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빛의 터널에 들어서면

토마토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말도 없이 잔뜩 보내준 토마토

좁은 원룸에 놓은 자리도 없는 토마토 

나눠줄 친구가 별로 없기에 절반은 썩을 테지만 보고 있기만 해도 짜증이 나지만 회사에 가져가긴 싫다고 생각한다 토마토가 정말로 맛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아버지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토마토 덕에 과장님 대신 집 앞 텃밭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토마토 대신 무화과일 예정이고 나는 냉장고를 위해서 더 잔인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생각한다 토마토와 무화과를 냉장고에 넣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이어폰이 집어삼키는 노래는 내 취향이 아닌 것으로 바뀌고

점멸하는 터널의 보조등이 고막을 때리면

생각하는 일 대신에 옆에서 차들이 지나간다

유리창에 흐릿한 얼굴이 잠시 스쳐 가면

주머니속 검은 잉크로 가득한 영수증 몇 개를 확인하는

여기는 금화터널 117m

저녁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그 지점에서는

나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토마토와 무화과가 부식으로 나오는 그런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