활동에도 협조, 혹은 묵인하게 된다. 그러나 제주도제 실시를 계기로 경찰력이 강화되어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그 일환으로 경비대의 신설이 있었는데 8차례에 걸쳐 많게는 80명 적게는 40명씩 제주도민 청년을 입대시켰다. 이때만 해도 미군정은 불편부당을 내세워 비이념화의 입장을 고수하였고 이로인해 조선공산당에서 후원한 국군준비대 대원들(좌파)이 대거 경비대에 침투하게 된다.


 신탁통치 문제로 인해서 국내 정치세력들은 최초로 명백하게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표출한다. 신탁통치 결정소식이 처음 국내에 알려졌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다름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김구, 이승만의 우파들은 신탁통치 반대를 선언했고 좌파들은 애매한 태도를 보이다 돌연 3상회의 지지를 선언하게 된다.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중앙과는 반대로 신탁통치 반대를 선언하나 후에 지지를 선언한다. 그러나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였다.


 남로당의 결성과정은 1차 미소 공위가 무기 휴회에 들어간 후 미군정은 좌익계 신문들을 폐간하는 등 공세에 들어간다 더불어 여운형과 온건 우파인 김규식을 끌어들여 좌우 합작운동을 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따라 좌파세력은 자신들의 존립과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합법적인 대중정당의 필요성을 절감, 3당을 합당해 남로당을 결성한다. 제주도의 경우에는 좌파세력이 시종일관 우세를 유지했다. 김구가 제주에 방문까지 해서 우파를 독려했으나, 우익 정달들은 좌익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정치적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1946년 봄 콜레라의 발병과 흉작으로 인해 제주도는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게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귀환인구의 증가로 인해 식량수요는 늘었으나 생산량이 절대 부족하여 제주도는 굶주림에 시달렸다. 미군정은 미곡 배급제를 폐지하고 자유판매제를 도입하지만 몇몇 지주와 관리들의 매점매석으로 유례 없는 쌀값 폭등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자 미군정은 다시 쌀 공출제도를 부활시키는데 이에 대해 농민들은 반발했고 좌파진영은 이를 정치 쟁점화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이로인해 양과자 반대운동 같은 반미운동이 발생했고 이는 곧 3.1절 시위로 이어진다. 그 무렵 제주도는 모리배 사건으로 인해 제주감찰청장이 직위해체되고 파면결정이 내려지는 등 경찰 간부의 도덕적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1947년에 들어서면서 남로당 중앙당은 3.1 기념행사를 준비했고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정당들도 준비위원회를 결성해 대중적 집회를 모색했다. 제주도 3.1시위에서는 기념시위를 통해 현 시국에 관한 좌파들의 요구사항 또한 시위내용에 포함되어 미군정이 시위를 제지하게 된다. 그러나 3.1 기념행사이기에 시위 자체는 허락하고 가두시위같은 행위를 제한했으나 오후 2시경 가두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행렬이 경찰서로 가기위해 커브를 도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6세 가량의 어린이가 기마경관에 치였고 이를 깨닫지 못한 경관은 그대로 가려 했으나 군중들이 돌맹이를 집어던지며 쫓아갔다. 당황한 기마경관은 도망쳤고(경찰서로) 그때 총성이 울렸다. 이는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것으로 착각해 벌어진 일로 이 발포로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발포는 위협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부검결과 1명을 빼고는 모두 등 뒤에 총탄을 맞은 것으로 판명 되었다. 또한 도립병원에서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동료경관을 호위하던 경찰관이 총성과 함께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가 들어오자 소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 이후 경찰당국은 민심의 수습보다는 발포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나 시위대들은 플랜카드만을 가지고 있었고 곤봉같은 무기는 전혀 가지지 않았음이 발표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정 책임자는 민심 수습보다는 강공책에 비중을 두었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는 제주도 좌파세력이 주도한 시위에서 군정경찰이 발포함으로써 그때까지 큰 소요가 없던 제주사회를 들끓게 만들고, 이 발포사건에 항의로 총파업이 시작되고 군정당국은 이에 맞서 물리력으로 검거공세를 펼침으로써 미군정과 제주도 좌파세력이 전면 대립국면으로 돌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47년 3.10 제주도에서는 한국에서 유례가 없던 민관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관공서뿐만 아니라 노동자, 교사, 학생까지 참가하는 대규모 파업이였다. 제주도청의 파업 성명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민주경찰 완전확립을 위하여 무장과 고문을 즉시 폐지할 것

2.발포책임자 및 발포경관은 즉시 처벌할 것

3.경찰 수뇌부는 인책 사임할 것

4.희생자 유가족 및 부상자에 대한 생활을 보장할 것

5.3.1사건에 관련한 애국적 인사를 검속치 말 것

6.일본경찰의 유업적 계승활동을 소탕할 것

이와 함께 유족돕기 모금운동이 제주지역에서 벌어지고 기탁된 조위금은 314.118원에 이르렀다. 이 같은 모금운동은 경찰의 정당방위론과는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발포 이후 미군정 조사단이 파견되어 조사하나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돌아가버린다. 그리고 미군 중앙조사단이 떠난 다음날 조병옥 경무부장이 미군 수송기 편으로 제주에 내려왔다. 도착 즉시 그는 포고문을 발표하는데 그 내용이란 것이 경찰의 발포로 빚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해명하거나 유감의 뜻을 표현한 내용은 없고 3.1사건을 하나의 폭동으로 규정해 물리력으로 제주치안을 바로 잡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또한 제주도청에 가서 파업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는데 그와 함께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고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수도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한다. 6일후 조병욱의 지시로 경찰당국은 파업단 관련자 검거에 나서게 된다. 이틀 새 검거된 사람이 200명에 이를 정도로 무자비하게 검거했으며 검거 후 취조과정에서 심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결국 1947년 3.1사건 이후 1948년 4.3 발발 직전까지 1년동안 2500명이 검속된다. 이러한 무자비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주민과 경찰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고 우도사건, 중문리사건, 종달리사건, 북촌리사건 등 수많은 민관충돌이 일어난다.


 3.1사건과 3.10총파업 이후 제주도 초대지사 박경훈은 사표를 제출해 유해진 지사가 새로이 발령된다. 그러나 유해진 지사는 부임 하자마자 수뇌부 인사에서 제주출신을 제외시키고 경찰감찰정 간부들도 육지출신으로 채워버린다 이는 곧 제주도민들을 제주 행정에서 소외시킨다는 의미였고 평소 ‘반공정신이 투철하다’라는 평을 들었던 유해진 지사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해진 지사는 합법적인 좌파 시위 자체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좌파를 지하로 몰고갔고 그곳에서 좌익활동은 더욱 위험스럽게 변모했다. 또한 좌익세력에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유 지사 재임기간 동안 경찰은 테러행위를 수없이 자행했다.


 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고 유엔에 한반도 문제가 상정되면서 국내 우익세력이 강화되었고 이때 대동청년단, 서북청년회 같은 극우단체들이 설립된다. 서청은 당시 이승만의 후원을 받아 그들이 ‘반민주적’이라고 의심되는 인사들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빨갱이 사냥’에 매달렸다. 그런 서청단원들에게 제주도는 악몽의 섬 이였고 제주도민들에게 서청은 악몽의 그림자였다.


 4.3발발 이전 제주에 상주한 서청단원들은 76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 서청단원들은 유지사의 명을 따르고 있었는데 1947년 9월 6일 제주읍내 지역유지 집에 괴한들이 침입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수사에 나선 미국 정보부는 사건 발생 직전 괴한들이 습격 직전 전화를 건 것으로 파악했는데 그 전화가 유지사의 집에서 건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에대해 유지사는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사건처리는 흐지부지 되었다. 미국 정보부는 제주도의 여론은 만일 경찰이 빠른 시일 내에 정의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모든 조직들이 제주경찰감찰청을 공격하리라는 것 이라는 첩보보고를 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에 상정된 한반도 문제는 사실상 남한만의 단독선거로 결정이 되었고 이에 따라 많은 단체들이 반발하게 된다. 그 중 남로당은 2월 7일을 기해 전국을 총파업으로 몰고 간 2.7 구국투쟁 계획을 세우고 투쟁 슬로건을 발표한다. 이에따라 2.8 제주도의 여러 지역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사계리 경찰관 린치사건, 고산지서 발포사건 같은 민관충돌이 일어났으며 2.7사건 이후 검거선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3월 경찰에 연행된 청년들이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제주사회의 민심을 동요시켰다. 의사 장시영의 ‘타박으로 인한 뇌출혈이 치명적인 사인으로 인정된다.’는 감정서 하나로 경찰관 5명이 구속되었고 3명이 징역 5년 2명이 징역3년을 받게된다.


 1.22 검거사건은 1월 22일 새벽 3시 경찰이 남로당 조천지부 불법집회장을 급습, 106명을 체포했고 2월 중순부터 3월 5일 사이에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키라는 내용의 문건 등 을 압수했으며, 연행자중 남로당원 63명을 방면했다. 라는 것이 당시 경찰의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새벽에 연행된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그저 주민들을 불러모은 뒤 자신들이 남로당원임을 실토하라고 고문을 가했고 폭동 지령 문건은 아예 존재 여부가 확실치 않다. 결국 남로당 조직을 전면으로 노출시킨 이 검거선풍의 사후처리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제주도 남로당 조직원들에게 조직의 와해는 물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했고 이런 위기의식을 부추긴 강경파의 주도에 의해 무장투쟁을 촉발하는 한 동인이 되었다.

이후 남한만의 단독선거 윤곽이 드러나 1948년 2월 이후 미군정과 좌파간에 치열한 대립국면이 표출되었고 제주도당 지도부 핵심세력은 강건파의 우세로 인해 미숙한 국제정세 판단과 경비대와 미군정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해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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