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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좀 봐줘여

이지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1.28 00:35:02
조회 101 추천 0 댓글 12

  실수였다. 난 그 숲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거기에 늪이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한 번 발걸음을 디디자 빠져드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걷잡을 수 없었다. 빠져나오기 위해 진흙을 헤집어봤지만 빠져드는 속도만 빨라질 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붙잡고 나올 나무 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허리춤까지 진흙에 잡아먹히자 나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감고 침착, 침착, 되뇌이며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금방 났다. 나를 도와줄 사람을 불러야 했다. 지체없이 소리질렀다. 이봐요! 여기 사람 있습니다! 살려주세요!

  어느 곳에선가 인기척이 났다.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발걸음 소리가 연이었다. 얼마 후 내 눈 앞에 등장한 두 사람은 숲의 원주민들이었다. 한 명은 키가 작고 한 명은 키가 컸다. 나를 보는 키 작은 원주민의 입가에 살짝 웃음이 스쳤다. 괘씸했지만 나는 온 수단을 동원해 내 절체절명의 위기를 알렸다. 두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그러나 원주민은 내 절박한 호소에 아랑곳 않았다. 키 작은 원주민은 꿀어앉은 채 손으로 턱을 받치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계속 진지한 표정을 지키고 있던 키 큰 원주민이 손으로 뭔가 가리켰다. 손가락은 내 등뒤를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틀자, 그곳에는 진흙범벅인 악어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악어의 노란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머리 끝이 쭈뼛섰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도와줘! 제발! 날 좀 살려줘! 이 정도로 말하자 원주민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했다. 원주민들은 뭔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가 끝나자 키 작은 원주민이 숲 속으로 들어갔다. 키 큰 원주민이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 워워, 하는 소리를 냈다. 

  이윽고 돌아온 키 작은 원주민의 손에는 굵고 긴 나무줄기가 둘둘 말려있었다. 키 작은 원주민은  낚싯대를 던지듯 나무줄기를 내게 던졌다. 그러나 방향이 빗나갔다. 나무줄기가 던져진 곳은 내게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 키 작은 원주민이 다시 나무줄기를 던졌다. 이번엔 상황이 더 안 좋았다. 나무줄기를 던진다는 것이, 악어 등을 채찍으로 후려친 꼴이 돼버린 것이다. 뒤를 돌아보자 악어가 흥분했는지 동작이 더 활발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키 큰 원주민이 키 작은 원주민을 밀쳐내고 나무줄기를 던졌다. 나무줄기는 정확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나무줄기를 잡고 필사적으로 당겼다. 두 원주민도 온힘을 다해 나를 끌어당겨줬다. 내 몸은 서서히 악어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내 입에선 저절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악어가 허리춤을 문 것이었다. 나는 너무 아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더욱 열심히 나무줄기를 잡아당기는 게 다였다. 손바닥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무조건 당겼다.

  그러나 신은 날 버렸다.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던 나무줄기가, 어느 순간 힘을 잃고 내 손에 끌려왔다. 동시에 두 원주민은 뒤로 나뒹굴었다. 내 손에는 끊어진 나무줄기가 덩그러니 들려있었다. 나는 다시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정말 조금 울었다. 혀로 짭잘한 맛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두 원주민이 바닥에 누운 채로 배를 잡고 뒹굴며 깔깔대는 것이었다. 일생에 다시 못볼 코메디를 본 것처럼 미친 듯이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내게는 필사적인 일이, 그들에게는 한낱 해프닝에 불과한 건가? 나는 이성을 잃고 다시 진흙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 진흙이 가슴팍까지 차오르자 숨이 갑갑해왔다. 호흡이 가빠졌다. 더이상 무슨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지금 나를 웃겨 죽겠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을 다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손을 싹싹 빌면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 호소가 먹힌 듯,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뭔가 납득한다는 표정이었다. 키 큰 원주민이 검지와 엄지를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귀청을 울리는 크고 맑은 소리였다. 나는 짐작했다. 동료를 더 부르는 걸까. 아님 타잔처럼 나를 도와줄 동물이라도 부르는 건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숲은 전처럼 조용할 뿐이었다. 의아해하다가, 문득 등뒤에 악어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과연 그랬다. 악어는 조용히 늪을 빠져나와 두 원주민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악어가 다가오자 원주민들은 체체, 체체,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악어는 순한 양처럼 그들 앞으로 기어갔고, 키 큰 원주민은 악어를 아기라도 안 듯이 품에 안았다. 그러고서 그들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당황하며 가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소용 없었다.

  밤이 되자 공기가 확연히 차가워졌다. 더군다나 옆구리에 난 상처는 진흙속에 파묻혀 보이진 않았지만 꽤 심각한 듯 했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끙끙 앓았다. 한참을 그러다 깜박 정신을 잠깐 잃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번쩍 눈을 떴다.

  눈 앞엔 두 원주민이 반가운 표정으로 빙긋 웃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무언가를 관찰하는 듯했다. 혹시나하고 뒤를 돌아보자, 눈이 노란 악어가 내게로 기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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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에 \'늪\' 주제로 쓴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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