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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8.159) 2019.04.17 19:31:31
조회 253 추천 2 댓글 7

“중증이라는 것은 범인을 연기하는데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곪아가는 머리에는 남들보다 많은 머리칼이 필요하지요
연기하는 것이 꼭 악화일로라고 말할 수 없겠지마는,
길을 걷는 이들 중태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위의 웃음에 조금 더 민감하고,
예민하고, 영민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선생님, 저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저는 정상이니까.
그러니까 당신께 병자의 입장을 털어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 파록스는 싫습니다, 리튬 칼륨도 이제는 가만, 그만. 저는 범인의 길을.“



그리하여 온통 백색인 방에 갇혀버리고 만 것입니다.
눈을 떠서 제일 먼저 보이는 천정에는 회백색의 석회로 이루어진 벽이 나를 막고 있고
일어서서 전면이나 옆면을 보자면 군데군데 보이는 찌들어진 잿빛의 시멘트와
대개는 늙은 흰색으로 이루어진 페인트들이 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죽은 지 오래 되었는지 일말의 냄새조차 풍기지 않습니다.
온통 죽어있는 이 방에는 저 홀로 생을 유지하는 것만 같습니다.
죽음 사이에서 생명이 피어날 수 있을까요. 하고 되내어 보아도 아니라는 대답만이 돌아옵니다. 누구에게 묻고, 어떤 이에게 대답을 받았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오의 식사 시간이 되면 음식 사이에 녹아들어 있는 약들을 먹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자발적인 입소를 할 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백색 가운을 입은 의사처럼 보이는 이였고, 덥수룩한 수염과 흐리멍텅한 눈을 한 이가 제게 그렇게 이야기 했던 파편들이 머릿속에 박혀있습니다.

주에 한번 돌아오는 외출의 날에는. 푸르딩딩하고 밍밍한 옷을 입은 남간호사가 정오에서 한 시간쯤 지나면 제 방에 문을 덜컥 열어냅니다. 그리고는 양팔에 수갑을 채운 후에 볕이 들어오는 곳에 저를 두고 돌아가서는 한 시간 쯤 지나서야 다시 저를 찾아와 죽음의 방에 저를 처넣곤 하지요. 정말이지 너무한 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쯤은 다 괜찮습니다. 정말이지 수갑을 채우건 죽음의 방에 처넣어서는 재깍재깍 사료를 챙겨주는 짐승처럼 사육 당하는 것도 편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일이지마는.
다만 견딜 수 없는 것은 매주 수요일에 보는 태양의 색이 점점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시간의 짤막한 것을 저는 기억하려 시멘트벽에 자국이 남을 때까지 손톱으로 풍경을 그리고, 또 자기 전에 하루 일과처럼 그 기억을 불러내어도, 어김없이 돌아 온 수요일의 볕은 색을 바꾸어 갑니다.
강렬한 하얀색, 주황색, 회색, 이제는 점점 보라색으로 바뀌고, 검정빛까지 도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매주 수요일에는 깜깜한 밤에 외출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정오의 냄새가 나는 것이 저는 소름끼치도록 무섭습니다. 저는 미쳐가는 것이 아닐까요,
범인의 흉내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무너져가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약을 꼬박 챙겨먹은 죄로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일까요. 다들 이런 밤과 같은 정오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면 최소한의 위안을 얻을 수 있겠지마는,

정녕 정오가 제가 알고 있는 밤의 색을 가진다고 하면, 새까맣게 칠해진 곳에서 꽃이 피어난다고 하면, 저는 차라리 선생님이 말한 정신착란이나, 인격장애 같은 것들을 계속 머금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가질 뻔도 했습니다.


오늘은 어쩌면 마지막 수요일 일 것 같습니다.
저는 일어나서도 창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로 새로운 빛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떨었으니까요.

끽하고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간호사가 얼굴을 들이밀며 아무 말 없이 손을 까닥이는 타이밍에 가깝습니다, 계속해서 제가 누워있으면 저에게 다가오며 잽싸게 수갑을 채우고 몸을 일으키겠지요, 어쩌면 오늘은 너무 게으름을 피운다는 명목으로 제게 발길질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간호사는 온데간데없고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불 속에 누워서 죽은 척 누워있었지만 힐끔 보는 눈으로 의사선생님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부츠 사이사이에 반짝이는 신발끈의 끝매듭까지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지요. 선생님이 저를 깨웁니다, 어깨를 잡아내면서 흔들거리더니 이내 이불을 내리치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제게 손가락을 쫙 펴 보이며 이게 몇 개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커텐 아래를 힐끔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희미한 보라색만이 창가 아래를 비추고 있었고 저는 절망적인 미래를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죽음 사이에서 더 익숙해져야하는 생각과, 그리고 그리고, 언젠가 여기서 과거를 곱씹으며 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끝에 여섯 개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며 저를 보았고,
다시 여섯 개라고 조금 큰 소리로 답하니, 제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이제 퇴원하셔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간 고생이 많았다고, 이 깜깜한 세상으로부터 부디 잘 살아남으시길 바란다고
세간에는 대가 없는 빛은 없다는 덕담에 허허 웃는 너털웃음으로 저를 병원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남으면 좋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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