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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스트맨 - 체험과 인물, 그리고 망설임앱에서 작성

2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1.15 05:58:40
조회 334 추천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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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영원한 공상이었다. 늘 밤하늘 사이에서 빛나지만 가볼 수는 없는 곳. 인류에게 있어 이 몽환적인 결핍은 수만 년간 아름다움과 신비의 대상이었다. 우울의 화신이 되기도 하며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기도 하던 달. 그러나 인류의 열망은 그저 염원과 모방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기술의 발전 - 더불어 냉전의 자존심 경쟁 - 이 기어코 이 공상을 실현한 것이다. 마침내 달에 착륙하게 된 인간. TV 앞에 모여 그 순간을 지켜보던 전 세계의 인류들에게, 또한 그 후손들에게, 이는 분명 거대한 도약이었으리라.

이 역사적 순간은 영상매체가 처음으로 목표한 지점과도 맞닿아 있다. 영상이 구현하는 운동의 기계적 복제는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가능성이었으니까. 초창기의 영화들이 유독 그러한 성격을 지닌다. 영화의 출발점에 선 상기(上氣)된 발명가들은 그저 살아있거나 혹은 죽어 있는 무언가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아낼 뿐이었지만 이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훗날 영화가 서사의 장르로 완전히 변모한 이후에도, 관객들은 세계의 오지와 이국적인 풍취를 담은 영화들에 열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가능성이 발견된 이후에도, 영상매체의 가장 근원적인 매력이 세계와의 간접적 경험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영화들을 감상할 때 문득 스쳐 가는 생각들이 있다. 백년전의 사람들과 수십 년 전의 감각들. 그러니까 이제는 더 세상에 남아있지 움직임들.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기약하는 여러 세계. 그렇게 떠오르는 해묵은 상념들 혹은 펼쳐지는 새로운 지평. 잠시 영화의 맥락에서 벗어나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그 순간에, 영화는 기이한 중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퍼스트맨> 은 이러한 우리의 원초적인 열망을 한가득 끌어안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달과 체험의 순간으로서 영화의 결합. 세계에 대한 이러한 열망들은 결국 달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공상 영화가 기쁨에 겨워 달에 가는 사람들을 다룬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달세계여행(1902)>에는 여타의 부차적 맥락 또한 떠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부차적인 감상일 뿐이다. 결국 <달나라여행>이 현대를 사는 우리를 여전히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른 외계, 우리와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달이라는 순수한 호기심이 배어나는 순간들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퍼스트맨>의 감독, 데미안 셔젤의 열망도 그런 순수함을 담고 있다. 달에게 바치는 영상기술의 헌사. <퍼스트맨>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체험으로서 존재하는 영화’라는 명제의 극대화였다.

대부분의 카메라 워크는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시점을 대변하며 관객을 직접적 경험의 순간으로 인도한다. 예컨대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자주 반복되고, 또한 강조되는 것은 우주선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위험한 순간들이다. 1인칭 시점 하에 귀를 찌를 듯이 울리는 경보 소리와 치찰음들, 그리고 카메라의 거친 흔들림과 같은 요소들은 결코 관객이 경험하는 현실의 범주를 넘지 않도록 정밀히 축조되어 있다. 균형을 잃은 제미니 8호가 미친 듯이 회전할 때 새어 나오던 쇳소리와 아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에서 일말이라도 비현실을 감지해낸 사람이 있을까. 이는 암스트롱에게도, 우리에게도 분명 실제의 체험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부분의 경관 또한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하게 하는 왈츠가 펼쳐지는 장면이나 달을 향하는 작은 탐사선이 부각되는 장면 등을 제외하면 - 오로지 조그마한 창문 너머로만 제한되는 우주비행사의 시선을 통해서만 체험된다. 창밖의 색채는 하얗더니, 별안간 새파래지며, 돌연 검정이 된다. 그 추상성 속에서, 가슴 깊이 다가오는 우주의 아름다움. 우리에겐 달이란 정녕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문이 열리는 순간, 광활한 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회색 월면과 새카만 하늘 사이에는 오직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가득 확장된 아이맥스 카메라는 차분히 360도로 회전하며 이 모든 풍경을 고스란히 담는다. 적막한 고요함을 뚫고 설렘 가득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옳기는 암스트롱. 오직 영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 경건한 침묵의 순간. 그렇게 우리는 ‘거대한 도약을 한 인류’를 넘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한 명의 인간'을 직접 체험하기에 이른다. 공상이 된 현실, 현실이 된 공상. 그 유일한 수단으로서 우리를 달로 인도하는 영화.

물론 <퍼스트맨>은 오로지 체험만을 재현한 영화는 아니다. <달세계여행> 과 같이, 끊임없이 겉돌며 우리 주위를 부유하는 무중력의 맥락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평면적으로 묘사되는 암스트롱과 그의 동료와 가족들. 더 냉정해지자면, 우리가 과연 가족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달로 향하고, 아들의 수영대회의 날짜조차 관심이 없는 것처럼 묘사되는 암스트롱에게 단지 일상의 치부처럼 문득문득 등장하곤 하는 죽은 딸에 대한 그의 그리움에 얼마나 깊은 애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며, 딸의 머리핀을 달의 구덩이에 흘려보내는 아련한 장면에 과연 얼마만큼이나 공감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식의 이야기. 평론가들의 냉정한 칼날 앞에서 정녕 <퍼스트맨>은 무사할 수 있을까. 그렇게 퍼스트맨은 성취와 더불어 실패한 영화로 남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사실 서사의 면면을 속속히 들여다볼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퍼스트맨의 위대한 달나라체험의 배후에는 사실 근본적이고도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 실제와도 같은 체험이 우리가 결국 암스트롱을 밀어내고 관객 자신을 그곳에 대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암스트롱의 눈이 아닌, 나 자신의 눈을 통해 이 만남을 보고 싶다는 원초적이고 해묵은 욕망. 오히려 경험의 주체가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달을 경험하는 것은 나여야만 한다는 앳되고도 존재론적인 염원. 이 잊힐 수 없는 욕구 앞에서, 암스트롱은 단지 외부인, 더 나아가 나 자신의 주체성을 방해하는 타인에 다름 아니다.

즉 <퍼스트맨>은 실패한 영화라기보단,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지도 모른다. <퍼스트맨>은 본질적으로 게임도 아니며, 다큐멘터리도 아닌, 영화이기에, 직조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야만 하는 '영화'의 경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물의 중력에도, 체험의 중력에도 포섭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로지 선택의 망설임뿐이다. 이 모순되는 두 개의 중력 모두에게 끌리게 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섣불리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남겨진 이 망설임이라는 한계를, 묵묵히 맞이하며 그 감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영화가 진정 관객에게 건네고자 했던 메시지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가만히 망설여보자. 달을 목도하고 돌아온 남편을 바로 앞에 두고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서 그저 유리에 손을 맞대던 그의 부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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